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돕고 이끌며 고락을 같이하는 아름다운 생활의 주인공들을 찾아(2)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 당, 대중이 하나의 사상과 신념, 동지적사랑과 의리로 굳게 결합되고 온 사회가 서로 돕고 이끄는 화목한 대가정이 되여 생사운명을 같이해나가는 여기에 우리 식 사회주의의 참모습이 있습니다.》

서로 돕고 이끌며 고락을 같이하는 아름다운 생활의 주인공들을 찾아 떠난 우리의 취재길은 수도의 거리를 따라 계속 이어졌다.

차창으로 흘러가는 가로수들을 바라보느라니 며칠전 한 녀성이 들려준 이야기가 감동깊이 떠올랐다.

《저에게는 맏딸처럼 여기는 한 녀성이 있습니다.몇해전 길거리에서 우연히 알게 되였는데 이제는 혈육간이 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들을수록 깊은 여운을 남기였다.

…지금으로부터 6년전 어느날 백옥실녀성이 구역연료사업소에서 땔감을 공급받아가지고 돌아올 때였다.한 고개길에서 그는 갑자기 걸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것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 웬 처녀가 손수레를 밀어주느라 안깐힘을 쓰고있었다.

계절과 몸매에 꼭 어울리게 지어입은 달린옷이 덞어질가봐 몇번이고 만류하였지만 그는 어디까지 가는지 함께 가자고 하며 일손을 놓지 않았다.

얼마후 손수레를 밀며 끌며 끝끝내 집에 다달은 처녀는 백옥실녀성이 자식들을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로 떠나보내고 홀로 산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항일혁명투사인 할아버지의 넋을 꿋꿋이 이어갈 일념 안고 자식모두를 당의 뜻을 꽃피우는 길에 내세우고 자기도 어렵고 힘든 부문에 탄원하여 성실한 땀을 바쳐가는 백옥실녀성에 대하여 알게 된 처녀의 생각은 깊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그는 성의껏 마련한 생활용품들을 안고 백옥실녀성의 집을 다시 찾았다.그때에야 백옥실녀성은 그가 중구고려전자기술교류소에서 일하는 리설란동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날 리설란동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홀로 직장일도 할래, 집살림도 돌볼래 얼마나 힘들겠습니까.이제부터 제가 어머니의 일손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는 백옥실녀성의 집을 자주 찾아가 친혈육의 정을 기울였다.

살림이 어려운 속에서도 백두산기슭에서 기적과 위훈을 창조해가는 돌격대원들에게 성의껏 지원물자를 마련하여 보내주군 하는 백옥실녀성의 애국의 마음에 자기의 지성도 합치였고 녀성의 자식들에게 다달이 위문편지도 보내주었다.

세월은 흘러 리설란동무도 어느덧 한가정의 주부가 되였지만 혈육의 정은 더욱 두터워지고있다.…

우리가 백옥실녀성의 집에 다달으니 마침 그곳에는 리설란동무가 있었다.

찾아온 사연을 들은 그는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에는 남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그들에 비하면 제가 한 일은 너무나 평범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더우기 지금은 온 교류소가 백옥실어머니의 가정을 적극 돕고있습니다.》

우리는 백옥실녀성의 집에 꽃펴나는 덕과 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어려울수록 서로 방조하고 위해주며 고락을 같이해나가는 우리 사회의 본태, 우리 인민의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에 대해 다시금 뜨겁게 느낄수 있었다.

우리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서성구역 상신동의 한 인민반이였다.

이곳에서 최영일동무가 살고있었다.국가계획위원회의 어느 한 단위 로동자인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성구역 서천동의 단칸짜리 집에서 안해와 고급중학교를 갓 졸업한 딸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지금의 두칸짜리 살림집에서 살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하루는 단위의 책임일군이 언제나 맡은 일을 책임적으로 하는 그의 생활형편을 알아보기 위해 가정방문을 하게 되였다.

그런데 생각외로 그가 낡은 집에서 살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최영일동무가 집이 좁아 못살겠는가고, 자기가 지방출장이 잦다보니 그런대로 집식구들은 불편을 모른다고 흔연히 말하였지만 책임일군은 그의 남다른 가정사정을 두고 생각이 깊어졌다.

그때 책임일군의 가슴속에 어떤 결심이 굳혀지고있는지 그와 집식구들은 후날에야 알게 되였다.

며칠후 책임일군이 자기 집 열쇠를 손에 쥐여주었을 때 최영일동무는 펄쩍 뛰였다.

그러는 그에게 책임일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집도 그닥 넓은 편은 아니지만 동무네 식구가 살기엔 지금보다 나을거요.동무의 가정이 생활에서 불편을 모르고 살면 나도 그렇고 우리 식구들에게도 좋은것이 아니겠소.》

이렇게 되여 최영일동무는 서성구역 상신동의 한 인민반으로 이사를 오게 되였고 그에게 자기 집을 내여준 책임일군은 가족과 함께 부모의 집으로 옮겨가 살게 되였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겉모양이 아니라 마음속에 비낀다.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자기 하나만의 리익과 안일보다 동지와 이웃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남을 위해 자기를 서슴없이 바치는 그 정신이야말로 얼마나 고상하고 아름다운가.

우리는 최영일동무의 집을 돌아보았다.크고 화려한 집은 아니였지만 거기에 우리 사회에만 고유한 사랑과 정이 가득차있다고 생각하니 무심히 보게 되지 않았다.

집단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 맡은 일에서 책임적이고 헌신적인 자랑많은 혁신자로 불리우는 최영일동무의 생활은 말해주고있었다.

덕과 정, 이것이 집단의 단합과 화목의 밑뿌리이고 지금과 같은 시기에 우리 일군들이 인민들의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어렵고 힘든 사정을 헤아려주고 진정을 다 바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취재길을 이어간 조선장애어린이회복원에서도 들을수 있었다.

며칠전 이른아침 조선장애어린이회복원으로 대동강구역당위원회 일군들이 찾아왔다.

회복원을 운영하는데서 불비한것은 없겠는가를 살피던 그들은 문득 《요즘처럼 폭염이 지속될 때에는 물을 좀더 자주 보내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는 한 교양원의 목소리를 듣게 되였다.

일군들의 자책은 컸다.

폭염이 지속되는 때에는 여느날보다 더 많은 물이 필요하고 더우기 장애어린이들을 돌보는 회복원에서는 그 필요성이 더욱 부각된다는것을 미리 알고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생각에 머리를 들수 없었다.

구역당위원회에 돌아온 그들은 즉시 이 문제를 놓고 협의회를 열었다.

우선 구역상하수도관리소의 기능공들로 회복원의 상수관상태를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기 위한 사업을 토의하였고 하루급수량을 이전보다 더 늘일데 대한 조직사업이 진행되였다.

하여 그들은 단 하루동안에 회복원의 상수관상태를 일신하고 시간별로 맑은 물이 콸콸 쏟아져나오게 대책을 세워준것이였다.

폭염속에서도 아이들과 보육원, 교양원들이 사소한 불편이라도 느낄세라 온몸을 땀으로 적시고 뛰고 또 뛰며 복무의 자욱을 새겨가는 일군들을 보며 사람들은 뜨거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뿐이 아니였다.회복원에서 일군들이 아이들을 위한 좋은 일을 스스로 찾아하고있을 때 구역의 다른 일군들은 동, 인민반, 가정, 일터에까지 들어가 애로를 풀어주고 도와주기 위한 사업을 벌리였다.

이런 일군들의 모습에서 주민들은 우리 당이 신성하게 내세우고있는 위민헌신의 리념은 실지 뼈를 깎고 살을 저미면서 인민의 생명과 생활을 책임지고 무조건적인 복무로 인민을 받드는 실천의 지침이고 행동의 기준이라고 하시면서 당이 어려운 때일수록 인민들속에 더 깊이 들어가 든든한 기둥이 되여주고 늘 곁에서 고락을 함께 하며 인민의 복리를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해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말씀을 다시금 새겨보았고 인민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고마운 우리 당, 사회주의조국을 위해 좋은 일을 더 많이 찾아할 결심을 굳게 다지였다.

지금 온 나라 곳곳에서는 전사회적으로 어렵고 힘든 부문, 가정세대들을 도와주기 위한 사업이 더욱 활발히 진행되고있다.

어려울수록 고락을 함께 나누고 서로 의지하고 방조하면서 나아가는 우리 인민이다.

나라일을 먼저 생각하고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해주는 그 마음이면 우리앞에 부닥친 오늘의 시련을 어찌 뚫고헤치지 못하랴.

모두다 사랑과 정을 가슴에 안고 사회와 집단을 위해, 조국을 위해 자기를 바칠 때 우리 조국은 부강한 사회주의강국으로 존엄떨치게 될것이다.

글 본사기자 오은별

사진 리설민

 

 

화목의 꽃을 활짝 피워가는 중구고려전자기술교류소 종업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