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 불길속에서 창조된 군민일치의 전통 세대와 년대를 넘어 더욱 굳건히 이어진다

2만여통의 위문편지에 깃든 사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인민군대가 어렵고 중대한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물심량면으로 원호하며 한전호에서 싸워왔다.》

보통강구역 붉은거리2동 5인민반에는 오랜 세월 원군길을 걷고있는 특류영예군인 신철룡동무와 그의 안해인 남순복동무가 있다.

사실 남의 도움이 없이는 순간도 움직일수 없는 신철룡동무와 하반신마비가 된 남편을 연약한 몸에 업고 무거운 걸음을 떼야 하는 남순복동무가 부디 원군길에 나서지 않는다고 하여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하다면 그들은 무엇으로 하여 그렇듯 수십년세월 변함없이 그 길을 걷고있는가.

그에 대해 알고싶어 우리는 그들이 사는 집을 찾았다.우리가 들어서니 방안에는 수백통에 달하는 편지가 무드기 쌓여있었다.

신철룡동무는 4월 25일은 우리 가정에 있어서 잊지 못할 날이라고 하면서 한장의 사진을 내보이는것이였다.그것이 바로 이들부부가 찍은 결혼사진이였다.

지금으로부터 26년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강반석혁명학원 졸업생인 남순복동무가 신철룡동무와 일생을 같이할것을 약속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들에게 사랑의 결혼선물을 보내주시였다.영광의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 고마움의 큰절을 올리며 그들은 심장으로 맹세다지였다.

조국을 받드는 길에서 영예군인답게, 혁명가유자녀답게 한생을 빛나게 살겠다고.

그들은 결혼식날 자기들의 지성이 어린 물자들을 인민군군인들에게 보내주었고 이때부터 가정에는 원군일지가 생겨나게 되였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어느날 사회주의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을 찾아가 그들의 땀배인 군복을 빨려고 하던 남순복동무는 주머니마다에서 편지들을 발견하게 되였다.겉봉을 보니 고향에서 보내온 편지였다.순간 그의 눈앞에는 고향사람들의 절절한 당부가 담긴 편지들을 볼 때면 아무리 밤을 패도 피곤한줄 모르겠다고 하던 군인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저도모르게 생각이 깊어졌다.

(이제부터 우리들의 마음을 위문편지에 담자.그래서 군인들이 편지들을 보며 조국의 당부, 인민의 당부를 항상 간직하고 살게 하자.)

그때부터 그들부부는 원호물자를 마련하는것과 함께 위문편지를 쓰느라 자정이 넘도록 잠들줄 몰랐다.그들은 보람찬 군사복무시절을 충성과 애국으로 빛내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영원히 혁명의 꽃을 피워갈 맹세를 담은 시들을 편지에 담기로 하였다.

쉼없이 펜을 놀리느라 손가락에 온 강직을 푸느라고 하루에도 몇번이나 애썼는지 모른다.그러나 자기들이 바치는 지성이 그대로 조국수호의 총검을 벼리는 숫돌이 되고 인민의 행복을 꽃피우는 밑거름이 된다면 더 바랄것이 없다는것이 그들부부의 진정이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제일 행복한 순간은 자기들이 써보낸 편지를 보며 새힘을 가다듬는 군인들을 볼 때였고 당에 기쁨을 드렸다는 회답편지를 받아안을 때였다.

그들의 모습에서 참된 애국이란 무엇인가를 가슴깊이 새겨안게 된 강반석혁명학원 졸업생들과 평양콤퓨터기술대학 콤퓨터학원 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몇해전부터 그들과 함께 위문편지를 쓰고있다.

이렇게 쓴 편지가 지금까지 2만여통에 달한다고 한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