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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인민의 안녕을 지키는 길에 한생을 바쳐가리

지진국 지진연구소 실장 유정남동무에 대한 이야기

 

말그대로 처음이였다.

지진연구사, 그 부름조차 생소했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지진학을 탐구하는 지진국 지진연구소 실장 유정남동무와 마주앉았을 때 지진이란 출판물이나 TV화면에서만 보아온 우리에게 먼저 떠오른것은 그의 공적은 과연 어떤것일가 하는것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그는 지난 20여년간 지진관측설비들을 현대화하기 위한 연구사업에 자신과 가정의 모든것을 다 바쳐왔다.

임의의 장소에서의 지진현상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기록할수 있는 일체식단주기지진계와 수자식광대역지진계를 제작완성하고 수자지진자료기록기를 국산화하여 지진관측소들에 설치함으로써 지진자료들을 신속정확히 분석처리할수 있게 한것을 비롯하여 지진관측과 예측예보사업을 현대화, 과학화하는데 크게 기여한 그의 과학연구성과들의 가치와 무게는 한두마디로 다 말할수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공적보다 더욱 선명하게 안겨오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조국의 안녕과 인민의 생명재산을 지켜 명예도 안락도 바람이 없이 남모르는 헌신의 길을 묵묵히, 꿋꿋이 걸어온 그의 백옥같은 애국충정과 참된 과학적량심이다.

 

가고가다 쓰러져도 영예로운 길

 

《흔히 지진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땅속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탄부나 광부라면 땅속을 들여다보며 석탄이든 광석이든 캐내겠지만 우리는 평생 땅속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서도 아무것도 캐지 못합니다.하지만 거기에서 한시도 눈을 뗄수 없는것이 우리 일이랍니다.》

이것은 우리가 연구소의 한 일군에게서 웃음속에 받은 지진연구에 대한 통속적인 강의였다.

땅속을 들여다본다는것은 실로 수월한 일이 아니였다.

지진을 연구하자면 지각변동으로부터 피해방지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학문을 종합적으로 연구해야 하는데 측정과학이라고도 불리우는 지진과학에서 측정설비는 병사에게 비유하면 총과도 같은 무기라고 한다.바로 지진과학에 종사하는 각이한 연구사업에 필요한 측정설비들을 연구개발하고 도입하는것이 유정남실장의 임무였다.

눈에 보이는것을 재는 측정기구가 아니다.10억분의 1m정도의 크기를 측정하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니 그는 얼마나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을 하고있는것인가.

김책공업종합대학 전자공학부를 졸업한 그에게 있어서 사실 지진학은 거리가 먼 학문이였다.지진연구소에 배치된 날 그는 먼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지진이 일어납니까?》

《지진은 매일같이 일어나오.다만 우리가 느끼지 못할뿐이요.》

머리희슥한 연구사의 대답을 들으며 그는 비로소 지진학이라는 학문의 첫 표상을 익혔다.하지만 그때 무엇보다 그에게 충격을 준것은 지진연구소의 위치를 우리 수령님께서 몸소 잡아주시였다는 사실이였다.

온 나라의 크고작은 일을 돌보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지진연구소를 내오도록 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훌륭한 지진관측조건과 연구사업환경을 마련해주시기 위해 기울이신 심혈은 끝이 없었다.

이 나라 방방곡곡에 우후죽순처럼 일떠서는 기념비적건축물들과 해빛밝은 살림집들에도, 부강조국의 래일을 위한 설계도에도 우리 인민들과 후대들이 지진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시려 그토록 마음쓰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로고가 어려있음을 새겨안을수록 유정남동무의 생각은 깊어졌다.

학문을 해도 성공할수 있는 학문을 하고싶은것은 과학자들의 한결같은 심정이다.지진학은 세계적으로도 성공하기 힘든 학문으로 알려져있다.더우기 피해성지진이 드문 우리 나라에서는 지진학분야의 그 어떤 연구결과에 대하여서도 성공이나 완성이라는 말을 하기가 힘들다.한마디로 지진학연구는 쉽게 빛을 볼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였다.높은 명예와 눈부신 성공보다 더 소중한것은 수령이 근심하고 중시하는것, 바로 여기에서 자기의 과학탐구의 주제, 인생의 길을 선택할줄 아는 과학자의 참된 의리가 아니겠는가.

유정남동무는 우리 말을 한자한자 배우던 어린시절처럼 지진의 세계를 한걸음한걸음 헤쳐나갔다.지질학, 화학, 지구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지진연구에 필요한것이라면 그는 무엇이나 직심스럽게 파고들었다.그 어떤 측정기구도 지진학에 대하여 모르고서는 정확히 만들수 없었던것이다.

당시 전국각지의 지진관측소들에서는 종이에 지진신호를 기록하는 상사식기록기를 리용하고있었는데 그 기록자료들이 평양의 지진연구소에 집결되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랑비되고 그 종이기록지들에 새겨진 미세한 그라프들을 분석하는데도 그에 못지 않은 시간이 소비되였다.

하루빨리 지진관측과 예보사업을 현대화, 과학화하여야 하였다.이것은 지진예보체계를 철저히 세워놓고 지진이 일어날 징후가 나타나면 인민들에게 인차 예보해주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관건적문제였다.

남들이 하는것을 우리라고 왜 못하겠는가.민족적자존심을 안고 우리 힘으로 돌파구를 열어나가자.

이런 비상한 각오를 안고 유정남동무는 총적인 체계구성으로부터 프로그람작성에 이르는 모든 공정을 진지하게 주도하고 꾸준히 실험해보며 전국수자지진관측망의 토대를 착실하게 다져나갔다.

근 10년전 3월 어느날 그는 한 연구사와 함께 전국수자지진관측망의 말단지진관측설비인 수자지진자료기록기의 도입을 위하여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 올랐다.

장군봉에 수자지진자료기록기를 도입하여 그 정상가동을 보장하고 다음관측소인 무두봉을 향하여 떠나던 그들은 갑자기 터진 눈보라에 휩싸이게 되였다.

한치앞도 보이지 않았다.삽시에 손발이 얼어들었다.그러나 살을 에이는 추위보다 더 사정없이 온몸에 엄습하는것은 두려움이였다.만일 끝끝내 길을 찾지 못해 영영 눈보라속에 묻히게 된다면 하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유정남동무는 소스라치듯 놀랐다.

(당에서는 백두산지구에 수자지진자료기록기를 도입하고 그 정상가동을 보장하였다는 충성의 보고를 기다리고있지 않는가.

쓰러져선 안된다.나에겐 그 무엇도 포기할 권리가 없다.심장이 뛰는한 당이 준 임무는 기어이 수행해야 한다.)

그는 고드름처럼 굳어지는 온몸의 힘을 모아 손에 들었던 보조기재들을 더욱 꽉 그러안았다.아직도 백두산지구의 여러 관측소가 그들을 기다리고있었다.도입한 기록기들에서 실시간으로 관측되는 자료들을 한시바삐 평양으로 전송해야 하였다.

몸은 비록 광야에 묻힌다 해도 혁명정신만은 백두의 령봉처럼 굳건히 간직하고 싸워갈 일념으로 심장을 불태웠던 항일혁명투사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명령을 관철하기 위함이라면 죽음도 기꺼이 맞받아나갔던 그들의 넋으로 가슴을 끓이며 유정남동무는 강잉히 일어섰다.공구주머니에 있던 나사돌리개로 발홈을 하나하나 파면서 가파로운 경사지를 가까스로 내려 무두봉관측소에 가닿았다.무수한 시련과 난관을 딛고 이겨내며 우리 당에 기어이 충성의 보고를 드리였다.

이렇게 전국수자지진관측망구축은 걸음걸음 우리 식으로 피타게 완성되여나갔다.그 나날 그는 세계적으로도 몇개 나라들에서만 만든다는 일체식단주기지진계와 수자식광대역지진계를 우리 실정에 맞게, 우리 방식으로 실리있게 제작완성하여 지진관측에서 국산화비중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의 안녕을 위해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며 인민의 생명재산을 지키기 위함이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그이의 뜻을 받들어 과학자이기 전에 인민의 참된 수호자가 되여 그가 걸어온 길, 그 길은 정녕 가고가다 쓰러져도 후회없는 길, 영예로운 길이였다.

 

마음속의 측정계

 

취재과정에 우리는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였다.우리 나라 지진학계의 권위자라고도 할수 있는 유정남동무가 50살이 되는 올해에야 석사의 학위를 수여받았다는것이였다.의문을 금치 못하는 우리에게 국장 장정남동무는 말하였다.

《사실 유정남동무가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중에서 극히 일부만 가지고 학위론문을 썼어도 그는 벌써 박사가 되고도 남았을것입니다.》

지진이란 말그대로 땅속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그것을 누가 정확히 안다고 할수 있겠는가.더우기 그 연구결과는 현실에서 검증하기가 어려운것으로 하여 그 성과가 큰것인지 작은것인지, 옳은것인지 틀리는것인지 판별하기가 힘들다.그 판별앞에서 단 한번의 사소한 에누리도 모르는 엄격한 심의원이 다름아닌 유정남동무이다.

한번은 그가 약간의 문제점으로 하여 같은 심의원의 연구결과에 대하여 부정한적이 있었다.연구결과를 발표한 당사자도 그러했지만 더욱 아연해진것은 금방까지도 함께 앉아 연구결과에 대한 심의를 하던 심의원들이였다.

연구결과발표가 끝난 후 한 연구사가 그에게 같은 심의원으로서, 더우기 오랜 친구로서 너무하지 않았는가고 물었을 때였다.이윽토록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통과시키면 내 마음도 편한줄 아오.그러나 한 로연구사가 남긴 부탁이 나를 호되게 채찍질해주더군.》

10여년전, 한 로연구사의 연구결과를 부정한 그날 유정남동무는 온밤 잠들수 없었다.그 연구사는 그에게 지진학탐구에로의 첫 문을 열어준 스승이였다.이리저리 뒤척이다 끝내 자리를 차고 일어난 그는 한밤중에 그의 집문을 두드렸다.미안한 인간적감정에 앞서 학술상문제를 끝까지 해명하기 위해 밤길을 달려온 그를 로연구사는 기꺼이 맞아주었다.격렬한 론쟁끝에 유정남동무의 주장이 옳았음을 인정한 로연구사는 자존심도 나이도 뒤전에 밀어놓고 새세대 연구사인 그에게 이렇게 절절히 부탁했다.

《고맙소.지진학을 개척해야 할 우리에겐 과학을 놓고 인간적리해를 앞세울 권리가 없소.언제나 오늘처럼 나라와 후대들을 먼저 생각해주오.》

그날의 로연구사의 부탁을 자신의 량심을 비추어보는 거울로 간직하고 살아왔기에 나라의 지진학발전을 추동하고 후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론문에 적당히, 짐작해서 쓴 단 하나의 문구도 있어서는 안된다는것이 유정남동무가 내세우는 철칙이였다.

국가와 인민에게 실지 리득이 되는 일을 하는것을 가장 큰 보람과 행복으로 여기며 오로지 지진연구에 인생의 모든 열과 정을 쏟아부은 그에게 있어서 사실 매 연구종자는 다 학위론문감이였다.하지만 누구보다 학위론문을 힘들게 쓴 사람이 다름아닌 유정남동무였다.우리 후대들이 교과서처럼 배우고 리용할수 있는 론문을 써내기 위해 그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놓고 고심하며 지새운 밤은 그 얼마이던가.

만일 그 어떤 사심을 앞세우거나 자기 리익을 손톱눈만큼이라도 먼저 생각했다면 그는 지진연구의 길을 끝까지 갈수 없었을것이다.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나날에 누구보다 출장길에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중에는 지진연구사들도 있다.대다수의 지진관측소들이 주민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자리잡고있는것으로 하여 집에서 사는 날보다 출장길에서 사는 날이 더 많은 그들의 옷은 늘 눈비에, 땀에 젖어 마를새가 없었다.

지금도 북변땅의 어느 한 지진관측소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유정남동무가 수십년전에 했던 말을 두고두고 외우고있다.

봄에 검정해준 관측설비들이 지금껏 잘 동작하고있는데 꼭 이렇게 찬비를 맞으며 고생을 사서 해야 하는가고, 당장 큰 지진이 일어나는것도 아닌데 한번쯤 건늰다고 큰일나겠는가며 한 청년이 그의 건강을 걱정해주었을 때 유정남동무가 한 말은 얼마나 가슴을 울렸던가.

《난 지금도 지진예보를 제때에 하지 못하여 우리 인민들이 놀란 사실을 두고 어버이장군님께서 몹시 심려하시였다는 이야기를 잊을수가 없소.만약 우리가 검정을 잘하지 못해 이 지진계가 천번중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동작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우리 당에 걱정을 끼쳐드리게 되지 않겠소.한두번 끼니는 건늬고 잠은 며칠 자지 못할수 있어도 지진계검정만은 절대로 번질수 없소.》

하루 24시간 만가동해야 하는 지진계의 수리와 검정을 위해 한해에도 몇번씩 전국의 지진관측소들을 발이 닳도록 누벼온 유정남동무, 인적드문 그 길에 그가 남긴 자욱은 한 지진학자가 조국앞에 남긴 량심의 기록이기도 하였다.

지진계에는 검정과 교정이 있을수 있어도 언제나 마음속에 가장 귀중한 측정계로 안고 사는 그의 량심엔 결코 교정이란 있을수 없었다.

흔히 사람들은 새 건물이 일떠설 때면 설계가나 건설자들의 수고부터 생각하군 한다.하지만 바로 그들앞에 건설물의 내진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고심참담한 사색을 바쳐가는 지진연구사들이 있다는것은 다 모른다.

언제인가 어느 한 건축물의 내진안전성평가를 위한 측정자료를 얻기 위해 밤낮이 따로 없이 긴장한 전투를 벌리던 유정남동무는 그만 오래전부터 앓고있던 심장병으로 쓰러지게 되였다.함께 일하던 젊은 연구사가 빨리 병원으로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고 재촉했을 때 유정남동무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다.

《인민의 생명안전을 책임진 우리는 당과 국가앞에 건설물의 내진안전성을 량심으로 담보해야 하오.》

진정 그에게 자기라는 존재는 없었다.오직 국가적리익만 있었다.그것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칠 희생과 헌신의 각오만 있었다.하기에 그는 언제 한번 자신과 가정을 위한 시간을 낼수 없었다.

몇해전 연구소에서는 가족회의가 진행되였다.그날 초급당비서는 유정남동무의 안해인 고려의학종합병원 의사 로평미동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다 보신것처럼 이 회의실에 나붙은 그 어느 속보에나 유정남동무의 이름이 맨 앞자리에서 빛나고있습니다.남보다 건강치도 못한 그가 당에 기쁨드릴 큰일을 할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남편의 담당의사가 되고 진정한 혁명동지가 되여 나라의 지진학발전을 위해 분투할수 있도록 떠밀어주고 밑거름이 되여준 안해의 공로입니다.》

만장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안해는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가.

《출장준비를 해주오.》, 《당신이 보고 결심해서 처리하오.》라는 말밖에 할줄 모르는 뚝쟁이남편이여서 그토록 허구한 날 밥보자기를 손에서 놓을새 없었건만 남편이 어떤 큰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그였다.

하지만 어머니당에서는 유정남동무가 한 크고작은 모든 일을 속속들이 다 헤아려 당창건 70돐 경축행사대표로, 오늘은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내세워주었다.좋은 날에나 어려운 날에나 당을 받들어 티없는 량심으로 수놓아온 애국의 자욱자욱을 조국과 인민을 위한 아름다운 생의 흔적, 영예로운 삶으로 값높이 빛내여주었다.

* *

맡은 사업의 중요성으로 하여 늘 근심하며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유정남동무에게 가장 소중한 자랑이 있다면 그것은 인민들의 발편잠을 지켜 살며 투쟁한다는것이다.그 삶을 더없이 긍지높이 자부하며 그는 말하였다.

《큰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땅속에서 빛이 나오는 현상을 지광이라고 합니다.그 빛은 보일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수도 있습니다.아직은 그 누구도 이 땅에서 지광을 본적이 없습니다.하지만 혹시 그 언제인가 지광이 있다면 바로 그 한순간을 위하여 필요한것이 우리의 한생입니다.》

본사기자 조향선

본사기자 정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