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갱생으로 승리떨쳐온 력사를 돌이켜보며

평양속도를 창조하여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준 천리마시대 수도건설자들

 

창조와 건설로 비약하던 1950년대를 돌이켜볼 때마다 우리 인민은 영웅적투쟁과 대비약적혁신으로 온 나라를 들끓게 하던 전세대들의 투쟁정신을 가슴뜨겁게 떠올린다.

조선은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떠서지 못한다고 떠벌이던 원쑤들의 궤변을 단호히 짓부시고 평양속도를 창조하여 수도건설의 새로운 전성기를 펼쳐놓은 전세대들의 로력적위훈은 우리 당과 조국력사에 길이 빛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식 사회주의의 전력사를 쥐여짜면 자력갱생이라고도 말할수 있습니다.》

우리 인민이 어려운 시련과 난관을 박차며 5개년계획의 두번째 해의 령마루에 올라서야 했던 1958년, 바로 이해의 1월 19일이였다.

우리 나라의 신문들은 5개년계획의 첫해 인민경제발전계획실행총화에 대한 중앙통계국의 보도를 대서특필하여 전하였다.신문지면을 가득 채운 수자와 사실들은 이 땅에 위대한 천리마시대가 도래하였음을 힘있게 펼쳐보이고있었다.

이날 신문을 받아든 모든 사람들이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있었으나 건설부문의 일군들과 로동계급만은 일요일의 이 하루를 무거운 마음으로 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인민경제 여러 부문이 계획을 수행하였으나 건설부문만이 98%로서 자기 몫을 다하지 못하였던것이다.

바로 그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 평양시안의 건설부문 모범로동자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떳떳치 못한 수자로 하여 머리를 들지 못하는 그들을 웃음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시면서 물론 지난날 건설부문이 뒤떨어진것은 반당종파분자들의탓이였다고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시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반당종파분자들은 건설을 공업화할데 대한 우리 당의 정책을 외곡하고 당의 조립식건설방침을 음으로양으로 반대해나섰다.

그자들은 비렬하게도 《조립식집은 지진이 일어나면 다 무너진다.》고 공포분위기까지 조성하였다.시험적으로 건설하는 조립식다층살림집이 날을 따라 쑥쑥 올라가자 그 집이 무너지기를 바라며 아침저녁으로 남몰래 나와 도적고양이처럼 지켜보는 비렬한짓까지 하였다.그리고 《건설부문에서 혁신이 일어나지 못하고있는것은 이 부문 력량이 다른 부문에 비하여 미약하고 로동자들이 말을 잘 듣지 않아서 그렇다.》고 건설자대중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설부문 로동계급이라고 하여 빨리 달려나가려는 지향이 남보다 못할수 없으며 당의 방침과 의도가 들어가기만 하면 그들의 심장속에서도 강선의 로동계급속에서 타오른것과 같은 그러한 불길이 타오를수 있고 기적이 창조될수 있다고 굳게 믿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온 하루 로동자들과 함께 계시며 7 000세대분의 자재와 자금으로 수천세대의 살림집을 더 지을수 있는 막대한 예비를 찾아주시였다.

건설부문 일군들과 로동자들의 가슴은 크나큰 격정과 흥분으로 세차게 끓어번지였다.

드디여 보수주의, 패배주의를 짓부셔버리고 비약과 혁신에로 달려나갈 돌파구가 열린것이였다.수도의 모든 건설장들이 부글부글 끓고 7 000세대분을 기준으로 하여 세워졌던 이해 수도살림집건설작전이 새 기준에 의하여 전면적으로 변경되였다.

수도의 설계가들속에서는 이미 80~90% 완성되였던 낡은 설계를 완전히 개작하기 위한 치렬한 돌격전이 벌어졌고 로동자들속에서는 한사람이 한건이상의 예비를 찾아내는 운동이 대중적으로 벌어졌다.

이때의 예비탐구사업이 얼마나 심각하고 깊이있게, 대중적으로 벌어졌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당시의 신문자료들이 생동하게 전하고있다.그에 의하면 수도의 어느 한 건설사업소에 해방후부터 10여년간 건설부문에서 일해오면서 단 한번도 회의에서 발언해본 일이 없는 한 로동자가 있었는데 그의 말문이 열린것도 이때부터이며 한번 말문이 열리자 숨었던 예비가 막 쏟아져나와 그를 《예비중태》로 부르게 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고조된 열의속에서 2월 12일에 진행된 모임에서는 1 600여명의 건설자들이 7 000세대분의 자재와 자금, 로력으로 1만 7 000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할것을 수도건설자들의 이름으로 엄숙히 결의하였다.이 결의는 얼마후에 또다시 2만세대로 갱신되였다.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웠지만 최대한으로 증산하고 절약할데 대한 당의 전투적호소는 수도건설자들을 자력갱생진군에로 힘있게 추동한 고무적기치였다.

수도건설장 그 어디에서나 절약투쟁이 힘있게 벌어졌으며 없는것은 만들어내고 모자라는것은 찾아내며 무슨 일이나 자체의 힘으로 해제끼기 위한 경쟁열풍이 세차게 휘몰아쳤다.

그때 건설장에서는 오늘날 많이 쓰이는 다공판부재의 조상이라고 할수 있는 구멍벽돌을 쓰군 하였는데 바로 여기에는 벽돌 한장 성한것이 없었던 전후 어려운 시기 제손으로 부강조국을 한시바삐 일떠세우려는 로동계급의 애국의 마음이 깃들어있었다.

운전사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앞을 다투어 련결차를 4~5개씩 달고 짐을 더 끌기 위한 증송투쟁을 힘있게 벌려 모래수송, 골재수송, 부재수송을 원만히 보장하였다.

《로천부재공장》이라는 말도 이무렵에 나왔다.

당시 수도건설장에 필요한 부재는 블로크공장에서 많이 생산보장하였는데 건설속도가 높아지면서 부재생산이 따라서지 못했다.그래서 건설자들이 발기한것이 《로천부재공장》이였다.건설자들은 대동강 한가운데(지금의 5월1일경기장자리)에 로천부재생산기지를 꾸리고 부재를 생산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렸다.자연조건을 그대로 리용하여 부재를 생산함으로써 전기와 석탄을 비롯한 막대한 동력, 연료, 수송수단을 절약하게 한 《로천부재공장》에 대한 이야기는 당시 건설자들이 어떻게 예비를 찾고 동원했는가를 보여주는 생동한 사실이라고 할수 있다.마침내 영웅적인 수도건설자들은 이해 12월 15일까지 7 000세대분의 자재와 자금, 로력으로 3~4년이 걸려야 지을수 있다던 2만여세대의 주택을 단 한해사이에 건설하는 기적의 속도, 14분만에 한세대씩 살림집을 조립하는 평양속도를 창조하여 세상을 놀래웠다.

전후 천리마대고조시기 건설장마다에 활활 타오른 조립식건설의 봉화, 세상을 들었다놓은 유명한 평양속도,

그것은 로동계급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현명한 령도의 빛나는 결실이였고 제손으로, 우리 식으로 행복의 터전을 마련하려 산악같이 일떠선 우리 로동계급의 자력갱생의 산물이였다.

이때부터 평양속도는 천리마속도와 함께 우리 나라 사회주의건설의 눈부신 발전속도를 표현하는 대명사로 불리우게 되였다.평양시 건설자들은 그후 이 속도를 견지하여 여러 기념비적건설물을 짧은 기간에 일떠세웠다.

본사기자 정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