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최후의 순간까지 신념을 지켜

 

해방후 전국에 소문난 다수확농민들속에는 황해도인민회의(당시) 대의원인 류여배농민도 있었다.

나라없던 그 세월 온갖 천대와 멸시속에서 이룰수 없었던 꿈, 제땅에서 마음껏 농사를 짓고싶은 그 소원을 풀어주시고 나라의 주인으로, 모범농민으로 내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이 하도 고마워 보답의 길에 온넋을 바쳐가던 류여배농민의 불같은 애국의 신념은 준엄한 전화의 나날에 더욱 억세여졌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전체 조선인민은 우리 조국에 존망의 위기가 닥쳐온 그 준엄한 시기에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 조금도 굴함없이 영웅적으로 싸웠습니다.》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난 1950년 당시 그는 62살이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그는 하루에도 몇번씩 큰길가에 나가 후퇴하는 인민군대의 길안내도 해주고 마을로 이끌어서는 쉬여보내기도 하였다.

당시 가산면당위원장으로 사업하던 아들이 와서 어서 후퇴하라고 할 때에도 《내 걱정은 말고 네 할 일이나 빈틈없이 하거라.》고 하고는 큰길에 나가 인민군군인 20여명을 데려다 점심식사를 푸짐히 대접하고 그들의 배낭마다에 쌀을 넣어 보내고 또 정미소로 벼가마니들을 싣고 달려갔다.

바로 그때 놈들이 마을에 기여들어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고 집집마다 불을 질렀다.

한몸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민군군인들의 길안내를 맡아하던 류여배로인은 그만 놈들에게 체포되였다.

원쑤놈들은 《빨갱이》를 잡았다고 떠들어대면서 가산면 소재지 방공호에 그를 감금하고 잔인한 고문을 들이댔다.

놈들은 먹을것도 주지 않고 10여일동안 면내 당원들이 간 곳과 열성농민들의 이름을 대라고 갖은 악행을 다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악질지주의 아들인 면《치안대》 대장놈이 혹독한 고문으로 하여 운신하기 힘들어하는 류여배로인을 끌어다놓고 지껄였다.

《한마디만 묻겠다.열성농민들과 당원들이 간 곳을 대고 살겠는가 아니면 입을 다물고 죽겠는가? 어느 길을 택하겠는가? 만약 우리의 물음에 답변하면 너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여생을 보낼것이다.》

하지만 놈들의 그 어떤 회유와 상상을 초월하는 악착한 고문도 김일성장군님과 조선로동당만을 따르는 그의 철석같은 신념과 억센 투지를 도저히 꺾을수 없었다.

악에 받친 놈들은 류여배농민의 사지를 꽁꽁 묶고 거리로 끌고다니면서 악행을 가하던 끝에 사형장으로 끌어냈다.

최후의 순간 북쪽하늘을 우러르던 그는 온몸의 힘을 모아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로동당 만세!》를 소리높이 웨쳤다.

죽음도 두려움없이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그의 불굴의 기상앞에서 원쑤들은 전률하였다.

본사기자 박철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