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해 헌신의 자욱을 새겨가는 참된 과학자

《신양2》호복합균을 개발한 계응상사리원농업대학 생물비료연구실 실장 김창유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농업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은 과학기술의 알찬 열매로 풍년로적가리를 높이 쌓을 애국의 마음을 안고 농업생산에서 절박하게 나서는 문제들을 종자로 틀어쥐고 연구사업을 목적지향성있게, 끝장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내밀어야 합니다.》

최근년간 농업부문에서 《신양2》호발효퇴비가 크게 은을 내고있다.

그런것으로 하여 《신양2》호복합균은 소문이 났지만 그 개발자가 과연 누구이며 그가 얼마나 고심참담한 탐구의 초행길을 걸어왔는가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아마 많지 못할것이다.

우리의 현실에 발을 붙이고 화학비료를 적게 쓰면서도 알곡수확고를 훨씬 높일수 있게 하는 훌륭한 연구성과를 이룩하여 나라의 농업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계응상사리원농업대학 생물비료연구실 실장 김창유동무,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과 당의 농업정책관철을 위해 청춘시절부터 20여년세월 묵묵히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왔으며 오늘날 공훈과학자로,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영광의 단상에 올라선 한 농업과학자의 인생길을 더듬어보며 우리는 탐구자의 삶은 과연 무엇으로 빛나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게 된다.

 

스스로 선택한 길

 

만나보니 수수한 사람이였다.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수집음까지 타는 고지식하고 어진 사람이였다.그처럼 소박하게 보일수록 우리는 한 농업과학자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의 향기를 더더욱 진하게 느낄수 있었다.

1980년대말에 사리원농업대학(당시)을 졸업한 김창유동무가 박사원과정을 거쳐 농업과학연구사업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을 때는 고난의 행군시기였다.

그는 처음에 축산에서 전염병을 미리막기 위한 연구사업을 하였는데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다.연구결과를 현실에 도입하기 위해 목장과 농장들에 무던히도 다녔다.

그러던 주체86(1997)년 초봄이였다.김창유동무는 강좌장을 찾아갔다.당시 그는 생물공학강좌의 연구사로 있었다.

《제가 유기질을 속성부식시키는 연구사업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김승일강좌장이 놀라와하였다.

강좌장에게 그는 언제부터 품고있던 생각을 터놓았다.

농촌에 나갔다가 농장원들이 퇴비를 생산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겨울에 낟알짚에 집짐승의 배설물을 섞고는 그것을 뒤져주느라 품을 들이고 또 온도를 보장하느라 온돌을 놓고 불까지 때는것을 볼 때면 꼭 저렇게 퇴비를 생산해야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나마 낟알짚이 잘 썩지 않아 농장원들이 애먹는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이왕이면 미생물이 사람의 품을 대신하게 할수 없겠는가.)

이렇게 늘 머리를 써오던중 마침내 결심품고 나섰던것이다.

강좌장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현실에서 아주 절박한 문제이지.그런데 미개척분야여서 누구도 돕지 못하오.참고할 문헌도 없을거요.이를테면 단독항행이지.…혹시 한생이 걸려도 결과가 없으면 후회하지 않을가?》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고 위대한 장군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한 길인데 제가 왜 후회하겠습니까.》

수의축산학부 졸업생인 김창유동무는 이렇게 생소한 분야의 연구사업에 몸을 잠그게 되였다.

김창유동무는 그 강좌장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사람들이 자기의 연구사업을 두고 머리를 저을 때에 학계의 권위자로서 적극 지지해주었다.한번은 시험포전까지 마련해주려고 애쓰는 그에게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이렇게 말하였다.

《누가 뭐라고 하든 당조직에서 믿어주면 그만이지.다른 생각말고 앞을 보면서 곧바로 나가라구.》

그러한 스승앞에, 조국앞에 자신을 증명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낟알짚이 빨리 부식되게 하자면 활성이 강한 균들이 있어야 했는데 김창유동무는 그러한 균들을 우리 나라에서 반드시 찾아내리라 마음먹었다.실험실에서 유리한 환경을 지어주어 배양한 균들은 설사 좋은 특성을 나타낸다 해도 정작 야외에 내다놓으면 제구실을 하지 못했던것이다.김창유동무는 시료채집을 위해 쉬임없이 다녔다.

20대의 청춘시절에 스스로 어려운 개척의 길에 나선 김창유동무가 나라의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무슨 일인들 못 겪어보았겠는가.더우기 산과 강, 호수와 늪, 바다기슭 등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들을 골라다니느라 험지에서 별의별 고생을 다 겪었다.

일년치고 몇달을 산발을 타고 감탕길을 걸으며 시료를 채집하고 거기서 균들을 분리해냈다.남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명절과 휴식날에도 온종일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수천종을 분리검토하였어도 한종의 쓸모있는 균도 골라내지 못할 때면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어려웠다.어쩌다 힘들게 찾아낸 균마저 죽어버렸을 때에는 가슴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

제일 가까운 사람들에게서도 몰리해를 당하고 별들이 총총한 깊은 밤 홀로 눈물을 쏟은적은 얼마였고 육체가 견디지 못하여 쓰러진적은 또 몇번이였던가.

그는 강의한 의지로 고뇌의 한초한초를 이겨냈고 쓰러졌다가도 소스라쳐 일어났다.

어떻게 하나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푸는데 이바지하겠다고 속다짐하며 언제 성공할지 기약할수 없는 길을 꿋꿋이 걸어온 그 깨끗한 마음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한번은 그에게 고향에서 아버지가 찾으니 급히 오라는 련락이 왔다.평안북도 구성시가 그의 고향이였다.무슨 큰일이 생겼는가 하여 급히 달려가보니 줄욕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어떻게 너처럼 살수 있니.네 나이 지금 몇인데 보금자리도 없이 떠다니느냐 말이다.…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아니? …다시 갈 생각 말아라.여기도 과학자가 할 일은 많다.》

형의 말을 어머니가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빈손이라니… 집 떠나 혼자 고생하는 널 생각해서 그런다.아버진 늘 넌 그렇다치고 손자나 손녀는 한번 안아라도 보고싶다고 하셨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였으며 앞으로 유명한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되겠노라고 장담하던 아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슨 균을 찾는다고 하면서 굶기를 밥먹듯 하며 온 나라 곳곳을 다니는 사실이 가족들에게는 리해될수 없었던것이다.

덤덤한 표정으로 있던 아버지가 물었다.

《그래 다시 가겠냐?》

김창유동무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아버지, 어머니, 용서해주십시오.성공하기 전에는 다시 고향땅을 밟지 않겠습니다.)

김창유동무는 대학으로 다시 돌아와 온넋을 연구사업에 쏟았다.

필요한 균을 하나하나 모아 특성을 연구하고 적절히 배합하여 현실에서 시험하는 연구사업이 수없이 반복되였다.

몇년전 형이 그를 찾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예?》

《아버진 운명하시기 전에 내내 널 찾았다.〈창유가 보고싶구나.그앤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다.부탁인데 그애에게는 알리지 말거라.〉라고 하면서 우리더러 널 잘 도와주라고 하셨다.》

김창유동무는 머리를 숙이였다.그도 혈육의 사랑을 받고싶었고 혈육을 온넋으로 사랑하고싶은 인간이였다.그는 머리를 들어 멀리 고향의 하늘가를 그려보았다.

말없이 그를 떠밀어주고 의지를 키워준 아버지, 그 웅심깊은 사랑과 기대에 어긋나게 살고싶지 않았다.

또다시 이어진 탐구의 길에서 달이 가고 해가 바뀌였다.

모진 애로와 난관을 꿋꿋이 이겨내며 마침내 성공의 언덕에 올라선 김창유동무는 긍지스럽게도 2년전 12월 제4차 전국농업부문열성자회의에서 농업과학자들을 대표하여 토론을 하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저는 유기질재료를 빨리 부식시키면서도 어디서나 손쉽게 만들수 있고 지력을 높이는데 효과가 높은 우리 식의 〈신양2〉호복합균을 연구한 농업과학자입니다.…》

그 높은 연단에 올라 자신이 걸어온 탐구의 길을 뒤돌아보기에까지 한 농업과학자가 이 땅에 새겨온 애국의 자욱자욱은 그 얼마였으랴.

김창유동무는 남달리 사상적단련과정을 더 거친 과학자가 아니였다.보통과학자였다.하지만 그는 연구과제를 스스로 선택할 때 벌써 과학자가 무엇을 기준으로 인생의 좌표를 정해야 하며 한번 택한 그 길에서 어떤 각오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를 알고있었다.그것이 김창유동무로 하여금 거듭되는 실패와 육체적고통앞에서도 추호의 동요없이 탐구의 길을 걷게 한 힘으로 되였다.

신념이 없이는 먼길을 가지 못한다.특히 과학자들은 자기의 연구사업이 조국에 반드시 필요하며 설사 몸이 찢겨 가루가 된다 해도 기어이 해내야 할 영예로운 과업임을 자각하는 굳센 마음이 없다면 개척의 초행길을 걸을수 없다.

김창유동무의 과학적공적도 크지만 스스로 헤쳐온 탐구의 길이 더더욱 돋보이는것은 그가 바로 이 애국의 진리를 떳떳하게 말할수 있는 신념의 인간이기때문이다.

 

끝까지 가야 할 길

 

김창유동무에게는 자신에게 부단히 요구하며 량심적으로 지켜가는 몇가지 원칙이 있다.

평가를 바라지 말라, 자만하지 말라, 시간을 아끼라.

례사로운 말같지만 이 하나하나의 조항은 그가 어려운 초행길을 걷는 과정에 체험속에서 굳어진 탐구의 지탱점이였다.

김창유동무가 6년만에 첫 연구결과를 내놓았을 때이다.

낟알짚을 잘게 썰어 균을 골고루 접종하는 식으로 확립된 속성발효퇴비생산방법에 대한 기술전습이 은파군의 어느 한 농장에서 진행되였다.그런데 참가자들이 별로 신통해하지 않았다.

《낟알짚을 잘게 썰어야만 한단 말이지.우리에겐 그런 기계도 없고 전기도…》

《무지를 뒤져주어야 한다니 품은 같고같구만.》

김창유동무는 얼굴이 붉어졌다.한마디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혹시 누군가가 《어느 과학자인지 정말 수고했구만.》라고 한다면 《내가 바로 그 개발자랍니다.》라고 말하고싶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빨리 연구결과를 내놓아 사람들의 평가를 받고싶었던 조바심이 빚어낸 결과였다.

농업과학자의 창조물은 그 어떤 평가에 앞서 무엇보다먼저 농민들이 리용하기 편리해야 하며 자기 땅에 발을 붙인것이여야 한다는 자각이 뇌리를 쳤다.그는 연구방향을 심중하게 따져보고 설계를 새롭게 하였다.그리고 잃은 시간을 되찾기 위해 배가의 노력을 기울이였다.

산발을 헤치고 벼랑을 톺으며 시료를 채집하고는 그것을 분석하는 사업이 또다시 시작되였다.

그렇게 개발된 복합균에 사리원시 신양동에 자리잡고있는 대학의 실험실에서 나온 소박한 창조물이라는 의미에서 《신양1》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기계로 낟알짚을 썰지 않아도 되고 골고루 섞느라 뒤져주지 않아도 되며 온도를 따로 보장해줄 필요도 없이 낟알짚의 겉면에 복합균을 뿌려만 주면 두달안에 질좋은 발효퇴비가 생산되는데 농장원들이 왜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기쁨에 넘친 모습을 보면서 김창유동무는 더 높은 목표를 제기하였다.낟알짚이 제한되여있는 조건에서 미생물이 유기질비료의 가치만을 높여주는것이 아니라 토양속에서 살면서 부식질을 생합성하도록 하자는것이였다.

화학비료를 적게 쓰거나 쓰지 않고 농사를 지을수 있게 지력도 높이며 농작물의 생육도 촉진시키는 그런 복합균을 기어이 만들어내리라.

김창유동무의 마음속에는 온 나라의 곳곳을 다 뒤져서라도 쓸모있는 균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여 나라의 쌀독을 채우는데 보탬이 되게 하고싶은 불같은 지향뿐이였다.

피타는 탐구속에 또 몇해가 흘렀다.

땅은 거짓을 모른다.무려 1만 수천점의 시료를 분석하여 골라낸 활성높은 균들로 복합체를 이룬 《신양2》호의 효과성은 대단했다.

김창유동무가 이러한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분발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한때 대학에는 김창유동무가 마음속으로 존경한 과학자가 있었다.그는 피타는 노력으로 자기 전공분야의 실력을 다져 누구도 무시할수 없는 실력가로 자라났다.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데 늘 시간이 모자라고 지식의 부족을 느꼈던 창유동무는 그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언제인가 그를 만났을 때 실망하게 되였다.그가 《이쯤하면 내 전공분야에서는 무섭지 않소.》라고 말했던것이다.그것은 학습도 사색도 멈추어서고 정열도 식었음을 의미하는 명백한 자만도취였다.

그후 반짝이는 별같이 여겨지던 그가 학계에서 희미하게 사라지는것을 보며 과학자에게 있어서 소기의 성과에 만족하여 답보하는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자멸행위이며 자만도취는 곧 죽음이라는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김창유동무에게도 고뇌의 날만 있은것이 아니였다.《신양2》호복합균을 리용한 농장들에서 알곡을 증수했다거나 지어 일부 저수확지들에서 몇배로 소출을 높였다는 흐뭇한 소식을 들을 때의 기쁨은 얼마나 컸던가.성공의 희열을 누를수 없을 때면 저도모르게 《아지에 새싹이 움틀 때 그대가 바란것 무얼가 비바람 이기고 피여나는 아 향기론 꽃송이》라는 노래구절이 흘러나왔다.인생의 보람을 한껏 느끼는 행복한 순간일수록 그는 자신을 더욱 채찍질했다.

(이 순간도 과학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한다.내가 아직 못한것은 무엇이고 더 할수 있는것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사색과 탐구가 이어지는 속에 《신양2》호는 계속 발전했다.처음보다 쓸모있는 미생물이 늘어나면서 그 효과성도 개선되였다.발효퇴비생산기일이 50여일로부터 40여일로, 일부 경우에는 그보다 더 단축되였다.《신양2》호발효퇴비 1t을 낸 땅에서는 일반퇴비 20여t을 낸것과 맞먹는 유기질거름의 효과를 가진다는것이 확증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신양2》호발효퇴비의 연구와 도입정형을 여러차례나 료해하시였으며 전국의 모든 협동농장들에 일반화할수 있게 수십차례에 걸치는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누구나 쉽게 오를수 없는 성공의 언덕에서조차 김창유동무는 마음의 탕개를 풀어놓은적이 없었다.매일, 매 시각 새로운 출발선을 차지한 심정으로 신들메를 조였다.

추운 겨울에 물을 다루느라 꽁꽁 얼었던 손등이 터갈라지며 상처가 생긴것도 아랑곳없이 연구사업에 몰두하고 한꺼번에 여러 실험을 동시에 벌려놓고는 시간, 시간 하며 뛰여다니는 김창유동무에게 그의 조수가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

《고생끝에 락이라고 〈신양2〉호가 성공했는데도 그렇게 바삐 살아야 합니까? 이젠 박사론문이나 쓰면서 쉬염쉬염 일하십시오.》

《언제 만세 부를새가 있소? 2호가 극한점에 달하면 3호를 또 만들어내야지.당의 농업정책을 관철하자면 할 일이 정말 많소.헌데 시간은 너무도 빨리 가거던.》

농사문제때문에 그처럼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전에는 농업과학자로서 쉴 권리도, 만족할 권리도 없다고 늘 자신을 다잡는 그에게서 다른 말이 나올수가 없었다.

김창유동무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는 50대를 넘어선 지금도 분초를 쪼개며 사는 쉽지 않은 과학자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대학의 한 연구사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번은 토의할 문제가 있어 김창유동무의 집을 찾은적이 있었다.얼마간 기다리니 밖에 나갔던 그가 집으로 들어섰다.들어오자마자 급히 실험실로 꾸린 웃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김창유동무는 그를 뒤늦게 알아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용건이 뭔지 간단히 말하오.나에겐 정말 시간이 없소.》

김창유동무가 시간을 귀중히 여긴다는 말은 들었지만 집에까지 찾아온 손님에게 초면에 너무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연구사는 섭섭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하지만 후에 그가 결코 생활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며 단지 여러가지 실험을 진행하면서 순간도 해이되면 안되기에 가혹하다고 할만큼 자신에게 엄격한 요구성을 스스로 제기하는 량심적인 인간이라는것을 알고는 더 존경하게 되였다.

어느 기회에 그를 찾아와 《미안하오.그땐 정말 바빴소.보이지 않는 생명체를 다루다나니…》라고 사죄까지 하는것을 보며 이런 진실한 애국자야말로 뭇사람들의 찬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숙어졌다고 한다.

이렇듯 20여년세월 한본새로 탐구의 길을 걷고 또 걸어온 김창유동무는 지금 미생물의 활성이 더욱 높은 새로운 복합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농작물수확고를 보다 높일수 있는 또 하나의 담보를 마련하고있다.

연구 또 연구, 도입 또 도입…

끝이 없는 그 길에서 귀여운 딸들이 재롱을 부리며 아버지에게 웃음꽃을 피워주는 즐거운 시간이 그에게는 얼마 차례지지 않는다.

2년전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찍은 영광의 기념사진을 제일가는 재보로 간직하고있으며 2019년 농업부문총화회의의 주석단에도 앉고 공훈과학자칭호도 받아안은 그는 이름없던 과학자를 그토록 높이 내세워준 당의 크나큰 믿음을 가슴깊이 새기고 심장이 고동치는 한 개척의 길을 끝까지 가고갈 비상한 열의에 넘쳐있다.

* *

탐구의 길은 멀고 어려워도 어머니조국이 영원히 기억하는 참된 삶의 길이다.

김창유동무는 난관앞에 물러서지 않고 성과앞에 자만을 모르는 값높은 실천으로 당의 과학전사는 어떻게 살며 일해야 하며 당의 품속에서 성장한 과학자라면 조국을 위하여 어떤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가를 보여주었다.

모든 과학자들이 김창유동무처럼 자나깨나 오직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관철과 당정책관철밖에 모르는 신념과 량심의 인간이 되여 삶의 흔적을 뚜렷하게 남긴다면 내 조국은 더욱 부강해지고 희망찬 우리의 미래는 더 빨리 앞당겨질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리동찬

본사기자 김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