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원수님 따라 백두의 행군길 끝까지 이어가리

로동신문사 기자, 편집원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 체험기(1)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단행하신 력사적인 백두산군마행군길을 따라 온 나라 전체 인민이 《백두산대학》으로 향하고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로동신문사 기자, 편집원들도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답사행군길에 올랐다.허리치는 생눈길과 칼바람을 헤치며 항일의 옛 전구를 편답하던 나날은 《백두산대학》이야말로 위대한 전통과 불굴의 신념을 뼈속깊이 새겨주는 혁명정신무장의 최고전당이며 백두의 행군길은 백년이고 천년이고 대를 이어 가고가야 할 조선의 길, 승리의 길이라는것을 심장으로 절감하게 한 나날이였다.

본사편집국은 백두산열풍으로 끓어번지는 시대의 거세찬 숨결을 더해주기 위하여 로동신문사 기자, 편집원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 체험기를 련재하여 싣게 된다.

본사편집국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가들은 백두의 칼바람맛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겨울이다.

그러나 이 땅우에는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뜨거운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치고있다.

백두산에로의 답사열풍,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한 혁명정신무장사업의 된바람이다.

가자, 《백두산대학》으로! 만나자, 혁명의 전구에서!

이 하나의 신념과 의지로 심장의 피를 펄펄 끓이며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백두산, 백두산으로 달려가고있다.

 

《백두산행렬차》

 

공기부터가 달랐다.

북변의 혜산청년역은 전국각지에서 구름처럼 모여온 수많은 답사자들로 인파를 이루고있었다.

나이와 직업은 서로 달라도 한사람같이 모자에 오각별을 달고 어깨에 배낭을 멘 모습은 꼭 조국에로의 진군을 앞둔 항일빨찌산대오같았다.누구라 할것없이 패기와 열정에 넘쳐 서로서로 《백두산대학》의 입학생이 된 감격과 기쁨을 나누고있었다.

잠시후 우리모두는 혜산-삼지연렬차에 올랐다.

흰색바탕에 붉은색으로 띠장식을 한 렬차는 의자들의 색갈도 모두 붉은색이였다.몸도 마음도 붉게 물들여지는듯 한 렬차에 오르니 한시바삐 백두산으로 오르고싶은 열망이 더욱 세차게 불타올랐다.

우리의 이 마음을 알아서인가 기관차가 출발을 알리는 기적소리를 높이 울리였다.렬차가 점점 속도를 높이자 우리의 마음은 폭풍을 안은 밀림처럼 세차게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간다, 드디여 우리는 백두산으로 간다.

정녕 얼마나 가고싶던 혁명의 성산인가.

그가 누구이든 한생에 꼭 가고싶은 곳이 있다.

비록 그곳은 매 인간의 사상과 리념, 신앙에 따라 서로 다를수 있겠지만 우리 민족은 한사람같이 백두산에 오르기를 소원한다.

그것은 바로 백두산이 우리 민족의 넋이 깃들어있는 조종의 산이고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혁명력사와 투쟁업적, 백절불굴의 정신과 기상, 숭고한 풍모를 체현하고있는 력사의 증견자이기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인민은 시 《어디서나 백두산에 오르리》를 즐겨읊는것이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단행하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로의 군마행군소식이 전해진 그날에는 누구라 할것없이 격정속에 잠 못 들며 제일먼저 눈보라치는 백두산정에 오를 결심을 굳힌것 아니랴.

누군가가 마음속의 격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노래 《가리라 백두산으로》를 선창하자 순간에 합창으로 이어졌다.

참으로 이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얼마나 많은 계승자들의 대오가 백두산으로 물결쳐갔던가.

우리와 만난 렬차원은 지난해 10월 중순 혜산-삼지연렬차가 첫 개통의 기적소리를 울린 때로부터 불과 석달 남짓한 사이에만도 전국각지의 수많은 답사자들이 이 렬차를 리용하였다고 하면서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 렬차를 《백두산행렬차》라고 정담아 부른다고 덧붙여 이야기하였다.

《백두산행렬차》!

조용히 입속으로 따라외우느라니 뜨거워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간고했던 항일전의 나날을 못 잊어 백두산을 찾고찾으시던 우리 장군님을 이처럼 넓고 시원한 철길에 단 한번만이라도 편히 모시였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는 사무치는 념원에서였다.

60여년전 몸소 진대나무를 넘으시고 수풀속을 헤치시며 한걸음한걸음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로의 답사길을 열어주시던 그때 벌써 백두산지구를 통채로 혁명전통교양의 거점, 대로천혁명박물관으로 꾸리실 원대한 구상을 펼치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그날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백두대지로 달려나온 돌격대원들은 북방의 엄혹한 추위속에서도 함마와 정대로 한치한치 얼어붙은 대지와 암반을 뜯어내고 우리의 힘과 기술로 만든 중량레루로 철길을 건설하며 백두산으로 가는 대통로를 기어이 열어놓았다.

하기에 우리에게는 백두산으로 향한 두줄기 궤도가 단순한 레루와 침목으로가 아니라 자신과 백두산을 하나로 이어놓으려는 우리 인민들의 충성의 혈맥처럼 안겨왔다.

보천청년역을 지난 렬차가 압록강기슭을 따라 얼마쯤 달렸을 때였다.

압록강기슭에 오늘도 옛 모습그대로 놓여있는 떼목이 류달리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그우에서 방금 보천보에 민족재생의 불길을 올리고 압록강을 건느는 유격대원들이 어제날의 전장을 달려가는 우리를 향해 손저어주는듯 하였다.

눈굽은 반가움에 젖어드는데 누군가가 장편서사시 《백두산》의 한 구절을 조용히 읊었다.

뺨에서 흐르는 눈물

불빛에 피방울인듯

허지만 빨찌산들의 부르짖음-

《잘 있으라 동포여

싸우라 동포여!

우리 다시 만나자

해방연에 독립연에 다시 만나자!》

허나 나라찾는 싸움길에서 10대, 20대의 꽃나이에 백두광야에서 숨진 투사들은 그 얼마이던가.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간고했던 항일무장투쟁의 그 나날을 감회깊이 회고하시며 우리는 이처럼 전우들의 피로 물든 징검돌들을 하나하나 밟으면서 조국진군을 하였다고 뜨겁게 교시하신것 아니랴.

진정 조국해방의 그날을 위해 항일투사들 남모르게 흘린 선혈의 자욱자욱을 굽이굽이마다에서 뜨겁게 전하며 압록강은 북방의 혹한속에서도 얼지 않고 거세차게 흐르고있었다.

오늘은 또 투사들이 지니였던 혁명열, 투쟁열로 온몸의 피를 펄펄 끓이기 위해 우리 인민모두가 백두산에로 끊임없이 물결쳐가고있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압록강기슭을 벗어난 렬차는 이번에는 백두대지의 험준한 산발과 협곡들을 꿰지르며 기운차게 내달렸다.

《백두산행렬차》, 진정 여기에 투사들과 숨결도 발걸음도 함께 하려는 이 나라 민심이 어려있었고 백두폭풍의 돌진력으로 만난역풍을 뚫고나가려는 내 조국의 기상이 다 비껴있었다.

 

첫 행군길

 

백두의 천연수림과 어울리게 뾰족지붕을 떠이고 특색있게 일떠선 삼지연청년역을 나서니 우리 당의 령도아래 천지개벽된 삼지연의 새 모습이 우리의 감탄을 자아냈다.

허나 삼지연의 새 풍경은 비단 현대적으로 일떠선 새 거리에만 있지 않았다.

페부에 쩌릿이 흘러드는 백두산의 공기, 붉은기 펄펄 휘날리며 끝없이 흐르는 답사대오…

삼지연땅은 이런 높뛰는 숨결로 우리를 맞았다.

백두광야의 생눈길을 앞장서서 헤쳐갈 각오를 다지며 다시한번 신들메를 단단히 조여맨 우리는 삼지연대기념비로 향하였다.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안고 삼지연대기념비를 찾은 우리들을 반겨맞듯 눈가루를 뽀얗게 휘뿌려올리던 날씨도 잠풍해지고 청청한 하늘에서는 해볕이 쏟아지고있었다.

우리 당과 혁명의 깊고도 억센 뿌리가 내린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배경으로 높이 솟아 빛나는 항일대전의 전설적영웅이시며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동상을 중심으로 혁명의 홰불이 붉게 타오르는 봉화탑과 은빛세계를 펼친 삼지연못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조국진군의 길에 올랐던 항일유격대원들의 감격과 환희가 그대로 어려있는것만 같은 뜻깊은 이곳에 력사의 자욱을 남기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심중의 뜻이 미쳐와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저 멀리 백두산의 웅자를 한가슴에 안아보시며 우리 인민들과 새 세대들의 가슴속에 혁명의 개척기에 마련된 고귀한 전통과 숭고한 정신을 더욱 깊이 새겨주실 결심을 굳게 가다듬으신 우리의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

그날의 숭고한 의지를 가슴깊이 새기며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에 정중히 인사를 드린 우리는 대기념비의 조각군상들을 주의깊게 돌아보았다.

《숙영》편의 조각군상앞에 이르니 우등불곁에서 책을 읽는 투사의 모습이 깊은 감동속에 안겨왔다.

아마도 손에 든 저 책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밀림의 깊은 밤 우등불가에서 한자두자 쓰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이리라.

힘겨운 행군의 날에도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투사의 모습은 혁명가의 첫째가는 임무는 학습이라는 혁명의 철리를 우리모두의 가슴속에 다시금 깊이 새겨주었다.

나무등걸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고있는 투사의 모습을 보니 밀림의 깊은 밤 은은하게 울리던 《사향가》의 노래소리가 금시 귀전에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가랑잎을 깔고 쪽잠을 자면서도 꿈결에도 그리던 조국땅을 밟은 기쁨이 너무도 커서 투사는 그날에 불던 피리를 아직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가.

우리는 조국과 인민에 대한 항일혁명투사들의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호수에 독특한 형식으로 세운 조각군상 《조국의 물》에서 뜨겁게 느낄수 있었다.

삼지연의 물을 두손으로 떠올리며 감격을 금치 못하는 남대원과 허리굽혀 맑은 물에 손을 넣어보는 녀대원의 모습은 마치 우리에게 어서 와서 삼지연의 물맛을 보라고 속삭이는것만 같았다.

그날의 투사들이 지녔던 열화같은 조국애가 있어 이 땅우에 조국해방의 새봄이 찾아오고 인민의 행복한 새 생활이 꽃펴난것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투사들의 모습앞에서 좀처럼 발걸음을 뗄수 없었다.

이윽고 우리의 발걸음은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진군명령을 받들고 《갑무경비도로》로 보무당당히 행군하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모습과 진격의 나팔소리 높이 울리며 멸적의 기세로 내달리는 그들의 전투모습을 형상한 대조각군상앞에 이르렀다.

대오의 한가운데서 행군대렬을 돌아보는 름름한 체구의 지휘관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어서빨리 이 행군대오에 들어서라고 명령하는것만 같아 저도모르게 어깨우의 배낭끈을 추슬렀다.

그렇다.

력사의 그날 조국진군의 길에 울리던 진격의 나팔소리는 오늘도 쟁쟁히 울리고있다.

드디여 우리는 명령받은 병사마냥 백두산에로의 첫 행군길에 나섰다.

보폭도 힘차고 기세도 드높았다.손에서는 붉은기가 펄펄 휘날리고 혁명가요의 노래소리는 천고의 밀림속으로 우뢰소리마냥 메아리쳐갔다.배낭마다 덧붙인 《백두의 혁명정신》, 《혁명신념》 등의 표어들은 우리의 용기를 백배해주었다.

정녕 우리가 첫 행군길에 오른 그 순간은 매 사람에게 있어서 인생의 가장 성스러운 모습을 남기는 순간이였다.

우리 한생 항일의 군복차림으로 언제 어디서나 오늘의 이 보폭, 이 기세로 당을 따라 한길을 가리라.

그 길에 순간이나마 나약해질 때가 있다면 우리 다시 여기 찾아와 지금 섰던 이 자리에 다시 서리라.

이것이 어찌 우리만의 심정이랴.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장엄한 모습을 보았다.

삼지연대기념비앞에서 백두산으로, 대홍단으로 힘차게 행군해가는 계승자들의 대오,

정녕 그것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을 《백두산대학》의 영원한 스승으로 높이 모신 내 조국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풍경이였다.

 

빨찌산모닥불

 

삼지연대기념비를 떠난 대오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군마행군로정을 따라 제일먼저 찾은 곳은 리명수혁명사적지였다.

박달나무도 얼어터진다는 북방의 강추위속에서도 자기의 본태를 잃지 않고 백줄기, 천줄기로 도도히 흘러내리는 리명수폭포,

이것을 어찌 백두산천지에 시원을 둔 땅속물이 현무암의 틈사이로 흘러나오는 보기 드문 자연현상이라고만 하랴.

솨-솨- 하는 소연한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혁명의 붉은기를 휘날리시며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로의 첫 답사행군대오를 이끄시던 그 나날 리명수폭포의 장쾌한 소리를 들으시며 간난고초를 다 이겨내고 수령님을 따라 조국으로 진군한 투사들은 삼지연의 맑은 물을 마실수 있었고 정다운 조국의 물소리도 들을수 있었다고, 우리는 수령님을 모시고 혁명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나간 항일유격대원들의 그 신념을 깊이 새겨넣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고귀한 가르치심이 절절하게 울려오는것 같아 우리의 가슴은 후덥게 달아올랐다.

천리준마를 달리시여 이곳을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뜻깊은 자욱을 남기신 그날의 사연도 목메여 전해주는듯 끝없이 울리는 물소리, 물소리…

하기에 우리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된 그 사연깊은 물소리는 세대와 세대를 이어 백두의 행군길을 끝까지 가고가라고 깨우쳐주며 그렇듯 영원한 메아리로 울려퍼지는것 아니겠는가.

리명수의 물소리를 가슴속에 소중히 안고 우리가 다음으로 찾은 곳은 청봉숙영지였다.

이곳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무산지구진공작전을 위하여 주체28(1939)년 5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조국에 진출하시여 첫 밤을 보내신 혁명전적지였다.

조국에서의 첫 밤, 왜서인지 이 말이 우리의 생각을 뜨겁게 하였다.

타향의 깊은 밤 하늘중천 높이 솟은 둥근달만 바라보아도 두고온 고향생각으로 온밤 잠 못 들진대 한두달도 아닌 오랜 세월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해 풍찬로숙하다가 위대한 수령님을 진두에 높이 모시고 조국땅을 밟게 된 투사들의 심정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그날의 밤은 고난의 밤이 아니였다.

진정 투사들에게 있어서 조국에서의 그 첫 밤은 서로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와 아들이 뜻하지 않게 상봉한것과 같은 기쁨의 밤, 조국해방의 새날을 그려보게 한 환희의 밤이였다.

아마도 그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끼니마저 잊으며 조국땅을 밟은 감격과 흥분을 앞을 다투어 나무마다 아로새겼으리라, 숙영지의 우등불가에서 밤깊도록 떠나온 고향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으리라.

그날의 투사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우리에게 강사는 청봉숙영지에서만도 수많은 구호나무와 우등불자리가 발굴되였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청봉의 밀림속에 활활 타오른 빨찌산모닥불!

조국에서의 첫 숙영의 밤 투사들은 그 모닥불곁에서 신음하는 조국인민들에게 해방의 기쁨을 안겨줄 멸적의 의지 굳혔으리라.

바로 그래서이리라.

사연도 많은 항일의 옛 전구들에 천리준마의 발굽을 찍어가시던 그날 우리 원수님께서 청봉의 밀림속에서 빨찌산모닥불을 피우신것은.

자그마한 모닥불이 한겨울의 맵짠 추위를 얼마나 덜어주련만 우리 원수님께서는 투사들처럼 모닥불의 그 작은 불길앞에서도 혁명열, 투쟁열을 다시금 가다듬으시였으니 진정 그 불길은 조국과 인민을 위함이라면 자신을 깡그리 불태워갈 열의로 심장을 끓이는 이 나라 혁명가들만이 지펴올릴수 있는 신념의 불길이였다.

그렇다.빨찌산모닥불, 그 불길은 항일의 그날에 타올랐으나 언제 한번 우리의 마음속에서 꺼진적이 없었다.

그 모닥불만 가슴에 안으면 그 어떤 사나운 광풍이 몰아쳐와도 두렵지 않고 승리의 날을 반드시 안아올수 있다.

이 억척불변의 신념을 더욱 굳게 가다듬으며 행군의 쉴참에 모닥불을 피우고 혁명가요합창경연,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연구발표모임을 비롯한 다채로운 정치문화사업을 진행한 우리는 건창숙영지에로 행군길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