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헌신으로 지켜가는 애국의 초소

수십년동안 한직종에서 성실한 구슬땀을 바치고있는 참된 사회주의근로자들(1)

 

우리 나라에는 수십년을 한직종, 한초소에서 성실히 일해오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당과 조국, 인민을 위해 한생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는 그들의 가슴속에 꽉 차있는것은 나의 초소, 나의 일터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다.

우리 당에서는 수십년을 하루와 같이 당이 맡겨준 혁명초소에서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가고있는 참된 사회주의근로자들을 찾아내여 온 나라가 다 알도록 내세워주었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련재하여 내보내게 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자기 일터, 자기 초소를 사랑하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는 유명무명의 애국자들에 의하여 나라가 부강해지고 사회주의락원이 일떠서게 되는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직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하다면 그 선택의 기초는 무엇으로 되여야 하는가.

젊은 시절에 선택한 일터를 한생토록 꿋꿋이 지켜가고있는 우리의 참된 사회주의근로자들의 값높은 삶이 그에 대한 대답을 준다.

선천군 삼양협동농장 기계화작업반 로영실동무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때는 참으로 벅찬 시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의 높은 연단에서 농촌기술혁명을 다그칠데 대하여 제시하신 웅대한 과업을 받들고 농촌에서는 가까운 앞날에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를 전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전인민적운동이 힘있게 벌어지고있었다.

다음해에 진행된 전국뜨락또르운전수대회에서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를 실현하려면 누구보다도 뜨락또르운전수들의 역할을 높이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심장에 새긴 청년들은 너도나도 뜨락또르운전기술을 배우기 위해 떨쳐나섰다.

이런 벅찬 시대의 흐름속에 로영실동무가 있었다.

영농작업의 모든 공정을 기계화함으로써 농민들을 어렵고 힘든 농사일에서 하루빨리 해방시켜주시려는 우리 수령님의 높은 뜻을 제일 앞장에서 받드는 농촌기계화초병이 되리라.

로영실동무는 이런 결심을 안고 뜨락또르와 함께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내짚었던것이다.

삭주군편의봉사관리소 로동자 최경애동무가 신발수리공직업을 선택하게 된데도 남다른 사연이 깃들어있다.

삭주군의 한 로동자구에서 살던 그가 당의 신임에 의하여 삭주군당위원회 일군으로 사업하게 된 남편을 따라 읍으로 이사를 온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이였다.

새 일터를 선정해야 했던 그는 은근히 남편의 도움을 받아 편안한 직업을 택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의 신발을 수리하기 위해 신발수리소에 갔던 그는 능란한 솜씨로 신발을 수리하고있는 나이지숙한 녀인이 다름아닌 군당책임일군의 안해라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어떻게 이런 직업을 선택하게 되였는가고 묻는 최경애동무에게 군당책임일군의 안해는 말했다.

《언제인가 난 어버이수령님께서 신발수리공의 대가 끊어져간다고 못내 마음쓰시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였어요.생각이 많더군요.어버이수령님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는데서 우리 당일군 안해들이 앞장에 서야 하지 않겠나요.그래서 신발수리공이 된거구 이날이때껏 후회없이 이 일을 하는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최경애동무는 불시에 얼굴이 붉어졌다.지금껏 남편의 그늘밑에서 안온한 생활을 꿈꾸어왔던 자신이 더없이 부끄러웠다.

그날 저녁 최경애동무는 남편에게 자기의 결심을 터놓았다.

《저도 신발수리공이 되겠어요.》

로영실, 최경애동무들이 수령의 뜻, 당의 부름에 자기들의 직업의 선택을 합쳐놓았다면 우시군인민병원 간호장 리은숙동무는 어떻게 되여 간호원이 되였는가.

그는 어린시절에 중병으로 앓는 아버지의 곁에서 많은것을 체험하였다.

아버지의 병을 두고 한식솔처럼 걱정하며 마음쓰던 의료일군들, 돈 한푼 내지 않고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달마다 보장받은 수많은 약들, 아버지를 위해 자기의 피도 서슴없이 바치던 의료일군들의 모습은 그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그의 눈가에는 하얀 위생복을 입은 의료일군들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으로 안겨왔다.

저들처럼 살리라, 저들처럼 뜨거운 사랑과 헌신적복무정신을 지니고 인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나의 모든것을 바쳐가리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나름의 인생길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그래서 인생길은 천갈래, 만갈래인것이다.그 하많은 길을 두고 자기자신을 위한 인생길의 선택이 아니라 당과 조국, 인민을 위한 인생길을 선택한 이들의 인생관은 얼마나 아름답고 고결한가.

지금도 우리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당의 뜻을 한몸 다 바쳐 받들기 위해 어렵고 힘든 초소에 인생길의 리정표를 세우고 후더운 피와 땀으로 인생의 자서전을 아름답게 수놓아가고있다.

우리 시대의 참된 인간들이 선택하는 직업은 서로 달라도 가슴속에 불타는 지향은 오직 하나, 우리 당의 구상을 실현하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보람찬 위업에 한몸 다 바치는것이다.

직업에 대한 선택, 그 기초가 참되고 고결할수록 그 직업에 대한 애착과 정은 날과 달이 흐를수록 더없이 깊어지기마련이다.

농장의 첫 녀성뜨락또르운전수가 된 로영실동무에게 있어서 뜨락또르는 자기의 살붙이였고 둘도 없는 사랑이였다.하루에도 몇번이나 뜨락또르를 닦고닦는 그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나이찬 아들이 있는 집들에서는 그의 알뜰한 일솜씨를 보며 며느리로 삼았으면 하고 은근히 왼심을 썼다.

번듯하게 정비한 뜨락또르와 함께 나설 때면 로영실동무는 마치 다정한 길동무에게 하듯 정답게 속삭였다.

《나의 뜨락또르야, 또 한번 힘껏 달려보자.》

이렇게 뜨락또르와 마음속이야기를 나누며 그는 뜨락또르를 눈동자와 같이 애호관리하였고 점검보수를 제때에 하여 봄논갈이와 써레치기로부터 가을철벼단실어들이기와 가을갈이에 이르기까지 영농작업과 수송임무를 원만히 수행하였다.

하루계획을 수행하지 못하고서는 운전대를 놓지 않는것이 그의 일욕심이였다.

하기에 언제나 농장의 뜨락또르운전수들속에서 제일 높은 실적을 낼수 있었다.

어느해 봄철 논써레치기를 마감단계에서 다그치던 뜨락또르가 뜻밖에 동음을 멈추었다.고장이 났던것이다.그때 뜨락또르를 쓸어보며 몹시도 마음을 쓰는 로영실동무를 보며 농장원들은 제살붙이인들 저렇게 살뜰하겠는가고 혀를 찼다.

그가 읍에까지 달려가 부속품을 구해가지고 돌아섰을 때는 자정이 훨씬 넘어서였다.얼마나 걸었는지 발바닥이 아파나고 등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걸음을 재촉하며 뜨락또르가 있는 포전머리에 다달았을 때 희미한 모닥불이 그의 눈앞에 안겨왔다.

농장원들이 뜨락또르곁에서 자기를 기다리고있는것이 아닌가.

순간 눈앞이 흐려졌다.어떻게 뜨락또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는지, 언제 부속품을 갈아맞추었는지 그는 미처 의식할수 없었다.

먼동이 터오는 이른새벽 협동벌에 뜨락또르의 발동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농장원들이 환성을 터치였다.로영실동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여났다.

뜨락또르는 로영실동무의 생활에서 떨어질수 없는 한 부분이였고 뜨락또르의 발동소리는 그의 생의 숨결과도 같았다.하기에 그는 한생의 길동무도 뜨락또르운전수로 정하였으며 4명의 아이를 낳아키우면서도 뜨락또르에서 내리지 않았다.뜨락또르에만 오르면 다른 모든 생각을 감감 잊군 하는 그였다.그래서 탁아소와 유치원의 보육원, 교양원들이 그의 자식들을 안고 그를 찾아 포전으로 나오는 일이 드문하였다.

자기 직업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간직한 사람은 그 어떤 고난속에서도 비관을 모르며 불굴의 정신력으로 만난을 뚫고나간다.

지난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로영실동무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그는 부속품이 보장되지 않아 멎어섰던 뜨락또르도 자체로 살려내고 연유절약기를 제작설치하여 많은 연유를 절약하면서도 영농사업을 지장없이 보장하였다.

당의 뜻을 꽃피우는 길에서 인생의 참된 보람과 행복을 찾으며 뜨락또르와 함께 한생을 보내는 그의 모습은 자식들의 성장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다.

중학교졸업을 앞둔 맏딸도 어머니의 뒤를 이어 뜨락또르운전수가 되였다.

조선인민군 군관으로 복무하다가 영예군인이 된 아들에게 그가 이제는 뜨락또르에서 내려 자식들의 뒤바라지를 했으면 하는 의향을 내비쳤을 때였다.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년로한 몸에도 뜨락또르를 모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힘이 나던지.사실 저도 몸만 성하다면 그렇게 살고싶습니다.》

근 50년을 농촌기계화초병으로 삶을 빛내여오는 나날에 로영실동무는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영예를 지니였으며 여러차례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한자리에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크나큰 영광도 지니였다.

개인의 리익과 향락보다도 집단의 리익을 더 귀중히 여기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헌신하려는 사람은 어떤 직업에서 일하든지 보람있는 일을 해놓기마련이다.또 자기 직업을 사랑하며 거기에 모든것을 바쳐가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만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수 있는것이다.

최경애동무는 자기가 하는 신발수리공일을 언제 한번 천하게 여겨본적이 없었다.

새것처럼 수리된 신발을 받아안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것이 그에게는 제일 큰 락이고 행복이였다.그는 언제나 자신이 사람들의 신발을 잘 수리해주지 못한다면 그들이 불편을 느끼고 결국은 맡은 일을 잘하지 못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신발수리기능을 터득하기 위해 지새운 밤이 그 얼마인지 모른다.

매일 식칼을 다루는 가정주부였지만 신발수리칼에 손을 다치는 때가 드문하였다.때로는 코바느질을 하다가 저도모르게 손을 찔리군 하였다.

언제인가 수리한 신발을 찾으러 왔던 한 손님이 최경애동무가 내여주는 신발을 보고나서 곱지 못하다고 섭섭한 어조로 말하였다.그날 밤 그는 늦도록 신발을 다시 수리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밤깊도록 돌아오지 않는 안해를 찾아왔던 남편에게 최경애동무는 그날에 있었던 사실을 들려주었다.

《수리한 신발을 손님들에게 내주면서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기가 제일 두려워요.신발을 곱게 수리하지 못했다고 섭섭해할가봐 말이예요.》

꾸밈없는 그 말에 남편은 웃으며 말하였다.

《그 마음이면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신발수리공이 될수 있소.》

신발수리소에서는 밤깊도록 불빛이 꺼질줄 몰랐고 망치질소리, 재봉기소리가 그침없이 울려나왔다.

이렇게 한해두해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그는 군안의 주민들속에서 우리 신발수리공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당이 맡겨준 혁명초소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해 진심을 바쳐 성실히 일하는것을 신성한 의무로, 마땅한 본분으로 간직한 사람만이 애국의 한길을 변심없이 걸을수 있다.

최경애동무가 군인민들이 다 아는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군인민회의 대의원으로 값높은 인생길을 수놓아올수 있은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위훈이 창조되는 곳은 따로 정해져있지 않다.

자기 일터와 직업을 사랑하고 성실한 땀과 량심으로 지켜가는 그 길에 위훈이 있고 애국이 있다.

리은숙동무에게는 값높은 위훈의 상징과도 같은 많은 호칭이 있다.

우리 담당간호원, 우리 어머니, 우리 간호장…

집단과 인민의 사랑과 존경이 담긴 그 부름에 리은숙동무의 한생이 집약되여있다.

병원의 많은 환자들은 침상곁에 다가서는 그의 체취를 느끼고 몸이 좀 어떤가고 묻는 그의 다정한 인사말만 들어도 금시 병이 낫는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간호원이야말로 가장 지극한 인간사랑의 체현자가 되여야 한다.그것은 간호원이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보살피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때문이다.환자들은 간호원의 손길에서, 간호원의 얼굴빛에서 자기의 병상태를 가늠하며 사회주의보건제도의 참모습을 느끼게 된다.하기에 간호원의 손길은 누구보다 따뜻해야 하고 간호원의 인상은 항상 밝고 명랑해야 한다.

이것이 간호원으로 일해오는 나날에 리은숙동무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실천에 구현해온 삶의 신조였다.

언제인가 간호원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 갓 배치된 한 간호원이 그에게 물은적이 있다.

몇해도 아니고 어떻게 한생을 간호원으로 일할수 있었는가고.

그때 리은숙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입원하였던 환자들이 완쾌된 몸으로 병원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긍지와 보람을 무엇에 비기겠나요.》

그의 소박한 한마디 말에 얼마나 아름다운 정신세계가 비껴있는것인가.

병원에서 앓는 사람을 간호하여 의사의 환자치료사업을 돕는 일을 맡아하는 간호원직업은 결코 말처럼 헐한것이 아니다.

낮과 밤이 따로 없고 궂은일, 마른일 가림없이 해야 하는 직업이였지만 리은숙동무는 언제 한번 마음이 흔들린적이 없었다.

39년세월 변함없이 자기 맡은 혁명초소를 굳건히, 성실하게, 책임적으로 지켜올수 있게 한 원천은 무엇이였던가.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였다.

리은숙동무에게 있어서 환자들은 친부모, 친형제, 친자식이였다.

20여년전 봄 병원 소아과에 한 어린이가 입원한적이 있었다.그때 환자를 담당하였던 리은숙동무의 생각은 깊었다.환자의 병상태가 몹시 위급하고 영양도 약하였던것이다.많은 사람들을 간호한 그였으나 이런 어린 환자는 처음이였다.

애어린 자식의 정상을 두고 어쩔줄 몰라하며 정말 병을 고칠수 있는가고 눈물을 머금고 안타까이 묻는 녀인의 모습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제 겨우 망울을 터치기 시작한 어린 자식이였으니 어머니의 마음인들 오죽하랴 하는 생각으로 리은숙동무의 가슴은 미여지는듯 하였다.

그도 두 자식의 어머니였다.

(만일 저 어린것이 내 자식이라면…) 하는 생각이 갈마드는 순간 그의 귀전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뜨겁게 하신 교시의 구절구절이 다시금 되새겨졌다.

보건일군들에게서 가장 중요한것은 당과 인민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환자에 대한 끝없는 정성이라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새겨보며 리은숙동무는 어린이를 품에 꼭 껴안았다.

(걱정말아.고마운 우리 제도가 있기에 너는 꼭 병을 고칠수 있어.)

환자간호에 달라붙은 그에게는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어린 환자의 응석과 투정도 달게 여기고 때로는 따뜻이 애무해주며 온갖 심혈을 기울이는 그 모습은 친어머니의 다심한 모습이였다.

그의 뜨거운 정성에 떠받들려 어린이는 수십일만에 병을 고치고 퇴원할수 있었다.

지난 기간 리은숙동무는 수십차례에 걸쳐 사경에 처한 환자들에게 자기의 피를 서슴없이 바치였다.

수십년동안 한직종에서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성실한 구슬땀을 바쳐가고있는 미더운 사회주의근로자들인 로영실, 최경애, 리은숙동무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들인가.얼마나 참된 인간들인가.

그들처럼 사랑으로 불타는 심장을 지니였는가.

한생토록 쉬임없이 타번지는 심장의 불길로 당과 조국, 인민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쳤던가.

누구나 이런 물음앞에 자신을 세워보자.

애국은 결코 추상적인것이 아니다.조국에 대한 사랑은 나서자란 향토와 나라의 수많은 재부를 포함한 모든것에 대한 사랑이며 이것은 곧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애착과 하나로 잇닿아있다.

자기에게 맡겨진 혁명임무를 훌륭히 수행해나가는 무한한 책임성과 헌신성,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애쓰고 어렵고 힘든 일을 스스로 찾아하는 일본새와 성실한 로동생활기풍이 곧 애국심의 발현이다.

우리 시대의 참된 인간들의 모습은 어떤 부문, 어떤 직업에서 일하든 뜨거운 사랑을 안고 헌신적으로 일해나갈 때 값높은 위훈자가 되고 참다운 애국자가 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누구나 이들처럼 자기의 일터를 끝없이 사랑하고 자기의 본분을 다해나갈 때 당 제8차대회가 제시한 웅대한 투쟁강령이 빛나게 실현되고 사회주의건설속도는 더욱 빨라질것이다.

본사기자 김진욱

본사기자 조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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