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겪는 조국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수 있는가

서성구역 중신동 35인민반에서 살고있는 곽현, 곽현옥동무들에 대한 이야기

 

새날은 소리없이 밝아왔다.

서성구역 중신동 35인민반에서 살고있는 농업연구원 부원 곽현동무는 잠을 깨자마자 서둘러 손전화기를 켜고 《로동신문》부터 펼쳤다.조국이 엄혹한 시련을 겪고있는 이때 무엇보다도 기다려지는 소식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혁명활동소식이였던것이다.

5월 14일부 《로동신문》의 글줄이 눈앞에 안겨오는 순간 그는 갑자기 목이 꽉 메여올랐다.벌써 며칠째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정치국회의를 사회하시고 국가비상방역사령부를 방문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혁명활동소식으로 격정을 금치 못하고있는데 그날 새벽 또다시 그이께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협의회를 지도하신 소식이 실렸던것이다.

그는 다급히 아침식사준비를 하고있는 녀동생을 찾았다.그리고는 빨리 신문을 보라고 알려주었다.

글줄을 더듬어갈수록 그들오누이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하루빨리 온 나라 가정에 평온과 웃음이 다시 찾아들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가정에서 준비한 상비약품들을 본부당위원회에 바친다고 하시면서 어렵고 힘든 세대에 보내달라고 제의하시였다는 글줄이 자자구구 그들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었던것이다.

세상에 그 어느 령도자가 인민을 위해 가정에서 써야 할 상비약품까지 바친적 있었던가.동서고금 그 어느 력사에 그런 사랑을 받은 인민이 있었던가.

생각을 가지쳐갈수록 곽현동무의 심장은 세차게 높뛰기 시작하였다.오직 하나의 물음만이 그의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시련을 겪는 조국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수 있는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라는 물음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는 서둘러 온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무엇을 할수 있을것인가.나는 과연 무엇으로 기여할것인가.

마음은 앞섰지만 선뜻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안고 여기저기 살펴보던 곽현동무의 눈에 몇해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사진이 안겨왔다.

(만약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가.)

평소에 나라를 먼저 생각할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입버릇처럼 외우던 어머니였다.

그의 어머니의 한생은 교단에서 흘러갔다.후대교육사업으로 늘 바쁘게 보내는 어머니여서 그들오누이는 어릴적부터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별로 받아보지 못하였다.그래서 철없던 시절 곽현동무는 구역적인 학과경연을 앞두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은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학교적으로도 공부를 잘 배워주기로 소문난 교원인데 이 아들의 학습지도는 한번도 안해주나요?》

그때 어머니는 빙그레 웃음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 현이야 시험때마다 늘 앞자리를 차지하는데 그래서 이 어머니는 마음을 놓는다.그리고 어머니에게는 현이처럼 귀중한 학생이 수십명이나 된단다.》

그 시절에는 어머니의 말속에 담겨진 깊은 뜻을 미처 다 헤아릴수 없었다.하지만 차츰 자라며 자기가 키운 제자들이 조국을 위해 한몫 단단히 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더없이 기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생각이 많아졌다.

나라의 은덕으로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대학을 거쳐 농업연구원에서 일하게 되였을 때 어머니가 해준 말도 잊혀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너를 위해 별로 품을 바치지 못했는데… 평생 나라의 은덕을 잊지 말아라.》

그는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의 이야기를 심장깊이 새겨안고 사회생활의 걸음걸음 보답의 한길만을 걸어왔다.그 나날 그는 조국이 맡겨준 혁명과업수행에서 언제나 높은 책임성과 성실성을 발휘하였으며 사회와 집단을 위한 헌신으로 하여 당에 기쁨을 드리기도 하였다.

이윽토록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녀동생과 마주앉았다.

《우리 가정의 모든것을 다 바쳐서라도 나라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내 생각은 집에서 저축한 자금을 나라에 바치자는거다.》

오빠의 이야기를 들은 곽현옥동무는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집안의 크고작은 모든 일을 돌봐야 하는 가정의 주부인 그의 뇌리에는 중병을 앓고있는 아버지생각, 집에도 쌀이 몇kg밖에 남지 않았다는 걱정이 더욱 앞섰던것이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동생의 모습에서 속마음을 읽은듯 곽현동무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진중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너도 당원이고 나도 당원이다.그리고 너도나도 이 땅에 태를 묻고 자란 이 나라의 공민이 아니냐.지금이야말로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깡그리 바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한생 성실하게 일해온 아버지, 어머니처럼 말이다.》

오빠의 이야기를 듣는 녀동생의 뇌리에는 제대군관인 아버지가 구역안의 어느한 동에서 사무장으로 일할 때 있은 일들이 떠올랐다.

과묵하면서도 고지식한 아버지는 그저 일밖에 몰랐다.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주민지구를 드바삐 돌면서 생활에서 불편한 점은 없는가, 걸린 문제는 무엇인가 하는것을 일일이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 밤낮없이 뛰여다녔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집안일에는 무관심하였다.하여 언제인가 곽현옥동무가 아버지에게 자그마한 두칸짜리 집에서 여섯식구가 불편하게 사는데 동사무장이면 얼마든지 큰집을 배정받을수 있지 않겠는가고 물은적 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노여움이 실린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동사무장은 인민들의 생활을 돌봐주기 위해 필요한 직무이지 제 집을 해결받기 위해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고.

아버지는 오래동안 그렇듯 성실한 마음가짐으로 동사무장사업을 해왔다.그런데 일밖에 모른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일흔번째 생일을 맞을 때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줄이야.10년전에 사업을 그만둔 자기 아버지를 잊지 못해 함께 일하던 당시의 인민반장들과 주민들이 수많이 찾아왔던것이다.

온 하루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속에 아버지의 생일을 즐겁게 쇤 그날 저녁 곽현옥동무의 머리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떠날줄 몰랐다.사회와 집단을 위한 헌신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게 된다는것이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의 머리속에는 불쑥 입당할 때 다진 맹세가 떠올랐다.

평양대극장의 평범한 종업원인 자기를, 굳이 한 일이 있다면 극장을 정성다해 관리한것밖에 없는 자기에게 값높은 정치적생명을 안겨준 당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겠다고 눈물속에 맹세다지지 않았던가.

추억을 더듬어갈수록 나라가 겪는 어려움앞에서 나는 자기 가정부터 먼저 생각하였구나 하는 자책으로 곽현옥동무는 얼굴이 붉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렇게 되여 그들오누이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협의회를 지도하신 소식이 신문에 실린 5월 14일 아침 온 가정의 마음을 담아 마련한 적지 않은 자금을 당조직에 바치게 되였다.

이들의 소행은 결코 남들보다 재산이 많거나 당과 국가의 사랑과 혜택을 특별히 더 받아서 발휘한것이 아니였다.그들은 이 땅 그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고 이야기도 나눌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공민들이다.

하지만 나보다 우리를, 자기 가정보다 먼저 나라일부터 생각할줄 아는 그 고결한 량심과 의리는 결코 평범한것이 아니였기에 그들은 그렇듯 훌륭한 행동을 할수 있은것이였다.

하기에 그들의 소행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돌이켜보고있다.

나는 무엇을 먼저 생각하고있는가, 나라가 어려움을 겪는 이 시각 제살궁리부터 하지 않았는가, 어려운 속에서도 인민을 위해 천만금도 아끼지 않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어깨우에 실린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애쓴적은 있는가고.

물론 그들오누이가 발휘한 소행은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끊임없이 전해지는 수많은 미담들에 비해볼 때 그리 특별한것은 아니라고 할수 있다.그러나 나라가 시련을 겪는 이 엄혹한 시기 키워주고 내세워준 당과 조국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수 있는가 하는 생각으로 가슴을 끓이는 그 순결무구한 애국충정의 마음이야말로 천만금보다도 귀하고 값진것이 아닐수 없다.

이런 아름다운 인간들을 이 땅 어디 가나 만나볼수 있기에 오늘의 비상방역대전에서의 승리는 시시각각 우리의 눈앞에 다가오고있는것이다.

글 본사기자 최영철

사진 리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