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들의 투쟁정신, 투쟁기풍을 따라배우자!

《수령이 준 과업은 곧 법이다》

맨손으로 첫 시제품을 만든 기세로 한해에 3 000대의 뜨락또르를 생산한 기양로동계급의 투쟁위훈

 

주체49(1960)년 12월 26일 8시 기양뜨락또르공장(당시)에서는 이곳 로동계급이 만든 3 000번째 뜨락또르에 대한 시운전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기양의 로동계급은 보수주의와 기술신비주의를 불사르며 자력갱생의 산아인 첫 《천리마》호뜨락또르를 만든 기세로 한해에 3 000대의 뜨락또르를 생산하는 놀라운 기적을 창조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선혁명은 하늘이 주는 신비한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편단심 당을 따르고 옹위하는 영웅적김일성-김정일로동계급을 비롯한 우리 인민의 위대한 힘에 떠받들려 전진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펼쳐주신 웅대한 농촌기계화구상에 따라 기양로동계급앞에는 1960년 한해에 자체의 힘으로 3 000대의 뜨락또르를 생산할데 대한 과업이 나섰다.

아직 물질기술적토대가 미약한 당시의 형편에서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자체의 힘으로 그 많은 뜨락또르를 꽤 만들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울려나왔다.

그때 기양로동계급의 심장속에서는 어떤 신념의 웨침이 터져나왔던가.

《우리야 남들이 만들지 못한다고 하던 첫 뜨락또르시제품을 맨손으로 만든 사람들이 아닌가.

수령이 준 과업은 곧 법이다!》

모두가 이런 비상한 각오를 안고 3 000대의 뜨락또르를 생산하기 위한 전투에 일제히 진입하였다.그럴수록 제일 안타까운것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는것이였다.

어떻게 하면 현 조건에서 더 많은 뜨락또르를 생산할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고심하던 과정에 그들은 문제해결의 열쇠를 기술혁신에서 찾게 되였다.

당의 요구대로 뜨락또르를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하자면 기술혁신을 해야 한다.여기에 생산장성의 지름길이 있다.

온 공장에 1인1건창의고안운동이 활발히 벌어지는 속에 생산의 성과적보장을 위한 사업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주물직장의 박성우작업반에 타번진 기술혁신의 불길을 통하여서도 그것을 잘 알수 있다.

작업반의 기술혁신사업에서 특징적인것은 창의고안운동을 다기능을 소유하기 위한 사업과 밀접히 결부시켜 진행한것이였다.

작업반에서는 생산협의회를 자주 열고 기술학습을 강화하였으며 기술자들과 로동자들과의 협동을 강화하는데 큰 힘을 넣었다.그리고 기능이 높은 로동자들이 기능이 낮은 사람들을 맡아 도와주도록 하는 등 새로운 방법들을 부단히 탐구적용하면서 작업반원들속에서 나온 기발한 착상들을 지체없이 현실에 도입하였다.

그 과정에 공장에 들어온지 반년밖에 안되는 한 신입공은 주물작업을 헐하게 할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내놓아 사람들을 깜짝 놀래웠다.

비결을 묻는 작업반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무기능공이기때문에 큰것은 생각 못하고 우선 내가 맡은 자그마한 일부터 생각하였습니다.

자기 맡은 일에서부터 혁신하는것, 작은것으로부터 기술혁신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모든 종업원들이 기술혁신의 주인이 되여나가는 과정에 공장에서는 창의고안운동이 군중적인 사업으로 활발히 벌어지게 되였고 지난 시기 생각조차 못하던 자력갱생의 창조물들이 줄지어 쏟아져나오기 시작하였다.

공장로동계급이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낸 38축자동보링기가 그 실례중의 하나였다.

뜨락또르의 심장부인 기관본체의 좌우측면 38개의 구멍을 단번에 뚫을수 있는 이 기계를 만들던 과정은 그야말로 시련과 난관의 련속이였다.

그러나 이쯤한 난관에 맥을 놓고 나앉을 그들이 아니였다.

열백번을 다시 깎고 천만번을 뜯었다 맞추는한이 있더라도 기어이 우리 힘으로 만들고야말겠다는 결사관철의 의지, 과학기술의 힘에 의거하여 새로운 전진을 안아오려는 그들의 불같은 일본새는 마침내 성공을 안아오고야말았다.

기술혁신의 봉화를 높이 추켜들고 모든 난관을 극복해나가던 과정에 창의고안은 수백건이나 하고 지구, 형타 등 새로 제작한 기술장비만 해도 수천종에 달한다는 사실은 수령이 준 과업앞에서 한치의 에누리도 모르는 그들의 비상한 혁명적열의에 대하여 잘 알수 있게 한다.

이 나날에 집단주의위력이 그 어느때보다 더 높이 발휘되였다.

뜨락또르생산열기가 고조되던 그해 10월중순 어느날 청년기관직장 로동자들에게는 소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생산이 멈춰설 정황이 조성되였다.당앞에 맹세한 시간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아무런 대책도 없는것으로 하여 그들의 가슴은 타드는듯하였다.

이때 한 선반공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렇게 말하였다.

《소재가 보장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릴수 없소.우리가 가서 일을 도와줍시다.》

그의 열기띤 호소에 로동자들이 합세하였다.

곧 그를 조장으로 하는 불사조청년돌격조가 무어졌다.그들은 지체없이 주물직장에 달려가 사락작업을 하면서 크랑크축을 비롯한 2일분의 소재를 마련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그들의 뒤를 따라 직장안의 50여명의 로동자들이 자진하여 7개의 청년돌격조를 뭇고 생산이 뒤진 직장을 적극 도와나섰다.

이들의 적극적인 투쟁으로 청년기관직장에서는 막힌 고리들이 하나둘 풀리게 되였으며 그달계획을 초과완수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였다.

청년기관직장 로동계급이 일으킨 청년돌격조활동은 삽시에 온 공장에 료원의 불길처럼 타번져 짧은 기간에 공장안의 모든 직장에서 수많은 청년돌격조들이 조직되였다.

이렇듯 각 직장들에서 조직된 돌격조는 무려 수십개에 달하였으며 여기에는 로동자들뿐만이 아니라 기술자, 사무원들도 망라되였다.

년말이 다가옴에 따라 모든 직장들에는 이런 글발이 나붙었다.

《3 000번째로 생산된 뜨락또르를 몰고 누가 평양으로 갈것인가?》

충성과 애국의 땀이 깃든 소중한 창조물을 몰고 위대한 수령님 계시는 평양으로 하루빨리 가려는 이들의 불같은 마음은 드디여 기적을 낳았다.

기양의 로동계급은 60~70분만에 뜨락또르를 1대씩 조립함으로써 당앞에 결의한 3 000대의 뜨락또르생산계획을 12월말까지 빛나게 완수하여 당정책관철에서 불가능을 모르는 영웅적로동계급의 기상과 본때를 다시금 만천하에 떨치였다.

기양의 로동계급이 한몸 다 바쳐 위대한 수령님의 농촌기계화구상을 하루빨리 실현해나가자고 불같이 웨치며 시련과 난관을 박차고 대고조를 일으키던 그때로부터 어느덧 60여년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당과 혁명의 요구앞에 언제나 충실했던 천리마시대 인간들의 모습은 오늘도 우리의 심장속에 소중히 간직되여있다.

3 000대의 뜨락또르!

이 기적의 창조물에 비껴있는 기양로동계급의 투쟁모습은 우리에게 다시금 가슴뜨겁게 새겨주고있다.

그것은 수령이 준 과업을 곧 법으로 받아들이고 한목숨 다 바쳐서라도 무조건, 철저히 집행하겠다는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심장을 불태울 때 이 세상에 못해낼 일이란 없다는 불변의 진리이다.

김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