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개진은 생활환경개선에서부터

 

얼마전 우리가 과일군 송곡과수농장을 찾았을 때였다.

리소재지에 한폭의 그림마냥 희한하게 일떠선 문화후생시설에 눈길이 끌리여 우리의 발길은 그곳으로 향했다.

과일군의 특성에 맞게 《사과원》이라고 붙인 건물의 이름도 독특했지만 목욕탕과 리발실, 미용실, 탁구장 등을 도시부럽지 않게 그쯘하게 꾸려놓은것은 우리에게 더 큰 감흥을 주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우리 인민이 사회주의문명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애써 노력하여야 합니다.》

몇해전 어느날 농장일군들의 협의회는 심각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였다.

리대혁관리위원장이 발기한 문제가 중요한 화제거리로 번져졌던것이다.

그것은 리소재지에 문화후생시설을 새롭게 일떠세우는 문제였다.

일부 일군들이 의견이 있어하였다.자재와 자금도 부족하고 로력도 긴장한 지금 더우기 작업반마다 한증탕이 있는데 무엇때문에 새로 건설을 벌려놓는가 하는것이였다.

누구도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며칠이 흘러 이 문제를 다시 토의하는 협의회가 열렸다.뜻밖에도 유광명초급당비서가 적극 지지해나섰다.

그때를 생각하며 농장의 한 일군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 일군들속에 남아있던 농촌에서야 이쯤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낡고 뒤떨어진 사고방식이 완전히 불타버리게 되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본격적으로 진행되게 된 문화후생시설건설이였다.

초급당위원회에서는 문화후생시설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훌륭히 건설하기 위해 많은 품을 넣었다.

일군들을 앞선 단위들에 보내여 내부설계와 비품들을 촬영해오게 하는 한편 건설물의 질을 보장하도록 요구성도 높이였다.

농장의 책임일군들은 농업근로자들이 리용할 설비와 비품들도 좋은것으로 갖추어주기 위해 왼심을 썼다.

이와 함께 초급당위원회에서는 새로 지어준 살림집을 가정세대들에서 위생문화적으로 관리하도록 일군들이 정기적으로 돌아보는 사업체계도 세웠다.

농업근로자들의 생활환경을 개변하기 위한 초급당위원회의 사업은 그들의 생활에서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농업근로자들은 새로 일떠선 문화후생시설을 리용하면서부터 언제나 머리단장도 시대적요구에 맞게 단정하게 하고 다니였으며 사업과 생활을 락천적으로 진행하였다.그리고 집안팎을 알뜰하게 관리하는 기풍도 서게 되였다.

명절날, 휴식일뿐 아니라 작업이 끝난 이후에도 새로 일떠세운 문화후생시설을 찾아 리용하는 과정에 이곳 농업근로자들은 더 좋은 래일에 대한 확신을 안고 과일생산에 자기의 지혜와 땀을 아낌없이 바쳐나갔다.

이곳 초급당위원회의 사업은 농촌의 면모와 환경을 개변하는 사업은 생산 못지 않게 중요한 사업이며 여기서부터 뚜렷한 변화를 가져와야 농촌에서 혁명적이고 문명한 생활기풍을 확립해나갈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본사기자 김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