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분공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의 부름에 적극 호응해나설줄 아는 사람만이 당과 수령에게 충실할수 있으며 일생을 부끄럽지 않게 살수 있습니다.》

지난 4월 어느날 구장군 읍지구의 어느 한 살림집에서는 밤깊도록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성희야, 난 이제부터 산에 가서 살련다.아무래도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더 편할것 같구나.…》

종이우에 글을 쓰고난 리창남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운룡리까지 25리정도이니 자전거로 한시간반, 그러니 하루에 세시간은 더 일할수 있겠군.…)

그 세시간동안 돌은 얼마나 춰낼수 있고 나무모와 약초뿌리는 또 얼마나 심을수 있겠는가를 속구구해본 그는 빙그레 웃음을 짓고 보풀이 인 일기장을 펼치였다.

《운룡리 넙적골에 나무와 약초를 10월 10일까지 전부 심을것.》

리창남은 자기자신에게 스스로 이런 분공을 주었다.

* *

아침일찍 집을 나선 리창남의 마음은 날개라도 돋친듯 둥 떴다.산에 간다고 생각하니 쟁개비며 그릇가지들이 광주리안에서 요란스럽게 쟁강쟁강하는 소리마저 정답게 들려왔다.그는 자전거발디디개를 힘껏 밟았다.

리창남이 처음으로 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구장군 대풍협동농장(당시)에서 축산작업반장으로 일할 때부터였다.

그 동기를 굳이 말한다면 오래전부터 품고있은 《산림이 울창해야 농토도 보호된다.》는 실농군다운 지론때문이였고 또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잘하기 위해서였다.축사를 짓자고 해도 서까래감이 있어야 하고 염소들을 튼튼히 기르자고 해도 방목을 많이 해야 하는데 작업반주변의 벌거숭이산에서는 그런것을 기대할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런데로부터 그는 하루일을 마친 뒤 혹은 휴식날이면 산으로 향했다.남모르게 땅속에 묻혀진 자그마한 씨앗들에서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리고 아지가 뻗었다.그렇게 해가 거듭 바뀌면서 산은 푸르러갔고 리창남은 그 모습에서 량심껏 땀흘린 보람을 가슴뿌듯이 느꼈다.어느새 그는 하루라도 산에 오르지 않고서는, 나무를 심지 않고서는 못살것처럼 여겨졌고 또 산림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않았다.

어느해 겨울 그의 집뜰안에는 세무지의 거름더미와 함께 자식들의 이름이 새겨진 경쟁도표가 나붙었다.겨울방학기간 남의 집 아이들이 자기 집 마당에서 뛰여놀 때 리창남의 자식들만은 거름을 모았다.저녁이면 녹초가 되여버리는 어린 자식들을 바라보는 안해의 마음은 좋지 않았다.꽃잎같이 여린 손에까지 거름을 쥐게 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어느날 그 심정을 그대로 터놓는 안해에게 리창남은 말하였다.

《여보, 제손으로 나무 한그루 키워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 나무가 자라는 땅이 무엇보다 귀하다는것을 알겠소.그리고 그런 사람이 앞으로 일을 하면 얼마나 잘하겠소.…》

따뜻한 봄날 리창남은 그 거름을 모두 산에 날라다 나무를 심었다.소년단넥타이를 날리며 나무뿌리를 덮은 흙을 꽁꽁 밟아주던 둘째딸이 문득 물었다.

《아버지, 나무심는건 아버지가 받은 분공이나요?》

《분공? 아니다.그저 우리가 사는 마을을 더 살기 좋게 만들고싶어서 아버지가 스스로 하는거란다.》

* *

1990년대 중엽 리창남은 가슴아픈 소식에 접하였다.위대한 장군님께서 새로 발굴되여 꾸려진 룡문대굴로 가시던 길에 산과 도로옆에 나무가 얼마 없는데 대하여 몹시 심려하시였다는것이다.

(이 구장땅에 숱한 당원들이 있으면서…나무도 제대로 심지 못해서…우리 장군님께 걱정을 끼쳐드렸구나.)

수십리길을 꼬박 걸어 룡문산에 이른 리창남의 얼굴로는 자책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지금껏 적지 않은 나무를 심었다고, 부끄럼없이 살고있다고 위안하며 만족해온 자신이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그날 밤이 깊어서야 마을에 들어선 그는 당세포비서(당시)를 찾아갔다.

《이제부터 휴식일마다 룡문산에 가서 나무를 심겠습니다.이것을 나에게 당적분공으로 주십시오.》

그후 휴식일이 오면 좋은 수종의 나무모를 안고 룡문산으로 가는 리창남을 청년들을 비롯한 작업반원들이 따라나섰다.

나무심기를 끝내고 그들은 룡문로동자구의 어느 한 집에 들렸다.위대한 장군님께서 90년대의 첫 영웅이라고 높이 내세워주신 김광철영웅의 고향집이였다.

장한 아들을 둔 영웅의 부모에게 노래도 불러주고 영웅의 어릴적 이야기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리창남은 작업반원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김광철영웅은 동지들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생명도 서슴없이 바치였는데 고마운 조국을 위해 우리가 땀이야 왜 바치지 못하겠는가.위대한 장군님께서 다시 우리 군을 찾아오시면 그때에는 기쁨을 드릴수 있게 더 많은 나무를 심자.…

언제나 부드러운 말과 행동으로 작업반원들을 이끄는 그였지만 그가 누구든 나무에 손대는것을 보면 성난 범처럼 무서워졌다.

고난의 행군시기 어느해인가 이런 일이 있었다.추운 겨울 어느날 아침이였다.지난밤 세찬 바람질에 혹시 상한 나무라도 있을가 걱정되여 일찌기 산에 오르던 그는 뜻밖의 광경앞에 우뚝 멎어섰다.한마을에서 사는 사람이 나무를 찍고있었던것이다.더 생각할 사이없이 급히 그에게 다가간 리창남은 도끼를 앗아냈다.

《성성한 나무를 찍다니 이게 무슨짓이요?》

마을사람도 순순히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아니, 제가 무슨 산림감독원이요 뭐요?…》

《내 한가지만 묻겠소.대체 나무를 몇그루나 심어봤소, 몇그루나? 당신도 손에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겠지.자기 몸 아픈건 아는 사람이 나무가 아파하고 산이 상처입는다는건 왜 몰라?》

분이 가라앉지 않아 한참 씩씩거리던 그는 나무에 생긴 도끼날자리를 가슴아프게 쓰다듬었다.그리고는 무릎을 꺾고 앉아 진물이 흘러나오는 나무의 상처를 새초로 꽁꽁 싸맸다.

다음해 나무심기철이 오자 리창남은 작업반원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나무를 심느라 북적이는 마을사람들속에 그 사람도 있었다.그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어줍게 웃었다.

《나도 반장동무처럼 나무를 많이 심겠수다.》

그후 리창남은 대풍협동농장을 떠났다.백령리에서 일하다가 또다시 조산협동농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주변의 산들에도 그가 심은 나무들이 억세게 뿌리를 내리였고 《산림애호》, 《산불주의》라고 리창남이 정성들여 쓴 나무패쪽들이 걸려졌다.

* *

아버지를 잘 모시려는 맏딸의 마음도 지극했고 밥상에 맛있는 음식을 한가지라도 더 올려놓으려고 애쓰는 둘째딸의 성의도 고마왔다.하지만 그 모든것을 한사코 마다한 리창남은 산중턱에 자기의 소박한 이사짐을 풀어놓았다.

원래 그는 년로보장을 받고 맏딸이 있는 강원도로 떠나갔었다.그러나 얼마 못 있어 다시 돌아왔다.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고향이 그립고 함께 살던 사람들이 보고싶어 못 견디겠노라고 범상히 대답했다.

구장군 읍에서 사는 둘째딸과 함께 지내면서 무엇인가 일거리를 찾아하던중 군적인 본보기로 될 양묘장이 운룡리에 꾸려지게 된다는것을 알게 된 리창남은 점심밥곽을 옆구리에 차고 스스로 《출퇴근》을 하며 일했다.그러나 로상에서 보내는 시간마저 아깝게 여겨져 아예 이곳에 침식을 옮기였던것이다.

집에서 가져온 짐을 대충 정리해놓고 리창남은 이내 일손을 잡았다.

10월 10일까지 계획했던 량의 나무와 약초를 다 심으려면 한시바삐 땅속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돌들을 다 걷어내야 할텐데 쉬염쉬염 해서는 어림도 없었다.땀으로 온몸을 흠뻑 적시며 호미질을 하는 사이 해는 벌써 서산너머로 사라졌다.결국 첫날에 초막을 지으려 했던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채 그날 밤은 한지에서 보내고말았다.

다음날 아침에도 그는 어뜩새벽에 일어났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아버지!》 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둘째딸 성희가 그가 남긴 편지를 보고 찾아온것이다.아버지의 흙투성이손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는 말없이 가지고온 보자기를 펼쳐놓았다.

《아버지, 아직 식사를 못했지요.밥을 가져왔으니 어서 드세요.》

마침 배가 출출했던지라 밥술을 푹푹 뜨던 리창남은 일순 굳어졌다.딸의 눈가에 가랑가랑 눈물이 고이고있었던것이다.아버지의 눈길을 피하려는듯 성희는 고개를 숙이였다.

《…아버지, 제가 뭘 잘못했나요? 혹시 아버지를 서운하게 한것이라도…어서 말씀하세요.내가 앞으로 아버지를 더 잘 모시겠어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리창남은 말했다.

《성희야, 아직 우리 구장군에 나무를 더 심어야 할 곳이 적지 않다.그것을 생각하면 고향에 바친 내 땀이 아직 모자라는것만 같구나.나야 당원이 아니냐.》

《나무를 심는것이 아버지의 한생의 분공인가요?》

성희는 어릴 때처럼 이렇게 되물었다.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나라를 위해 있는껏 땀을 바치고싶다.난 그렇게 하는것이 내 분공이라고 생각한다.》

이윽고 성희는 호미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오늘은 저도 아버지의 분공을 같이 수행하겠어요.》

그로부터 몇달후 리창남이 나무를 심으면서 짬이 날 때마다 지은 자그마한 초막가까이에 아담한 단층살림집 한채가 생겨났다.그것은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스스로 무거운 짐을 안고 성실한 땀을 바쳐가고있는 리창남을 위해 군당위원회와 군인민위원회에서 마련해준 집이였다.

매일 저녁 리창남은 밝은 불빛흐르는 새 보금자리에서 그날 한 일에 대하여 자기 량심앞에 총화짓는다.

뜻깊은 10월 10일이 다가올수록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부풀어오른다.멀지 않아 일기장에 《당원 리창남 분공을 수행하였음.》이라고 떳떳이 쓸수 있게 되였기때문이다.

본사기자 김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