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생토록 변함없이

평범한 우편통신원의 생활에서

 

올해는 덕천시체신소 우편통신원인 박홍순동무가 우편통신원사업을 시작한 때로부터 31년이 되는 해이다.

결코 짧다고 할수 없는 이 세월 박홍순동무는 자신과 후대들이 한생 변함없이 간직하고 살아야 할 참으로 귀중한 인생체험을 하게 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라는 물음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박홍순동무는 인생초엽이라고도 할수 있는 20대나이에 본의아닌 과오를 범하고 심한 좌절감에 빠져 몸부림쳤다.하지만 어머니당에서는 그가 바른길에 들어서서 한생을 보람있게 살수 있도록 사랑의 넓은 품에 안아주었다.

그는 하루하루를 줄달음쳐 살았다.당출판물체송사업을 위해, 사회와 집단을 위해 눈보라치는 밤길도, 비뿌리는 새벽길도 주저없이 걸었다.

그 길에 흘린 땀은 얼마였던가.

그는 순간의 휴식도 답보도 몰랐다.지나온 생활의 공백을 메꾸자면 하루를 열흘, 백날맞잡이로 살아야 했던것이다.하지만 그는 자기가 걷는 길들을 사려깊은 눈길로 바라보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는것을 미처 알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응당 할 일을 한 그에게 분에 넘치는 감사를 보내주시였다.더해만 가는 그 사랑에 떠받들려 박홍순동무는 수많은 공로자들과 어깨나란히 국가적인 대회에도 참가하였다.

그의 안해 역시 제4차 전국어머니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니였다.

진정 우리 당은 상처입은 자식일수록 더 마음을 쓰고 자식의 소박한 소행도 기특히 여기며 천만가지 사랑을 더해주는 위대한 어머니였다.

그 품에 안겨사는 행복은 얼마나 큰것인가.

박홍순동무의 생활은 더욱 바쁘게 흘렀다.지치고 힘들 때도 적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자기를 지켜보고있을 자애에 넘친 눈빛을 생각하며 용기를 가다듬군 하였다.

그는 우편통신원일로 바쁜 속에서도 틈틈이 지원물자를 마련하여 중요대상건설장들에 보내주었고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그것을 들고 전쟁로병을 찾아갔다.

그에게는 남이 없었고 네일내일이 따로 없었다.모두가 우리 당의 품, 우리 사회주의제도에 안겨사는 한식솔이기에 그는 언제인가 한 녀성이 본가집으로 가던 도중 덕천려관에서 해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선참으로 달려가 애기의 옷과 이불, 포단을 안겨주었고 어느해 겨울에는 선로공들을 도와 온 가족이 밤새껏 불을 피우며 언땅을 까내기도 하였다.

박홍순동무의 가정은 원군길에도 뚜렷한 자욱을 새겨갔다.

이렇듯 보답의 마음으로 심장을 불태우는 그와 가족에게 있어서 로동과 생활의 전 과정은 곧 헌신과 애국의 련속이였다.

박홍순동무는 오늘도 충성의 길, 애국의 길을 꿋꿋이 걷고있다.그 길에서 한생의 보람과 긍지를 찾고있다.

본사기자 리철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