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간악한 원쑤 일제가 빚어낸 류혈참극-간또대학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23년의 간또대진재는 지각운동이 일으킨 자연의 재난과 함께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에 의하여 조선민족에게 강요된 인공적인 재난도 기록하고있다.》

일제가 간또지방에서 조선인대학살만행을 감행한 때로부터 98년이 되는것을 계기로 우리는 중앙계급교양관을 찾았다.

중앙계급교양관의 반일교양편 3호실과 4호실은 일제가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조선인민을 얼마나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는가를 생동한 사료들과 전시품들을 통하여 뚜렷이 보여주는 고발장이다.

우리의 걸음은 간또대지진당시 일제의 대학살만행을 보여주는 전시판앞에서 멎어섰다.

《간또대지진당시 일제에 의한 조선인집단대학살만행은 그 잔인성과 야만성에 있어서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피비린 참극이였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뗀 강사는 치솟는 분노를 안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으로부터 98년전인 1923년 9월 1일 일본의 간또지방에서 리히터척도로 7.9의 강한 지진이 일어나 순식간에 모든것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상자와 행방불명자가 산생되였다.

하지만 일본반동지배층은 엄혹한 사태앞에서 아무런 구호대책도 세우지 않고 오히려 파산에 직면한 자본가들을 살려주는데만 급급하였다.그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불만이 극도로 야기되자 급해맞은 일본반동지배층은 자국민들의 불만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해 조선사람들이 고의적으로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약을 치고있으며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터무니없는 헛소문을 지어내고 그것을 극구 여론화하였다.

9월 1일 오후 일본반동당국은 정보기관에 민심안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였으며 이에 따라 정보기관에서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친다.》 등의 류언비어를 날조해냈다.다음날인 9월 2일에 일본당국은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조선인폭동설》이 얼마나 무근거한것이였는가 하는것은 진재지역에서 조선인폭동에 관한 풍설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전한 외신자료, 조선인학살에 동원된 일본군인을 대상으로 《조선인이 왜 적인가?》라고 한 물음에 《상관의 명령이니 모른다.》고 대답하였다는 당시 일본중의원 의원의 증언자료를 비롯하여 전시된 자료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었다.

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조선인폭동설〉이 전혀 무근거한 날조임에도 불구하고 일본당국의 살인지령에 따라 군대와 경찰, 〈자경단〉을 비롯한 살인귀들은 각종 무기들과 흉기들을 동원하여 짐승도 낯을 붉힐 잔인한 수법으로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무참히 학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제살인귀들은 조선사람들을 보기만 하면 쏴죽이고 찔러죽이고 불태워죽이거나 물에 던져죽였으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총창으로 찔러죽이고 숨지는 부모들의 눈앞에서 어린이들의 목을 자르거나 조선사람들의 팔다리를 톱으로 켜고 식칼로 눈을 도려내는 등 식인종의 야만적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놓았습니다.인간백정들은 〈오래간만에 법이 허락하는 사람잡이이니 흥이 났다.전주대에 쇠줄로 잡아맨 후 때리고 차고 쇠붙이로 머리에 구멍을 뚫고 참대창으로 찔렀다.〉고 자랑하면서 쾌락에 들떠다니였습니다.》

당시의 참상을 방불하게 보여주는 반경화앞에서 우리는 몸서리치지 않을수 없었다.사람들의 등과 가슴에 박힌 대검과 날창, 참대창들, 전주대에 매달린 사람의 발에 박혀있는 대못이며 바닥을 질벅하게 적시는 피, 참대창에 휘감긴 피묻은 천에 씌여진 《조선인을 죽이라》는 글발, 참혹한 주검의 바다우에서 광기어린 야성을 터뜨리는 인간백정들의 몰골…

살인마들의 귀축같은 만행으로 하여 지진이 일어난 9월 1일부터 18일까지의 기간에 무려 2만 3 000여명의 조선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그들이 흘린 피가 도랑을 지어 흘러내렸다는 강사의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속에 일제살인마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더욱 세차게 끓어번지게 하였다.

인류력사에는 치떨리는 학살만행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그러나 력사의 그 어느 갈피에서도 간또대학살만행과 같이 그처럼 짧은 기간에 수만명에 달하는 무고한 사람들을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극히 야만적인 방법으로 살해한 례는 찾아볼수 없다.인간도살을 락으로 여기는 섬나라족속들만이 빚어낼수 있는 참극중의 참극이였다.

당시 도꾜주재 외국의 대사와 공사들이 《일본은 놀랄만 한 한개 야만국이다.이 야만국을 상대로 외교를 계속할수 없다.》는 취지를 일본외무성에 전달한 자료, 조선인학살현장을 목격하고나서 《내가 일본사람이라는 수치를 이때처럼 절감하기는 처음이였다.》고 한 일본인의 증언자료들은 일제야수들의 인간도살만행이 얼마나 참혹하였는가를 더 잘 알수 있게 하였다.

《간또대학살만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강사의 말은 계속되였다.

사람잡이를 하나의 도락으로 여긴 일제살인귀들은 짐승도 낯을 붉힐 잔악무도한 학살을 감행하고서도 모자라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조선사람들을 《보호》라는 미명하에 수용소에 가두어두고 소나 말보다 더 혹독하게 부려먹었다.일제야수들은 재일조선인들을 포로로 취급하면서 피해지역에 내몰아 강제로동을 시켰다.이 과정에 간또대학살때보다 더 많은 우리 동포들이 무참히 학살당하고 굶어죽고 로동재해로 쓰러졌다.

간또대학살!

실로 그것은 일본반동들의 체질적인 조선인멸시감, 조선민족배타주의정신과 섬나라 사무라이고유의 잔인성과 야만성이 혼탁되여 빚어낸 력사에 류례없는 대학살참극이였다.그것은 일본반동들이야말로 인간증오와 민족배타주의사상, 야수성이 골수에 꽉 배인 야만들이고 사람잡이에 이골이 난 살인마이며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천년숙적 일제가 지난날 우리 민족에게 감행한 미증유의 죄악은 천추만대를 두고 용서할수 없으며 그 피값을 천백배로 받아내고 력사적으로 쌓이고쌓인 원한을 반드시 풀고야말리라는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지며 우리는 중앙계급교양관을 나섰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은정철

 

 

-중앙계급교양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