가고싶은 곳, 걷고싶은 길

서성구역 련못동 61인민반 김옥희녀성과 그 일가

 

얼마전 장산혁명사적지를 찾았던 우리는 그곳 일군으로부터 25년세월 사적지에 충성의 마음을 바쳐가고있는 한 일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참 좋은 인민입니다.》

서성구역 련못동에 자리잡고있는 김옥희녀성의 집은 소박했지만 무척 아담하였다.그는 남편과 아들, 며느리, 손녀와 함께 살고있었다.

하지만 김옥희녀성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결코 평범한 가정이 아니였다.

집에 소중히 보관되여있는 많은 지원증서, 대회참가증 등을 보면서도 잘 알수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애국의 첫걸음은 자기 어머니와 함께 떼였다고 한다.

때는 1990년대초,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적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전국, 전민, 전군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함에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이 하달되였다.이 땅에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정세가 조성되였고 누구나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인민군대에 입대, 복대할것을 열렬히 탄원하였다.

그 시각 김옥희녀성의 어머니는 무엇을 생각했는가.

그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해방전에 지지리도 가난해서 낯설은 이국땅에 건너가 살아야 했다.그러다 해방을 맞아 조국에 나왔지.김일성장군님의 은덕으로 글도 깨쳤고 너희들 7남매를 낳아 걱정없이 키웠다.오늘은 너희들이 복중의 복을 누리고있지 않느냐.조국이 없으면 이 모든 행복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

그는 딸과 함께 원호물자를 정성껏 마련하여 초소의 병사들에게 보내주었다.…

김옥희녀성은 그때의 어머니의 모습을 일생 잊을수 없다고 하였다.

그로부터 1년후 우리 인민이 하늘처럼 믿고 따르던 어버이수령님을 잃는 민족의 대국상을 당하였을 때 수령님을 목메여 부르며 만수대언덕으로 오르던 김옥희녀성의 가슴속에 굳은 결심이 자리잡았다.

(어버이수령님의 유훈대로 위대한 장군님을 더 잘 받들어모시렵니다.)

그후 그의 발걸음은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장산혁명사적지에로 향하였다.

매일 사적지를 찾아 주변관리사업을 진행하였고 때로는 사적지관리에 필요한 도구들과 강사들의 사업과 생활에 필요한 물자들을 안고갔다.

조국이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시기에도 그의 발걸음은 변함없이 사적지로 이어졌다.…

우리가 한창 김옥희녀성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의 아들과 손녀, 세간난 딸이 집에 들어섰다.장산혁명사적지에서 오는 길이라고 하였다.

알고보니 아들인 유명도동무와 딸 유명순동무는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니였다고 한다.

조선체육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유명도동무는 사회주의건설장들에 대한 지원사업도 성의껏 하고 또 동대원구역에 사는 한 영예군인의 생활을 10년 넘게 친혈육의 심정으로 돌봐주고있었다.

참으로 어느모로 보아도 평범한 이 가정에는 아름다운것, 고결한것이 꽉 차있었다.

그들의 충성과 애국의 흔적이 찍혀진 곳들을 여기에 적어본다.

만수대혁명사적지, 금수산태양궁전 수목원, 미래과학자거리,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 삼지연군꾸리기건설장…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대가를 바라고 걸은 길도 아니다.

김옥희녀성은 말하였다.

《가고싶어 간 곳이고 걷고싶어 걷는 길이여서 그런지 힘들기는커녕 힘이 더 솟지요.》

위대한 수령님들을 천세만세 높이 모시고 경애하는 원수님을 충성으로 받들어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할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거기에 자신들을 세우고싶어하는 그 인생관은 얼마나 고결한것인가.

김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