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의 삶의 거울, 귀중한 본보기

그들은 동지를 위해 피와 살, 목숨도 서슴없이 바쳤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화선군의들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승세대의 위대한 영웅정신은 길이 빛날것이며 대를 이어 굳건히 계승될것입니다.》

건국이래의 대동란이라고 할수 있는 준엄한 시련의 나날이 흐르고있는 오늘 조선인민군 군의부문 전투원들은 악성전염병으로부터 조국의 안전, 인민의 생명을 굳건히 지키기 위한 방역대전의 제일선을 믿음직하게 지켜가고있다.

당중앙의 파견원들답게 담당초소를 화선의 전호가로 여기고 낮과 밤이 따로 없는 방역전투를 벌리고있는 그들의 모습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에게 무한히 충직했던 화선군의들의 영웅적위훈을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게 하고있다.

조국이 가장 엄혹한 시련을 겪고있던 그때 화선군의들은 불타는 고지들과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서, 야전병원들에서 귀중한 전우들을 위해 자기의 피와 살 지어는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바쳐싸웠다.

여기에 전화의 나날 화선군의들이 지녔던 무비의 희생성과 불타는 전우애가 어떤것이였는가를 보여주는 한 녀성준의에 대한 자료가 있다.

《적땅크는 땅을 물어뜯으며 악착스레 덤벼들고있었다.허나 리흥룡의 모든 정신은 오직 주사기에만 가있었다.벌써 그는 두 주사기째 자기의 피를 뽑아 통신병에게 수혈을 해주고있었다.

우릉우릉 땅크소리는 점점 더 가까와졌다.주변에서는 총알과 포탄이 콩볶듯 튀였다.하지만 수혈속도는 당길수 없었다.멈출수는 더욱 없었다.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수혈을 마치고 부상병을 경사지로 떠미는 순간이였다.리흥룡은 선뜩함을 느꼈다.땅크의 포탄파편이 오른쪽다리를 치고나갔던것이다.

그는 의식을 잃었다.

하루가 지났는지 이틀이 지났는지.

리흥룡은 자기가 죽은것같기도 하고 산것같기도 하였다.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피가 자연지혈된 상태였다.…

배낭 두개와 구급가방, 보병총 두자루에 권총까지 차고 남보다 허우대가 큰 전사를 업고나니 자그마한 처녀는 산같은 짐에 눌리워 보이지도 않았다.하지만 처녀는 이를 악물고 발걸음을 떼였다.산길은 점점 더 가파로와졌다.

흥룡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모아 네발걸음으로 또 그다음은 온몸으로 부상병과 함께 수십리 적진을 헤쳐왔다.부상병을 업고 아군지역에 들어서자 그는 쓰러졌다.…

전투명령을 받고 적진을 향해 나가던 정찰병들이 실신해 쓰러진 한 녀성군관을 둘러쌌다.

〈전사했다던 3련대 준의요!〉

흥룡의 품속에서 조선로동당원증을 펼쳐본 누군가가 웨쳤다.

부상병 184명을 혼자 맡아 완치시켜 그들모두를 1211고지로 보내준 소문난 녀준의, 그는 제45보병사단 3련대의 대대장들이 저마끔 욕심내는 보배였다.…

얼마후 어느한 전상자병원에는 쌍지팽이를 짚은 녀준의가 나타났다.치료를 받는 몸으로 스스로 한개 병동의 환자들을 맡아 치료하는 그는 흥룡이였다.》

이처럼 화선군의들은 생사를 판가리하는 혈전장마다에서 헤아릴수 없는 시련과 난관을 용감히 이겨내며 부상병들에 대한 치료전투를 벌렸다.

병사에게는 간혹 쉴참이 있을수 있어도 그들에게는 휴식시간이 있을수 없었다.깊은 밤에도, 이른새벽에도 그들의 눈은 언제나 잠들줄 몰랐다.단 한명의 병사가 남아 싸운다고 해도 거기에는 군의가 있어야 한다는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전투때에는 권총을 들고 싸우다가도 전투가 끝나면 환자들을 돌보고 부상병들을 후송하였다.줄폭탄이 쏟아지는 속에서도 수술장을 떠나지 않았고 자기의 피와 살을 전우들을 위해 서슴없이 바쳤다.

당시 야전병원을 찾았던 한 녀성일군은 자기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녀성들은 군복을 입고 무장을 하고 이렇게 최전선에서 포탄알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연속을 불사조같이 뛰여다니며 부상병처치와 운반에 맹렬한 활동을 하고있다.나어린 이 간호원들이 어데서 솟은 힘인지 부상병들을 업고 수십리의 험한 산고지를 뛰여다닌다.이것은 오로지 3년동안 포화속에서 단련된 투쟁의 결과인것이다.얼마전만 하더라도 1211고지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다 부상을 당하여 후송해온 리기만동무에게 군의 리경자동무는 11회나 걸쳐 고귀한 자기 피를 2 400g이나 뽑아 수혈하였다.또 간호원은 영웅적인 수송전에서 화상을 당한 운전수에게 자기 피 200g을 수혈하고 련일 밤새워가면서 간호하였다.》

전시에는 환자치료에 필요한 모든것이 부족했다.하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들을 무조건 살려내야 한다는 결사의 각오만은 화선군의들의 심장에 차고넘쳤다.

1951년 1월 23일부 《로동신문》에는 《눈내리는 어느날 저녁》이라는 제목으로 한 군의의 수기가 실렸다.

《흰눈이 소리없이 내리는 어느날 저녁이였다.…

전사의 체온을 측정한 체온계를 보니 39℃를 가리키고있었다.나는 곧 주사를 놓을 준비를 하였다.그런데 증류수가 없어 주사를 실시할수 없었다.…

나는 생각다 못해 곧 불을 피우고 물을 끓여 증류수를 받아쓰기로 결심했다.몇분 되지 않아 소독기덮개에는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그후 그는 얼마 안되여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고 다시 전선으로 나아갔다.나는 전쟁 6개월간에 벌써 100여명의 부상병을 이렇게 치료하여 전선에 내보냈다.내가 책임지고 치료하던 부상병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전선에로 재출전하는것을 볼 때마다 무한한 영예감과 기쁨을 금할수 없다.》

이렇듯 위대한 전승사의 갈피에는 화선군의들의 투쟁위훈이 금별처럼 빛나고있다.

이 땅에서 전쟁의 불구름이 가셔진 때로부터 근 70년의 세월이 흘렀다.그러나 우리 혁명의 2세인 전승세대가 침략자들을 격멸소탕하기 위한 성전에서 발휘한 위대한 영웅정신, 당대의 제일 엄청난 도전과 위험을 맞받아 불가항력의 강용한 정신적힘을 분출시킨 위대한 승리의 전통은 오늘도 우리 후대들의 가슴속에 생생히 살아 높뛰고있다.

우리 인민이 전승세대의 영웅적위훈을 잊지 않고 오늘도 길이 추억하는것은 조국이 가장 준엄한 시련을 겪고있던 때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싸운 그들의 불멸의 군상이 우리 삶의 영원한 거울, 귀중한 본보기로 되기때문이다.

우리의 보건일군들이 전화의 화선군의들이 지녔던 숭고한 정신세계와 투쟁기풍을 따라배워 방역대전의 하루하루를 수령에 대한 불같은 충성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헌신으로 수놓아갈 때 오늘의 엄혹한 국난은 반드시 가셔지고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서는 보다 큰 성과가 이룩되게 될것이다.

본사기자 리남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