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죽음의 고역장에 서린 원한

 

박천군에서 농장원으로 일하던 김경덕은 피눈물나는 자기의 해방전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이런 말부터 꺼내군 하였다.

《왜놈들은 조선사람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가 이런 말을 입버릇처럼 외운데는 피맺힌 사연이 있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잃은 경덕이는 어머니와도 생리별을 당하고 지주집에 끌려가 9년동안이나 머슴을 살았다.그후 스물두살 나던 해에 지주놈의 집에서 뛰쳐나온 경덕이는 돈을 많이 준다는 왜놈들의 얼림수에 속히워 철도공사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다.

기차굴을 뚫는 일에 내몰린 경덕이는 순간도 허리를 펼수 없었다.왜놈들은 굴옆에 대피호라는것을 파놓고 발파가 끝나기 바쁘게 로동자들을 화약내 자욱한 굴안으로 사정없이 들이밀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폭약에 불을 달고 막장가까이에 새로 판 대피호로 들어갔던 로동자들은 천정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것을 알고 다른 곳으로 피하려고 하였다.그러자 왜놈십장은 그들이 나오지 못하게 가로막았다.로동자들을 굴가까이에 잡아두어야 작업에 내모는 시간을 그만큼 단축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발파가 시작되자 대피호의 천정이 통채로 무너져내렸다.그통에 4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경덕이는 굴문어구에 앉아있다가 겨우 목숨을 건지였다.

그 일이 있은 후 경덕이는 그곳을 떠나 벽동에 있는 한 광산으로 갔다.그곳에서 경덕이는 매일 버럭을 가득 채운 질통을 지고 50m가 넘는 사다리를 기여올라야 하였다.

어느날 그가 무거운 질통을 진채 사다리를 타고 3~4m가량 올라섰을 때였다.로동자들을 감시하던 왜놈십장이 버럭이 적다고 생트집을 걸었다.

《질통이 넘쳐나게 진걸 못 보오?》

툭 내쏘는 경덕이의 대답에 약이 오른 십장놈은 미친개처럼 달려들어 사다리에 의지한 그의 손을 사정없이 짓밟으며 떨구어버렸다.그것으로도 성차지 않은지 십장놈은 무거운 질통에 깔려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에게 죽은척 한다고 고아대며 가죽채찍을 마구 안겼다.곁에 있던 로동자들이 제지시키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 자리에서 눈을 영영 뜨지 못하였을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설음이 어떤것인가를 너무도 뼈저리게 체험하였기에 그는 평범한 근로자들을 나라의 주인, 땅의 주인으로 내세워주고 참된 삶을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에 대하여 늘 외우면서 자식들에게 쓰라린 지난날을 잊지 말라고 절절히 당부하군 하였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