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상전선의 전초병-모범선동원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초급선전일군들은 능동적으로 활동하여야 합니다.》

당정책옹위전의 기수, 대중의 심장에 불을 다는 정치활동가라는 자각을 안고 각지 선동원들은 높은 실력과 실천적모범, 뜨거운 정으로 단위를 단합되고 전진하는 집단으로 만들어나가고있다.모범선동원들의 소식을 아래에 전한다.

 

사랑과 헌신으로 이어온 30여년

리원군 장축협동농장 제1작업반 2분조 현화심동무

 

당초급선전일군으로 내세워준 당의 믿음을 한생의 재부로 간직하고 맡은 일을 훌륭히 수행하고있는 선동원들가운데는 리원군 장축협동농장 제1작업반 2분조의 현화심동무도 있다.

그의 선동원사업년한은 30여년이다.쉽지 않은 기간 그는 선동원사업을 책임적으로 진행해왔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그는 제손으로 고향땅을 꽃피워갈 희망과 포부를 안고 농사일을 시작하였다.늘 어려운 일에 남먼저 뛰여들군 하는 그의 장점을 보고 당조직에서는 선동원으로 사업할데 대한 믿음을 안겨주었다.

그날 현화심동무는 이렇게 마음다졌다.

(천리마시대의 붉은 선동원들처럼 내 한생을 빛내여가리라!)

그의 결심은 빈말이 아니였다.

새벽이면 그는 붉은기와 구호판들을 메고 남먼저 포전으로 달려나갔고 자기가 맡은 일을 끝내면 즉시 뒤떨어진 농장원들의 일손도 도와주었다.그리고 어려운 가정을 찾아 밤길도 걸었다.

선동자료들을 만드느라 밤을 꼬박 밝힌적은 또 얼마였던가.

그러자니 남들보다 많은 짐을 지고 달려야 하였으며 밤잠도 덜 자야 했다.

어느날 현화심동무는 한 농장원이 심하게 앓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그는 지체없이 그를 찾아갔다.병상태를 알아보는 과정에 수혈을 받아야 한다는것을 알고는 필요한 대책도 세워주었다.이에 그치지 않고 그가 완쾌될 때까지 성의를 다하였다.

언제인가는 일을 잘하지 못하여 말밥에 오르던 한 농장원을 꾸준히 교양하여 혁신자대렬에 내세워주었다.이렇듯 뜨거운 인정미를 지니고 농장원들을 이끌어주어 분조에서는 많은 농장원들이 당원으로, 초급일군으로 성장하였다.

현화심동무는 비단 인정미 하나로 대중을 이끌지 않았다.불같은 헌신 역시 그의 선동활동에서 본받을 점이다.

10년전 어느날 그는 농장의 일군들을 찾아가 저수확지, 랭습지를 맡겨줄것을 요구하였다.선동원인 자기가 앞장에 서야 대중이 따라서게 된다는 그의 간청에 일군들은 어쩔수 없이 승낙해주었다.

현화심동무는 지력을 높이기 위해 흙깔이를 하고 물도랑도 깊이 쨌으며 자급비료도 듬뿍 마련하였다.

품을 들인것만큼 열매가 맺혔다.하여 그가 맡은 포전에서 정보당 알곡소출은 두배이상으로 났다.

축산물생산에서도 현화심동무는 모범을 보이였다.그의 이신작칙은 말없는 선동으로 되였다.

이렇듯 뜨거운 인정미와 이신작칙으로 분조원들을 이끌고있기에 그를 가리켜 누구나 우리 선동원이라고 정답게 부르며 따르고있다.서로 돕고 이끄는 미풍이 높이 발휘되는 속에 분조는 화목하고 단합된 집단으로 되여 매해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게 되였다.

당의 크나큰 믿음을 한생의 재부로 간직하고 그는 오늘도 집단과 동지들을 위한 사랑과 헌신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가고있다.

본사기자 장철범

 

보답의 일념으로 심장을 불태울 때

평양밀가루가공공장 후방공급과 최영란동무

 

19년전 평양밀가루가공공장에 입직한 최영란동무는 그로부터 몇달후 선동원사업을 맡게 되였다.

투신력이 강하고 뜨거운 인정미를 지니고있으며 노래도 잘하는 그를 당조직에서는 선동원으로 내세워주었던것이다.

최영란동무는 자기를 그토록 믿는 당조직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맡은 일을 잘해보리라 결심하였다.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당정책을 해설해주었으며 어려운 일이 제기되면 남먼저 어깨를 들이밀었다.뒤떨어진 성원이 있으면 스스로 맡아 꾸준히 교양하여 바른 길로 이끌어주었다.또한 작업반원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예술선동을 벌리며 혁명과업수행에로 적극 추동했다.

그가 있는 곳에서는 늘 웃음꽃이 피여났으며 집단은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다.이 나날 그는 평양시식료련합기업소적인 선동원들의 보여주기에도 출연하고 여러 웅변경연과 선동경연에서도 순위권에 입선하는 영예를 떨치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최영란동무는 뜻밖의 일로 심한 부상을 입게 되였다.운신조차 할수 없는 형편에 처하게 되자 그의 생각은 착잡하였다.제일 괴로운것은 신체의 아픔보다도 과연 선동원구실을 할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였다.그럴바엔 차라리 일을 그만두는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까지 갈마들었다.

이런 때 그에게 힘과 용기를 안겨준것은 어머니당조직이였다.초급당위원장을 비롯한 당일군들이 한주일이 멀다하게 그를 찾아와 공장의 혁신적인 소식도 알려주고 보약재도 안겨주며 마음놓고 치료를 충분히 받도록 해주었다.또한 공장의 모든 종업원들이 그가 하루빨리 완쾌되여 다시 출근하기를 바란다는것을 매번 강조해주군 하였다.

집단과 동지들의 진정에 고무된 최영란동무의 마음은 굳세여졌다.그는 치료에 전념하여 마침내 정든 공장정문으로 다시 들어설수 있게 되였다.

공장당조직에서는 그의 건강을 념려하여 출퇴근뻐스로정도 다시 정해주었고 후방부문에서 일하도록 하는 조치도 취해주었다.

후방공급과에 배치된 그는 선동원의 임무를 더 잘 수행해나갈 결심을 가다듬었다.

어떻게 하면 당정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침투시키겠는가.

그의 모든 사색과 실천활동은 여기에로 지향되였다.

그는 공장의 모든 종업원들이 자주 찾는 문화후생시설들을 적극 리용하기로 결심하였다.목욕이나 리발을 하려고온 사람들이 여가시간에 볼수 있게 매 시기마다 각종 교양자료, 상식자료들과 시대정신을 반영한 노래들, 과에서 발휘된 긍정적소행들을 소개하는 속보 등을 카드와 걸그림형식으로 비치해놓는데 품을 넣었다.이에 대한 종업원들의 반영은 대단히 좋았다.

그의 선동원사업은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아직도 불편해하는 그를 념려하여 사람들이 만류하군 하였지만 작업과제가 제기되면 늘 앞장에 서서 이신작칙하였다.

정황선동능력도 부단히 높여나갔다.몇달전 철야로 진행된 밀하차작업때에도 그는 힘있는 선동으로 작업성원들의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성과적으로 끝내도록 하였다.

얼마전 모범선동원의 영예를 지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깨가 더 무거워진다고, 당의 믿음과 기대에 천만분의 일도 보답하지 못할가봐 걱정스럽다고.

그렇다.선동원의 임무를 당의 믿음으로 간직하고 보답의 일념으로 심장을 불태울 때 높은 자각도 책임감도 열정도 생겨나게 된다는것을 최영란동무의 지난 기간의 사업은 웅변으로 보여주고있다.

본사기자 안철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