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친선의 년대기에 아로새겨진 형제적우의와 전투적단결의 력사 불멸하리

오늘도 빛나는 용사들의 위훈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중국인민지원군용사들의 위훈을 잊지 않을것입니다.》

1950년 10월 25일, 항미원조보가위국의 기치밑에 조선전선에 달려나온 중국인민지원군 용사들은 전투마다에서 대중적영웅주의와 무비의 용감성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세월이 흘러 그들이 조선전선에 참전한지도 어느덧 70년이 되였지만 우리 인민은 오늘도 그들이 세운 위훈을 깊은 감회속에 뜨겁게 돌이켜보고있다.

1952년 가을 김화계선의 상감령일대에 방대한 무력을 투입한 적들은 상감령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상감령은 말그대로 불바다로 되였다.하지만 적들은 상감령을 점령할수 없었다.

중국인민지원군 용사들이 불타는 고지우에서, 갱도에서 영웅적인 방어전을 벌리고있었던것이다.

반공격전투과정에 고지중턱에서 갑자기 적화점이 불을 뿜기 시작하자 구분대 통신원이던 황계광용사는 자진하여 그 폭파임무를 맡아나섰다.적화점에로 접근하던 과정에 함께 전진하던 전우들이 희생되고 그는 팔과 어깨에 심한 부상을 당하였지만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이윽고 적화점에 다가간 그는 피끓는 가슴으로 원쑤의 불아가리를 막았다.황계광용사는 이렇게 21살의 청춘을 바치였다.

《이 원쑤놈들아, 올라올테면 올라오라.고지에는 항미원조보가위국의 전사, 중국공산당원 혼자만이 남아있다.공산당원이 고지를 지켜서있는 한 네놈들은 고지를 빼앗지 못한다!》

이것은 중국인민지원군 양근사영웅의 웨침이다.

양근사영웅은 총탄, 수류탄이 떨어지고 지휘부와의 통신이 끊어지자 이렇게 부르짖으며 폭약에 불을 달았다.그리고는 불달린 폭약을 그러안고 적들속으로 비호같이 몸을 날렸다.

그만이 아니였다.

교암산의 영웅으로 불리우는 리가발용사도 19살의 청춘을 바쳐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고 부대의 돌격로를 열었으며 허가붕영웅도 피끓는 가슴으로 적의 화구를 막았다.

우리 인민이 잊지 못하는 중국인민지원군 용사들중에는 소대를 능숙히 지휘하여 적의 돌격을 10여차례나 물리쳤으며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451고지를 지켜싸운 양춘증렬사도 있다.

적의 13번째 돌격을 물리치고난 고지에는 그 혼자만이 남게 되였다.그는 마지막수류탄을 거머쥐였다.전우들의 피의 대가로 지킨 조선의 고지를 어떤 일이 있어도 적에게 내여줄수 없었다.

전투를 앞두고 당앞에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항미원조보가위국의 전사답게, 공산당원답게 싸우겠습니다.》라고 한 맹세가 다시금 되새겨졌다.

그는 적들이 참호턱에까지 밀려들자 수류탄을 높이 추켜들고 적의 무리속에 뛰여들었다.요란한 폭음과 함께 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온몸이 불길에 휩싸였지만 심장의 고동이 멎는 순간까지 자기의 위치를 폭로시키지 않음으로써 습격전투임무를 보장한 구소운영웅도, 하루동안에 적의 맹공격을 40여차례나 물리치고 고지를 끝까지 지켜낸 호수도영웅도, 적련대지휘부를 족쳐버림으로써 부대전투승리에 크게 기여한 양육재영웅도 중국인민의 우수한 아들들이였다.

중국인민지원군 용사들은 이렇듯 조선의 고지들과 마을들을 자기 조국의 고지, 자기의 고향마을을 지키는 심정으로 피로써 사수하였다.

우리 인민은 우리 조국이 준엄한 시련을 겪던 때에 항미원조보가위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선전선에 참전하여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쳐싸운 중국인민지원군 용사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다.

본사기자 김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