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갱생으로 승리 떨쳐온 력사를 돌이켜보며

30여일만에 태여난 우리의 첫 《천리마》호뜨락또르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의 전야마다에서 힘찬 동음을 울리는 《천리마》호뜨락또르들, 그 철마들을 바라보느라면 우리 혁명의 어려웠던 시기 몸소 뜨락또르생산을 발기하시고 그 투쟁을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대하여 그리고 수령님의 원대한 뜻을 높이 받들고 우리의 힘, 우리의 손으로 첫 뜨락또르를 만들어낸 생산자들의 영웅적투쟁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게 된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자력갱생은 우리 혁명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며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원동력입니다.》

우리의 로동계급이 첫 뜨락또르생산에 궐기한것은 주체47(1958)년 10월이였다.

당시 사회주의협동화가 완성된 우리 나라 농촌에서는 농촌경리의 기술적개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업이 나서고있었다.

특히 농촌에서 로력이 가장 많이 드는 운반작업과 밭갈이작업을 기계화하기 위하여 뜨락또르와 같은 선진농기계의 대수를 늘일것을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요구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기양의 로동계급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의 로동계급에게 남에 대한 의존심을 버리고 대담하게 자체의 힘으로 뜨락또르를 생산할데 대한 영예롭고도 무거운 임무를 주시였다.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은 동무들을 믿는다고 하시며 동무들이 당이 준 이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리라고 확신한다고 뜨겁게 고무해주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수한 농기계나 만들던 자그마한 농기계공장에 지나지 않던 공장에서 뜨락또르와 같은 기계를 만든다는것은 보통의 상식으로는 생각할수 없는 일이였다.

기술신비주의와 보수주의에 사로잡힌 일부 사람들은 뜨락또르를 생산하겠다는 열의는 좋으나 기술적으로 좀더 타산해보고 토론하는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선진국가에서도 도면만 그리는데 6개월이상 걸리는데 도면은 언제 그리고 부속품은 언제 깎아서 뜨락또르를 한두달내에 만든다는것인가고 반대하여나섰다.지어 뜨락또르를 만드는 품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사다가 쓰는것이 더 낫다고 떠벌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불타는 심장에 받아안은 이곳 로동계급은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기어이 맡은 과업을 수행할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그들은 당시의 어려운 조건에서도 조금도 주저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후 공장로동계급은 회의실에 모였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앞을 다투며 연단으로 뛰여나가 남을 쳐다보지 말고 자체의 힘으로 뜨락또르를 기어이 생산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무조건 관철하자고 격동된 심정을 토로하였다.

경험도 전문기계설비도 도면도 없었지만 그들은 뜨락또르를 한달동안에 만들어내자는 목표를 내세우고 달라붙었다.

그때 그들에게 있은 기계란 몇대의 선반과 볼반이 전부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 무슨 기계가 더 있어야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뜨락또르를 분해해놓고 부속품의 도면을 하나하나 그리였으며 그것을 보면서 부속품을 깎기 시작하였다.

2 000여종의 부속품이 있어야 하는 뜨락또르를 자기 규격에도 맞지 않는 소재를 써가면서 생산한다는것은 실로 용이한 일이 아니였다.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작업이여서 어떤 때는 한개의 부속을 깎는데 몇번씩 실패하군 하였다.

정력을 다하여 하나하나 만들어낸 부속품들을 정밀하게 연마해야 할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였다.그런데 공장에는 연마반이 없었다.

연마반이 없다고 뜨락또르를 못 만들겠는가.손바닥으로 문질러서라도 연마를 하자.

그들은 농장들에 달려나가 벼짚을 실어왔다.그리고 현장에 가마니를 펴고앉아 그 벼짚으로 뜨락또르부속품들을 연마하기 시작하였다.

거치른 부속품의 표면들을 벼짚으로 거울처럼 반짝거리게, 정밀하게 연마한다는것은 결코 헐치 않았다.

웃옷을 벗어던지고 현장에서 살다싶이 하면서 벼짚으로 그것들을 연마하고 또 연마하는 그들의 몸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밥을 가지고나온 안해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들이 그런 일이야 왜 우린들 못하겠는가고 하면서 전투장에 그대로 눌러앉았다.작업장은 불도가니마냥 들끓었다.

뜨락또르에서 전조등체라고 하면 극히 간단한것이다.하지만 이 전조등체 하나에도 뜨락또르생산자들이 얼마나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으로 투쟁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전조등체를 만들기 위해 굳게 다진 땅에 오목한 홈을 판 다음 거기에 달군 철판을 놓고 망치로 때리였다.그런데 바가지형으로 오목하게 뽑아져야 할 철판은 구멍이 뚫리거나 터지군 하였다.

실패에 실패가 뒤따랐으나 그들은 이악하게 달라붙어 37번만에야 마침내 전조등체를 만들어낼수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연마석으로 갈고 새끼로 닦고 또 닦아 마침내 손색없는 제품으로 만들었다.

복잡한 기관본체와 변속함본체 그리고 섬세한 기술을 요구하는 유압장치 등도 그들은 제힘으로 가공하고야말았다.

뜨락또르의 조립을 마치고 가슴을 조이며 첫 발동을 걸어보았으나 웬일인지 좀처럼 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며칠간의 악전고투끝에 유압계통의 결함을 퇴치하고 다시 발동을 걸었다.이번에는 발동이 걸렸지만 뜨락또르가 앞으로 가는것이 아니라 뒤걸음을 쳤다.그들의 가슴은 타는듯 하였다.

뜨락또르를 몽땅 뜯어놓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정확한 설계도면이 없는탓으로 어느 부속이 제대로 안되였는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공장로동계급은 이를 악물고 떨쳐나 30여일만에 끝내 뜨락또르제작을 완성하고야말았다.

첫 뜨락또르 《천리마》호의 생산과정, 그것은 참으로 보수주의, 소극성과의 투쟁, 자기 힘을 믿고 하자고 달라붙으면 그 어떤 요새도 점령할수 있다는 억센 신념의 뿌리가 더 깊이 내려진 투쟁의 나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로동계급이 만든 첫 뜨락또르 《천리마》호를 보시고 잘 만들었다고, 신비주의란 없다고, 대단하다고 만족해하시며 거듭 치하해주시고 고무해주시였다.

공장로동계급은 뜨락또르의 첫 동음을 울린 때로부터 5년이 지나서는 수만대의 뜨락또르를 생산하는 기적을 창조하였으며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보다 현대적인 뜨락또르들을 련이어 만들었다.

진정 백두밀림의 병기창에서 높이 울린 자력갱생의 마치소리가 있었기에 천리마대진군의 벅찬 시대의 창조물인 첫 뜨락또르가 태여날수 있었으며 바로 그것을 영광스러운 시대의 이름이 비낀 《천리마》라는 이름으로 부를수 있었던것이다.

본사기자 김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