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회에 참가한 농장원대표

은파군 광명협동농장 제1작업반 농장원 현화성동무에 대한 이야기

 

은파군 광명협동농장 제1작업반 농장원 현화성동무는 30년전 당에서 걱정하는 농사문제를 풀기 위해 스스로 농촌에 뿌리를 내린 그날부터 농사를 잘 짓기 위해 모든것을 다하였으며 나라에 많은 애국미를 바치였다.

농사군의 본분을 다하는 속에서도 세상을 떠난 농장원들의 자녀들을 맡아 농촌을 떠메고나갈 기둥감들로 훌륭히 키우고있다.

농민으로서, 공민으로서, 당원으로서 언제나 자기의 의무에 충실해온 현화성동무, 그의 삶은 우리의 모든 농민들이 당의 사회주의농촌건설구상을 충직하게 받드는 농촌혁명가들로 준비되자면 삶의 순간순간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부모의 뒤를 이어 고무산세멘트공장에서 혁신자로 이름떨치던 현화성동무가 농사와 자기 생활을 처음으로 하나로 이어본것은 처녀시절 만경대고향집참관길에서부터였다.그때 수수한 초가집에 계시면서 일생 농사를 지으신 만경대일가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더우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년로하신 몸으로 험한 포전길을 걷고걸으신다는 소식에 접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드넓은 협동벌에 가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공업이 농업을 돕고 로동계급이 농민들을 도와줄데 대하여 간곡하게 가르쳐주고계시지 않는가.공장에서 단련된 로동계급답게 나도 농촌혁명에 이바지할수 없을가.)

이렇게 되여 그는 정든 고향을 떠나 은파군의 농장원총각을 한생의 배우자로 선택했다.

그러나 농장원이 되였다고 하여 누구나 진정한 땅의 주인이 되는것은 아니였다.무슨 일에서나 첫 고비를 넘기기가 제일 힘들듯이 첫해 농사를 짓던 그해 현화성동무는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고 속도 많이 태웠다.

시집온 첫해 어느날 강냉이영양단지를 잘못 만들어 남편에게서 꾸지람을 들었을 때였다.그날 밤 홀로 눈물을 흘리며 다시 영양단지를 만드는 그에게 시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농사를 잘 짓는건 다 나라를 위하고 우리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겠니.그래서 우리 농민들은 자기를 깡그리 바쳐 나라의 쌀독을 가득 채우는데서 생의 보람과 기쁨을 찾는거란다.》

현화성동무는 새삼스럽게 시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비록 겉모습은 평범하고 소박해도 마음은 그지없이 진실하고 웅심깊은것이 바로 우리 농민들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때부터 그는 이악하게 노력하였다.농사일에 숙련하기 위해 새벽이슬을 차며 포전으로 향하군 하였고 남들이 다 자리를 뜬 후에야 별을 이고 집으로 들어섰다.그의 이런 열성에 한다하는 농사군들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수 없었다.그후 그는 분조의 선동원이 되였다.

어느해인가 례년에 없는 왕가물이 들이닥쳤을 때였다.타들어가는 곡식앞에서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며 일부 농장원들은 맥을 놓고 털썩털썩 주저앉았다.그러나 현화성동무는 앞장에서 물지게를 지고 달렸다.지게로 물을 나르는것만으로도 성차지 않아 량손에 물바께쯔를 또 들고 달리군 하였다.그의 이런 모습은 말없는 선동이고 교양이였다.

10여년전 현화성동무의 맏아들이 조선소년단 제6차대회에 참가하였다.평범한 농장원의 자식을 대회장에까지 불러준 당의 사랑에 보답할 마음 안고 그는 알알이 고른 낟알을 나라에 애국미로 바치였다.그런데 그 소박한 마음을 헤아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은정어린 감사를 보내주실줄 어찌 알았으랴.

그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기와 같은 평범한 농장원도 알고계신다는 생각, 장군님의 그 하늘같은 믿음과 사랑에 기어이 보답해야 한다는 자각으로 심장을 불태웠다.그렇게 그가 10여년세월 나라에 바친 애국미는 수십t을 헤아린다.

이렇듯 농사군의 본분을 다하는 속에서도 그는 먼저 간 농장원들의 자식들을 맡아안고 그들을 우리 농촌을 떠받드는 기둥감들로 대바르고 훌륭히 키우고있다.

10년전 어느날 현화성동무는 제7작업반마을에 몇달사이에 부모를 잃은 동심이네 세 자매가 살고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그는 어떻게 되여 자기의 발길이 그곳으로 향하게 되였는지 몰랐다.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의 어머니이다.우리 집에 가서 함께 살자.》

세대주와 토론도 없이 애들을 데리고 집문턱을 넘어섰을 때 남편인 조명환동무의 놀라움은 컸다.그날 밤 애들이 모두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을 때 부부가 조용히 나누는 목소리가 담담히 울렸다.

《당신 정말 애들을 잘 키울수 있겠소?》

《제가 어떻게 친어머니만큼이야 하겠나요.하지만 저 애들을 꼭 아버지, 어머니처럼 실농군들로 키우겠어요.》

그후 그의 자식들은 20여명으로 늘어났다.현화성동무는 애를 태우는 자식들을 교양하느라 숱한 마음고생을 하여야 하였다.걸핏하면 집을 뛰쳐나가던 아이도, 밥투정을 늘 입에 달고다니던 아이도 그의 원칙적이며 따뜻한 사랑속에 공부 잘하고 착한 아이로 되였다.훌륭한 어머니에게는 잘난 자식, 못난 자식이 따로 없고 실농군에게는 나쁜 땅, 좋은 땅이 따로 없다는것이 그의 소박한 생각이였다.

단순히 동정과 인정 하나만으로 시작한 일이라면 끝까지 가지 못할것이다.그 애들을 모두 부모들의 뜻대로 농촌의 기둥감들로 키워 사회주의농촌진지를 강화하는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려는 마음이 그를 이처럼 강인한 어머니로 살게 하였던것이다.

언제인가 자식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현화성동무는 준비했던 꾸레미를 손에 들고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영문을 몰라하는 아이들에게 그는 말했다.

《오늘이 명심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란다.우리 함께 명심이 어머니를 찾아뵙자꾸나.》

명심이의 어머니묘앞에 이른 현화성동무는 아이들이 모두 인사를 하도록 하고나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명심이 어머니는 쌀로써 당을 받들기 위해 성실한 땀을 바치다가 먼저 간 훌륭한 농민이였다.명심아, 그리고 얘들아, 부디 부모들의 이 뜻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이제는 현화성동무의 집벽면에도 조선인민군입대증들이 걸리게 되였다.

자식들이 하나둘 조국보위초소와 사회주의대건설장들로 떠나갈 때마다 그는 당부하군 했다.우리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위해 오만자루의 품을 바쳤다면 그것은 당과 조국을 아는 참된 인간으로 키우자고 기울인것이라고.

지난해 3월 돌격대에 나가 청춘시절을 값있게 보내고 돌아온 동심이의 결혼식이 진행되였다.농장의 끌끌한 총각과 가정을 이루는 동심이의 모습을 보며 현화성동무는 자식들이 주인이 되여 더욱 훌륭히 꽃피울 농장의 래일을 그려보았다.

공민적의무를 다하던 나날 그는 높은 급의 국가수훈의 영예를 지니였으며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 대표로 참가하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였다.

현화성동무는 오늘도 당의 새로운 사회주의농촌건설구상을 받들고 한알의 낟알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우리 농촌에 언제나 웃음과 랑만, 화목한 정이 넘치게 하기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고있다.

모든 농민들이 현화성동무처럼 당의 걱정을 자기의 걱정으로 받아들이고 농사군의 본분을 다해나갈 때 우리 당의 사회주의농촌건설구상은 가까운 앞날에 빛나는 현실로 펼쳐지게 될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