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모교에 보낸 회답편지

 

따스히 내려쪼이는 아침해살이 대지를 뒤덮고있던 엷은 안개를 말끔히 밀어내자 원산사범대학의 교정에는 화창한 봄풍경이 완연하게 드러났다.

복숭아꽃, 살구꽃 등이 활짝 피여 짙은 향기를 풍기는 교정으로 들어서는 김경희학장의 귀전에는 어제 초급당일군이 하던 말이 그냥 울리고있었다.

《학장선생님, 래일 오전에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와 섬분교, 최전연지대, 산골학교들에 자원진출한 졸업생들과의 상봉모임이 있습니다.그들에게 힘이 되는 좋은 말을 해주기 바랍니다.그들의 사업과 생활에 필요한것들은 이미 준비해놓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정든 고향을 떠나 어렵고 힘든 부문으로 탄원진출하는 졸업생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하기에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해줄것인가를 두고 엊저녁부터 생각이 많았다.

그의 눈앞에는 1980년대에 탄원한 후 지금까지 최전연지대와 산골학교의 교단을 꿋꿋이 지켜서있는 모교의 옛 졸업생들의 얼굴이 선히 떠올랐다.뒤이어 지난해에 최전연지대의 학교로 탄원한 림철순의 갸름한 얼굴도 금시 마주한것처럼 비쳐졌다.그는 모교의 졸업생인 동시에 원산중등학원 졸업생이였다.그래서 마음의 저울추가 그에게로 더 쏠리는것같기도 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교원들은 누가 알아주건말건 깨끗한 량심과 성실한 노력으로 한생을 바쳐 교육초소를 지켜가는 참다운 애국자, 충실한 혁명가가 되여야 합니다.》

문득 림철순이 생소한 최전연지대에 간 다음에도 아버지처럼 따르는 환경과학부의 박상일학부장이 보여주던 손전화통보문들이 생각났다.

《선생님, 어제 분교일을 도와주러 왔던 유모아가 많은 군관동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도주자에게는 군법이 적용되오.난 처녀선생에게 그런 군법이 필요없을거라고 믿겠소.〉

나를 군인처럼 여겨주는 그 믿음을 한생토록 지킬수 있겠는지 두렵습니다.》

《5년동안 한명의 학생을 가르친 교원이 있는 외진 섬분교에 비하면 여긴 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어쨌든 뭍이 아닙니까.수업에 참고할 전자교수안들을 보내주어 정말 고맙습니다.우리 분과장선생님도 몇해전 리수덕원산교원대학을 졸업하고 여기에 탄원한 존경이 가는분입니다.그와 함께 있으니 적막감도 없어지고 배우는것도 많습니다.》…

그는 최전연지대의 그 학교에서도 10리나마 떨어져있는 자그마한 분교에 또다시 자진하여갔다고 한다.탄원지에서 또 한번 《탄원》한셈이였다.통보문만 몇개 보내여왔을뿐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한통의 편지도 모교에 보낸적 없었다.

(이번 상봉모임때 그 통보문내용을 이야기하면 감화력이 더 클수도 있지 않을가?…)

창턱에 놓여진 화분에 물을 주면서 그는 학부장에게 이야기했다.

《림철순교원을 대학시절에 친딸삼아 제집에서 키운 학부장선생님이 졸업생탄원자들과의 상봉모임때 그 통보문들을 읽어주십시오.》

학장은 다시 올해 탄원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로 탄원한 김재향, 대대로 교육자집안에서 나서자란 조선봉, 먼저 탄원한 대학상급생들의 정신세계에 공감하여 생소한 고장에 청춘의 배낭을 풀 결심을 다진 송정경, 박명금을 비롯한 여러 졸업생에게 무엇인가 정신적자양분을 더 부어주고싶었다.

송수화기를 든 학장은 금강군과 법동군의 교육부문 일군들을 찾았다.

잠시후 그의 사업수첩에는 그곳 일군들이 불러주는 1980년대에 탄원한 오랜 교육자들의 자료가 적혀지기 시작했다.

이름 변경선, 금강군의 최전연지대에 있는 고급중학교 교원, 교육년한 34년, 지금까지 1 000여명의 학생들을 졸업시킴, 제14차 전국교원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음.…

이름 김옥순, 법동군 여해고급중학교 교원, 교육년한 33년, 제14차 전국교원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음.…

그 간단한 경력자료에 수십년간의 그들의 삶이 함축되여있었다.인적드문 곳에서 고생을 묻어 묵묵히 조국의 미래를 키워낸 그들에게는 특출한 공로가 없었다.허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후대교육사업에 깨끗한 량심과 지혜와 열정을 다 바친 그들의 삶을 값높이 내세워주시지 않았는가.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은 몇해전 그날 대회참가자들의 숙소에서 김옥순교원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학급인원이 3명 혹은 그보다 적은 때도 있었습니다.운동회날이면 담임교원인 제가 별식을 준비하여 그들에게 안겨주는것이 례상사였구요.그러면 학부형들이 얼마나 옹색해하던지.하지만 그런 순간이 저에겐 정말 행복했습니다.》

외진 곳에 있는 단 한명의 학생을 위해서도 학교가 있는 나라, 그곳의 교단에는 응당 내가 서야 한다고 여긴 이런 참된 교원혁명가들의 수고를 우리 당에서는 일일이 헤아려주었다.…

상봉모임에서 1년전에 탄원한 처녀교원의 전화통보문을 듣고 흥분된 젊은 눈동자들이 다음차례로 나선 학장을 바라보았다.

《동무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우리 대학에서 탄원한 졸업생들을 비롯하여 어렵고 힘든 곳에 자원진출한 전국의 교원들을 애국자로 값높이 내세워주시며 대해같은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였습니다.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찍은 영광의 기념사진, 그것은 우리 대학의 졸업생들이 모교에 보낸 회답편지나 같습니다.》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박수소리,

붉게 상기된 얼굴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달아오른 장내에 설레이는 격정의 파도는 좀처럼 잦을줄 몰랐다.

그것은 비단 감동의 분출만이 아니였다.그들처럼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조국의 미래를 아름답게 키워가려는 새세대 교육자들의 삶의 지향이였고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곳에서 한생토록 애국의 한길을 꿋꿋이 이어가는 참된 교원혁명가가 되겠다는 굳은 맹세였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먼저 탄원진출한 졸업생들의 소식은 대학안에 탄원열풍을 더욱 고조시키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