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하반신마비의 몸이였던 영예군인이 복대를 탄원한 이야기

 

지난 9월 어느날 옹진군 련봉리당위원회의 한 사무실에서는 이런 절절한 목소리가 울리였다.

《저는 복대를 탄원합니다.수도의 1만세대 살림집건설장에서 땀흘리는 전우들과 함께 리상거리건설에 참가하고싶습니다.》 …

그는 영예군인 리국철동무였다.

잠시후 리당위원회를 나선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한껏 어려있었다.

활기있게 걸음을 다우치는 그의 귀전에는 병사시절 부르던 군가소리가 들려오는것같았고 야전물통 한모금물도 나누던 전우들의 그리운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내가 복대를 탄원한 소식을 어머니와 누이, 형님들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그의 눈앞에는 친부모, 친형제와 같은 고마운 사람들의 모습이 다시금 비껴들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사회주의제도가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것을 실생활을 통하여 깊이 체험하고있습니다.》

10여년전 군사임무수행중 뜻하지 않은 일로 부상을 당한 리국철동무는 어느 한 료양소에서 치료를 받게 되였다.

어느날 밤 하늘에 둥실 떠오른 달을 바라보며 피리를 부는 그의 눈에서는 맑은것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19살, 너무도 애젊은 나이에 하반신이 마비되여 한생을 세바퀴차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기는듯 아팠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호실에 뜻밖에 한 녀인이 찾아왔다.

나이는 몇살이며 고향은 어디인가 차근차근 묻기도 하고 자기에게도 군대나간 아들이 있다며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부터 나를 친어머니로 생각하고 불편한것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말하거라.》

알고보니 그는 남편의 병치료를 위해 료양소에 찾아온 평천구역 륙교1동에서 살고있는 영예군인의 안해인 최명금녀성이였다.

녀성과 리국철동무는 이렇게 남다른 정을 맺었다.

그때부터 그는 남편을 찾아오는 날이면 리국철동무의 몫까지 보약재와 식료품, 생활필수품을 준비해가지고와 정을 기울였다.

이 나날 리국철동무에게는 많은 식솔들이 생겨났다.

녀성의 형제들과 자식들이 뒤를 따라나섰던것이다.

그들모두가 리국철동무를 다시 일으켜세우기 위해 진정을 다 바치였다.

그들은 중앙병원들을 수없이 찾아다니면서 의료일군들과 협의회를 진행하며 치료방도를 모색했고 회복치료에 필요한 운동기재와 보약재를 구해오기 위해 먼길도 다녀왔다.…

이런 친혈육의 뜨거운 정에 떠받들려 리국철동무가 마침내 지팽이의 도움으로 일어서게 되였을 때 그들의 기쁨은 얼마나 컸던가.

한번은 고열로 앓는 자기의 머리맡에 앉아 미음을 떠넣어주는 최명금녀성에게 리국철동무가 남남인 자기를 위해 왜 이렇게 정을 기울이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동무가 왜 남인가, 나라에서 아끼고 내세워주는 영예군인들은 우리모두의 장한 아들들이라고.

이런 마음이 그들을 한식솔처럼 되게 하였고 뜨거운 정을 맺게 하였던것이다.

그로부터 얼마후 리국철동무는 제대되여 고향인 옹진군으로 돌아가게 되였다.그날 신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며 녀성의 온 가족이 따라나와 바래줄 때 영예군인의 가슴속에서는 격정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아,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가.내 저들의 뜨거운 정을 언제나 잊지 않으리라.)

영예군인의 몸이 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는 사회주의 우리 제도의 한식솔로 사는 긍지를 다시금 뿌듯이 느낄수 있었다.

나라의 장한 아들이라며 새집을 마련해준 농장일군들과 명절, 휴식일이면 적적해할세라 노래도 불러주고 힘을 주군 하던 군급기관의 청년동맹원들, 그의 병치료를 위해 찾아오군 하는 군인민병원의 의료일군들…

그러던 어느날 최명금녀성과 그의 딸이 고향에까지 찾아올줄 꿈엔들 생각했으랴.

《어머니!》, 《누이!》라고 부르며 지팽이를 짚고 허둥지둥 안겨드는 리국철동무를 그들모녀는 꼭 껴안았다.

그때부터 평양에서 옹진땅까지 녀성의 가정과 영예군인사이에는 혈연의 정이 변함없이 오고갔다.

그들뿐이 아니다.해마다 리국철동무의 생일을 잊지 않고 꼭꼭 찾아와 축하해주는 부대의 옛 정치일군이며 축하장과 편지를 보내주던 그리운 전우들, 생활에 불편이 있을세라 늘 왼심을 써주던 군당위원회일군들과 농장일군들, 마을사람들의 뜨거운 정성에 떠받들려 마침내 대지를 다시 활보하게 되였다.

이런 고마운 사람들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리국철동무는 애국의 길을 끝없이 걸었다.

들끓는 협동벌을 찾아다니며 피리도 불고 노래도 불러주었고 나라에 보탬을 주는 한가지 일이라도 더 찾아하기 위해 애를 썼으며 오늘은 자기를 일으켜준 고마운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복대를 탄원했던것이다.

이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바로 이런 청년을 키워낸것은 고마운 우리 제도이다.

송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