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작물농사에 대한 견해를 바로세우고

 

전국의 많은 지역과 단위들에서 공예작물농사를 짓고있지만 생산실적에서는 차이가 있다.

그 중요한 원인은 공예작물농사에 대한 견해와 관련되여있다.공예작물농사가 인민생활향상과 직결된 책임적인 사업이라는것을 자각한 일군들이 있는 지역과 단위에서는 이 사업이 잘되고있다.

이런 의미에서 문덕군이 박하농사에 힘을 넣어 성과를 거둔 사실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남새와 감자, 공예작물생산을 늘이기 위한 경쟁도 하여야 합니다.》

군일군들이 박하농사를 한번 본때있게 내밀 결심을 품고 달라붙었을 때까지만 하여도 형편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재배면적도 적었고 포전의 지력도 낮았으며 농장원들의 준비정도도 높지 못하였다.

이 문제를 놓고 현실속에 깊이 들어가 실태를 료해하던 최원길동무를 비롯한 일군들은 일부 사람들속에서 공예작물농사에 대한 관점이 바로서있지 않다는것을 알게 되였다.공예작물농사나 해서 무슨 덕을 보겠는가 하는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있었던것이다.

이것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아무리 면적을 늘이고 투자를 하여도 공예작물생산을 추켜세울수 없었다.그래서 일군들이 관심을 돌린것이 박하농사를 잘할데 대한 당정책을 농장원들속에 깊이 심어주는것이였다.그들은 대중속에 들어가 공예작물재배가 알곡농사 못지 않게 중시해야 할 문제라는것을 깨우쳐주는 사업을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심도있게 진행하였다.이와 함께 지난 시기 군이 박하농사를 잘하여 덕을 본 경험을 알려주는 사업도 놓치지 않았다.그리고 박하농사에서 나서는 과학기술적내용을 가지고 학습을 실속있게 조직하였다.

이렇게 하니 누구나 박하농사에 대한 견해가 점점 달라졌고 마음먹고 해보겠다는 열의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하지만 눈에는 익고 손에는 설다고 박하농사가 생각처럼 쉽게는 되지 않았다.

군일군들은 맥을 놓지 않고 조직사업을 빈틈없이 짜고들었다.이들은 군당위원회의 지도밑에 여러 농장에 박하농사를 전문으로 하는 분조를 조직하였다.그리고 조건이 제일 어려운 분조를 시범으로 내세우고 잘 도와주었다.결과 이 분조에서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박하농사를 잘하여 계획을 넘쳐 수행하였으며 그 덕을 단단히 보았다.그러자 선듯 나서지 못하던 다른 분조의 농장원들도 너도나도 떨쳐나섰다.

이렇게 박하농사에 대한 견해와 관점이 달라지니 군에서는 척박하던 백수십정보의 땅도 몇해사이에 옥토로 만들수 있었다.뿐만아니라 앞선 영농방법도 전 면적에 받아들이였으며 기름뽑는 설비를 해당 단위와의 련계밑에 제작하여 모든 분조에 갖추어놓고 생산량을 늘이였다.

이곳 일군들과 농장원들은 지금 력사적인 시정연설에서 제시된 과업을 높이 받들고 공예작물생산을 추켜세워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할 열의에 넘쳐있다.

본사기자 윤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