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알에도 사상을 재우면 바위를 깰수 있다, 사상전의 포성을 더 높이 울리자

당정책의 열렬한 선전자-모범강연강사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초급선전일군들은 열정적으로 사업하여야 합니다.》

대중속에 깊이 들어가 우리 당정책을 해설선전하며 그 관철에로 불러일으키고있는 모범강연강사들을 소개한다.

 

강연의 실효는 피타는 노력의 결과

평성공업대학 강좌장 장광동무

 

장광동무는 언제나 출연제강준비에 시간을 아끼지 않고 청강자들의 심정을 먼저 파악하는데 많은 품을 들이고있다.그런것으로 하여 지난 수십년간을 직외강연강사로 일해오지만 그의 강연은 매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중포화로 되고있다.

장광동무가 지난해 12월 북창화력발전련합기업소에 나가 강연을 할 때의 일이다.먼저 당 제8차대회를 자랑찬 로력적성과로 맞이하기 위해 긴장한 투쟁을 벌리고있는 전력생산자들을 축하해준 그는 로동자들과 서로 말을 주고받는 식으로 강연을 시작하였다.그의 이야기에 심취된 일군들과 로동자들속에 은파군 대청리에 새겨가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헌신의 자욱에 대한 대목에서는 눈굽을 적시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사전에 그가 자료작업을 많이 하고 가족들앞에서 련습까지 해가며 노력한 결과였다.

이렇게 그는 어느 강연이나 그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실효는 피타는 노력의 결과이다.이것은 실효성있는 강연의 비결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그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지난봄 문덕군의 농장포전들에 나가 올해 농사를 잘 짓는것을 인민생활을 안정시키고 5개년계획수행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최중대사로 내세운 당의 사상과 의도를 해설할 때에도 그랬다.

어느 한 농장에 도착하자바람으로 연혁소개실부터 찾은 그는 그곳에 어려있는 령도업적내용들과 혁신자들의 이름을 알아보는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청강자들속에 수산사업소에서 나온 지원자들도 있는것을 알고는 인민군대 수산부문에 대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사적내용들과 농사와 관련한 과학기술자료까지 안받침하였다.그에 대한 대중의 반향이 컸다.수산사업소로동자들은 자기들의 심정까지 담아 이야기하니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하면서 농사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성심성의를 다할 결의를 다지였다고 한다.

그에게는 강연을 진행할 때마다 참고하는 위대성교양자료만 하여도 수천건이나 되며 각이한 단위들의 성과자료와 미풍들을 수집한 자료집을 비롯하여 많은 강연참고자료들이 있다.때로는 대중과 친숙해지기 위해 나이가 60고개를 넘었지만 군사복무의 나날에 배웠던 예술적기량을 다시 익히느라 밤을 새운적이 한두번이 아니다.교수사업을 하는 그에게 제일 귀중한것은 시간이다.

자기 사업에 대한 남다른 애착만이 이런 불같은 열정을 낳는다.

그는 오늘도 모범강연강사로 내세워준 당의 믿음에 높은 사업실적으로 보답하기 위해 사상의 무기를 메고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고있다.

본사기자

 

불같은 정열가의 좌우명

함흥산업건설사업소 운수직장 박금석동무

 

제대되여 35년간 함흥산업건설사업소에서 일해오는 박금석동무가 남달리 소중히 자부하는것이 있다.도당직외강연강사라는 긍지이다.

하다면 그가 20여년간 지켜온 좌우명은 무엇인가.

고원탄광에서 진행한 첫 강연은 큰 교훈을 남겼다.제강을 통달하고 자신있게 나섰는데 대중이 귀담아듣지 않았던것이다.

100명의 청강자들중 단 한명이라도 귀담아듣지 않으면 실패한 강연이다.이렇게 스스로 기준을 높이 정한 그는 강연에 앞서 대중의 생활속에 몸을 깊숙이 잠그고 그들이 알고싶어하는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며 매일 자료수집하는것을 생활화해왔다.각종 생활상식과 유모아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정열이 미치는 분야, 지식의 폭과 깊이에는 한계가 없었다.

직장부문당비서사업을 맡아하면서 시간은 더욱 모자랐다.화술, 노래련습까지 하느라 밤을 패는 때가 수다했다.그러면서도 힘든줄 몰랐다.사상정신적량식을 받아안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혁명과업수행에서 이룩되는 성과가 끝없이 솟구치는 샘처럼 힘을 주었던것이다.

여러해전 검덕광업련합기업소에 집중강연선전을 나갔을 때였다.

무학갱에서 강연을 마치고 로은갱으로 떠날 차비를 하는 그를 갱일군들이 말렸다.큰물로 도로가 끊어지고 날도 어두웠는데 다음날 아침 떠나라고.

하지만 당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울려야 할 당초급선전일군이라는 자각이 그를 떠밀었다.캄캄한 야밤 돌부리를 수없이 걷어차 떨어진 신발창을 칡넝쿨로 동여매고 험한 산길을 톺으며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일정대로 강연을 진행하였다.

그 길이 결코 헐한 길은 아니였다.가정의 가슴아픈 불상사에 대한 소식을 듣고서도 입술을 깨물며 결연히 나섰던 단천의 포전강연길도 있고 뜻밖의 사고로 다친 허리를 압박붕대로 조여매고 이어간 공장순회강연길도 있다.수십년세월 남편을 묵묵히 리해하고 받들어준 사랑하는 안해를 잃은 슬픔에 심장이 멎어버리는듯 하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순간도 리탈할수 없었다.당정책관철로 들끓는 무수한 현장들, 그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비울수 없는 당초급선전일군의 전투좌지였고 량심의 초소였다.

하다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비상한 정열과 높은 책임감을 발휘하게 하였는가.

당초급선전일군은 항일유격대군중정치사업의 전통을 이어받은 오늘의 정치공작원이며 대중이 거울로 삼고 의지하는 친근한 벗, 집단의 기둥이라는 우리 당의 크나큰 믿음이고 기대였다.

육체적능력에는 한계가 있어도 정신력에는 한계가 없다.당초급선전일군은 쓰러지는 순간에도 당정책선전을 중단할 권리가 없다.

이것이 당의 믿음을 한생의 재부로 간직하고 당사상전선의 전초선을 굳건히 지켜가는 박금석동무의 주장이며 변함없는 좌우명이다.

본사기자 김향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