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자식의 도리

 

밤새 기승을 부리던 눈보라는 먼동이 터오도록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허나 압록강기슭의 한 등판에서는 곡괭이질소리, 삽질소리, 웃고 떠드는 소리가 줄곧 울리고있었다.

삼지연시건설 2단계공사를 성과적으로 끝낸 기세로 3단계 대상과제수행에 진입한 216사단 철길건설려단 함경북도련대 회령시대대의 돌격대원들이였다.북방의 강추위속에서도 부사채취에 여념이 없는 그들의 후더운 땀과 입김에 의해 마치 작업장에서는 물안개가 피여오르는듯싶었다.

그들속에는 유별나게 나이가 많아보이는 한 녀인이 있었다.회령시대대의 리복순정치지도원이였다.

예순고개를 넘었건만 삽을 쥐고 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걸싸게 일을 해제끼던 그는 잠시 허리를 폈다.이른새벽부터 작업장들을 돌아보던 함경북도련대 정치부장이 다가오는것을 띄여보았던것이다.

《이제는 약속을 지킬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2단계공사도 끝났는데…》

정치부장은 이렇게 한마디 던지고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총총히 걸음을 옮겼다.아무리 말해야 시원한 대답이 없으리라고 여긴 모양이다.

정치지도원의 속눈섭이 알릴듯말듯 가늘게 떨리였다.년로보장나이도 훨씬 지났는데 이제는 제대되여 편히 쉬는것이 어떻겠는가고 권고하는 정치부장에게 2단계공사과제나 마무리하고보자며 미루어온것이 벌써 몇번째이다.

(세월도 참…)

저도모르게 긴숨이 새여나왔다.그의 눈앞에는 잊지 못할 추억들이 어제런듯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 제자의 도리를 다하여 장군님을 충정다해 모셔야 하며 장군님의 구상과 념원을 현실로 꽃피워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는 북방의 눈길을 따라 한대의 자동차가 달리고있었다.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를 대로천박물관으로 꾸리기 위하여 새로 조직된 전국당선전일군돌격대(당시)에 망라된 회령시대대의 돌격대원들이 삼지연전구로 가고있었다.

《정치지도원동진 어떻게 돌격대에 입대하게 되였습니까?》

운전사의 물음에 정치지도원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가 돌격대에 입대하겠다고 제기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라와했다.전도가 촉망되는 시당일군인 그가 무엇때문에 가정부인의 몸으로 한두달도 아니고 몇해가 걸릴지도 모르는 돌격대생활을 하겠다고 하는지 모를 일이라고 머리를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자기의 선택을 자랑스럽게 여기였다.

복순은 광부의 집에서 나서자랐다.그의 아버지는 일을 해도 남보다 두몫, 세몫씩 해제끼고서야 성차하는 소문난 혁신자였다.늘 밤이 깊어서야 집에 들어왔다가 이른새벽에 나가는 아버지여서 어쩌다 만날 때면 기쁘기보다 오히려 서먹서먹해지군 하였다.

그렇게 언제 봐야 일밖에 모르던 아버지가 공훈광부의 명예칭호와 함께 어버이수령님의 표창장을 받아안고 울먹이며 하던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나라없던 세월같으면 세상 천하디천한 굴쟁이로 버림받았을 내가 이런 하늘같은 은덕을 받아안게 될줄이야…

너희들도 부디 잊지 말아라.》

눈시울을 적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호수마냥 잔잔하던 어린 가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며 바위에 새긴 글발처럼 깊이 자리잡았다.

(평범한 광부의 딸인 내가 과연 어떻게 처녀시절부터 당일군으로 성장할수 있었던가.고마운 그 사랑에 보답할수만 있다면…)

이렇게 되여 내짚은 걸음이였다.

그는 저으기 뿌듯해지는 마음을 안고 운전사에게 말했다.

《난 돌격대에 탄원했어요.》

* *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그의 대대는 높고 험한 후치령에서 로반공사를 진행하고있었다.

휴식참에 그는 종이우에 간단히 몇자 적었다.

《여보, 막돌채취에 필요한 함마와 정대랑 좀더 보내주었으면 해요.그리고 애들 학과성적도 몹시 궁금하구만요.…》

그가 이렇게 자기의 생각을 남편과 편지로 나누는지도 벌써 여러해째 되였다.집에서 기르던 돼지는 물론 대원들에게 필요한 생활필수품까지도 헤아려 일일이 차편에 보내주군 하는 남편을 온 대대가 친지처럼 여겼다.

그의 눈앞에는 편지를 펼쳐보며 기쁘게 웃을 남편의 모습이 선히 밟혀왔다.그런데 그것이 보낼수 없는 편지가 될줄이야…

《복순동무, 마음을 굳게 가지오.방금 전화가 왔는데 남편이 그만…》

온 건설장을 헤매며 그를 찾아다녔다는 한 일군이 갑자르다가 겨우 뗀 첫말이였다.

순간 그의 손에서 원주필이 맥없이 미끄러져내렸다.눈앞이 새까매지고 귀전에서 윙윙하는 소리만 들려올뿐 온몸의 기운이 일시에 빠져나가는것만 같았다.

정작 어린 자식들과 시어머니를 두고 떠나자니 송구스러워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에게 집걱정으로 발목을 잡히면 큰일을 못한다며 힘껏 떠밀어주던 남편, 며칠전의 편지에서도 공사가 힘들수록 대원들을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라고 당부했던 남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받드는 한길에서 다진 맹세 변함없이 지켜가자던 남편이 그렇게 갑자기 떠날줄 어이 알았으랴.

집에 도착하여 장례를 치른 후에야 그는 제정신을 차리였다.아래목에 나란히 누워자는 자식들에게서 눈길을 뗄수 없었다.아직도 눈물자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맏아들 진혁이와 둘째 진일이 그리고 숨소리가 별로 고르롭지 않게 느껴지는 시어머니…

그의 귀전에는 남편도 없는데 가정을 돌보면서 시에서 다시 함께 일하자고 하던 시당일군들의 목소리가 쟁쟁히 울려왔다.아무리 곁에서 돌봐준다고 한들 혈육만이야 하겠는가며 무작정 집에 눌러앉으라고 설복하던 이웃들의 모습도 눈앞에 밟혀왔다.주부의 손길이 가닿지 못해 별로 엉성해보이는 집안의 모습도 가슴을 허비였다.

(정말 이제부터라도 집에 돌아와 어머니구실, 며느리구실을 해야 하지 않을가.)

여러 갈래로 갈마드는 생각에 잠 못 이루던 그의 가슴속에 불현듯 주체91(2002)년 10월 삼지연땅에서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뵙던 영광의 순간이 뜨겁게 되새겨졌다.수년세월 때없이 돌이켜보던 못 잊을 화폭이였건만 그밤에는 더더욱 간절해졌다.

돌격대원들의 생활에 대해 하나하나 물어주시며 일을 잘하라고 그에게 당부하시던 위대한 장군님,

허나 그이께서 또다시 멀고 험한 전선길을 떠나신 후 커다란 후회가 가슴을 치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던 그였다.

(내가 왜 철없이 어버이장군님앞에 영웅메달을 달고나섰을가.…)

평범한 광부의 자식을 당일군으로 키워주시고 백두대지에 묻어가는 순결한 땀을 그리도 값높이 여기시며 로력영웅으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그 웅심깊은 사랑을 미처 다 헤아리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그는 얼마나 모대기였는지 모른다.

끊임없는 강행군길을 이어가시느라 수척해지신 어버이장군님의 영상이 가슴에 어려올 때면 장군님 어깨우에 실린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지 못하는 자식들이 천이면 뭘하고 만이면 뭘하겠는가 하는 생각에 잠결에도 소스라쳐 일어나던 그였다.

다음날 아침 그는 두 자식을 불러앉혔다.

《이제는 너희들도 어지간히 철이 들었으니 내 말을 명심해듣거라.나는 또 돌격대로 떠나가야겠다.》

《어머니, 아버지도 없는데 꼭 가야 하나요?》

아들들의 눈가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다.

《이 어머니도 너희들과 함께 있고싶다.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내가 어떻게 너희들의 부모구실을 바로할수 있겠니.이 어머니는 한생토록 당의 딸답게 살겠다고 장군님께 맹세하였단다.…》

그 맹세를 지켜 자식의 도리를 다할 때만이 어머니구실을 다할수 있다는것을 어린 마음으로야 어이 다 헤아리랴만 그날 그는 아들들에게 많은 말을 해주었다.당의 뜻을 받들어 어렵고 힘든 전구들에 달려나가 한생을 깡그리 바쳐가는 유명무명의 돌격대원들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강렬한 그들의 가정과 집단, 동지들에 대한 사랑과 정에 대하여…

다음날 아침 그는 두 아들과 시어머니, 시당일군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삼지연으로 떠났다.

* *

세월은 살같이 흘렀다.어느덧 그는 예순고개를 넘어섰다.그런것으로 하여 삼지연시건설 2단계공사과제를 성과적으로 수행한 오늘에 와서는 련대정치부장처럼 그에게 제대를 권고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하지만 마음속깊이에 소중히 간직된 맹세, 한생을 다 바쳐서라도 위대한 장군님께 자식된 도리를 다하려는 그의 열망은 더더욱 뜨거워만 갔다.

이른새벽부터 작업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그는 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하자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이 모셔져있는 삼지연시의 하늘가를 우러렀다.

그의 귀전에는 삼지연군 읍지구(당시)준공식이 성대히 진행된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러 당창건 75돐까지 3단계공사를 기어이 완공할 굳은 결의를 안고 보무당당히 행진해가던 발구름소리가 다시금 뜨겁게 울려왔다.

찾으실 때마다 삼지연군을 세계가 보란듯이 훌륭히 꾸리는 사업은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 제자들인 우리 군대와 인민의 마땅한 도리이고 혁명적의무이라고 하시며 장군님의 영원한 전사, 장군님의 충직한 아들딸들로서의 의리와 본분을 다해가고있는 전체 건설자들에게 자신의 뜨거운 동지적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하시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당부에 접하고 가슴들먹이던 나날들도 눈앞에 선히 안겨왔다.

정녕 216사단 건설자들의 힘찬 발구름소리는 대를 이어 위대한 어버이를 높이 모시고 사는 이 나라 천만아들딸들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서라도 자식된 도리를 다 해나가려는 불같은 신념의 분출이였다.

경애하는 원수님 따라 하늘땅 끝까지 가고갈 신념에 넘쳐있는 이 땅의 평범한 공민들이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인생이란 어떤것인가를 자기들의 실천적모범으로 후손들에게 가르쳐주는 뜻깊은 삶의 메아리였다.

그는 저도모르게 새 힘이 용솟음쳐 땅에 삽날을 더 깊이 박았다.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혁명의 성지에 자신의 깨끗한 마음을 다 바쳐갈 충성의 일념을 담아…

본사기자 리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