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민반장》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는 인민이 사회의 주인으로 되고 사회의 모든것이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참다운 인민의 나라입니다.》

국가방역체계를 최대비상방역체계로 이행한 때로부터 인민들의 편의보장을 위해 누구보다 드바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은 누구들인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인민반장》이라고 뜨거움에 젖어 말한다.

주민들의 생활단위를 성실히 지켜가는 인민반장들, 그들의 하루는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가.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에서 주민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새기는가.

* *

이즈음 어디를 가나 주민들의 건강과 편의보장을 위해 바삐 뛰여다니는 인민반장들의 모습을 볼수 있다.이른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인민반원들에게 의약품을 보장해주고 부식물을 공급해주며 수많은 세대들의 잡다한 가정사를 돌보느라 그야말로 눈코뜰새 없는 사람들이 바로 인민반장들이다.

만경대구역 금성2동 11인민반 반장 방혜순동무의 하루일과도 그렇게 흐른다.

한가정의 주부인 그는 이른새벽에 일어나 조용히 집문을 나선다.

인민반의 30여세대를 다 돌아보면서 밤새 열이 난 사람은 없는가, 식량과 기초식품, 부식물은 떨어지지 않았는가, 무슨 약이 필요한가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봐야 하기때문이다.

그가 인민반의 수백개나 되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매 가정을 돌아보는데 거의 한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그는 하루에도 몇번씩 아빠트층계를 오르내린다.

주민들이 그러다가 인민반장이 쓰러지겠다고, 쉬염쉬염 하라고 말할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하군 한다.

나야 인민반장이 아닌가고, 내가 걷는 걸음이 많아야 인민반에 웃음꽃이 피고 인민들을 위한 고마운 사회주의시책이 더 빨리 가닿는다고.

이것은 신의주시 신의주동 35인민반 반장 윤미화동무의 심정이기도 하다.

사실 그는 다른 사람의 간호를 받아야 할 몸이다.

이런 그가 자기 인민반의 주민들은 물론 뜻밖의 사정으로 더 맡아안은 두개 인민반 주민들의 생활까지 책임지고 뛰여다니고있으니 그 수고를 더 말해 무엇하랴.

아침시간에 인민반세대들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요구를 수첩에 적어넣고 약국을 비롯하여 여러곳을 돌면서 주민들이 요구한 물품들을 마련하느라면 어느덧 중낮이 되여온다.

매일이다싶이 연약한 어깨에 무거운 짐을 메고 땀을 흘리며 매 집문을 두드리는 그를 두고 주민들은 《우리 인민반장》이라고 정답게 부르고있다.

며칠전 해주시 산성동의 어느한 인민반에서 살고있는 로인이 본사편집국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 역시 자기 인민반장을 널리 소개해달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날 로인은 당황함을 금할수 없었다.갑자기 안해가 고열로 몸져누웠는데 집에는 상비약품들이 하나도 없었던것이다.그때 로인의 뇌리에 늘 자기들을 친자식의 심정으로 돌봐주군 하는 인민반장의 모습이 떠올랐다.하지만 인민반장을 찾아가려던 그는 그자리에 도로 주저앉고말았다.자정이 훨씬 지났던것이였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로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있는데 글쎄 인민반장이 우리 집엘 찾아오지 않았겠습니까.밤늦게까지 전등불이 켜있어 혹시나 해서 들렸는데 참 다행이라고 하는 그를 보느라니 절로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윽고 로인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치료를 하면 된다고 다정히 이른 인민반장은 어디론가 급히 달려갔다.잠시후 그는 약봉투를 안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섰다.그 약이 인민반장의 집에 있던 상비약의 전부였다는것을 로인은 후날에야 알게 되였다.

그날 인민반장은 로인의 집에서 호담당의사를 도와 환자를 간호하느라 한밤을 꼬박 지새웠다.

어디 그뿐인가.

병을 앓고난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는 입맛을 돋구는데는 뭐니뭐니해도 김치가 제일이라며 남새도 안겨주고 또 생활이 어려운 가정을 찾아가서는 자기 가정의 얼마 안되는 식량까지 덜어주며 오늘의 난관을 함께 이겨내자고 힘을 주는 인민반장들의 모습을 어디서나 볼수 있다.

그런 인민반장을 누구인들 《우리 인민반장》이라고 존경하며 따르지 않겠는가.

어려운 때일수록 인민반원들의 생활을 더 따뜻이 돌봐주는 인민반장에 대한 이야기는 룡성구역의 한 호담당의사에게도 간직되여있다.

담당지역 주민들에 대한 검병검진에서 높은 책임성과 헌신성을 발휘해가고있는 그에게는 어린 자식이 있다.

국가방역사업이 최대비상방역체계로 이행된 첫 시기 그는 자식에 대한 걱정이 컸다고 한다.그의 남편 역시 의료일군이였던것이다.그가 딸을 두고 마음쓰고있던 그때 인민반장이 그 사실을 알고 달려왔다.인민반장은 호담당의사의 딸을 자기가 돌보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애를 내가 손녀삼아 돌보겠으니 마음을 놓고 치료사업에만 전심하세요.우리야 모두가 한식솔이 아닌가요.》

호담당의사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인민반장할머니의 집에서 잘 지내고있다는 딸의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고, 평범한 날에는 너무도 례사롭게 외우던 《우리 인민반장》이라는 그 부름의 무게에 대해 깊이 느끼게 된다고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

우리 사회에서 인민반은 한가정이며 여기서 맏며느리구실을 하는 사람이 바로 인민반장이다.

당과 조국이 맡겨준 무거운 임무를 언제나 잊지 않고 인민반의 모든 성원들을 한식솔처럼 여기고 살뜰히 돌봐주고있는 인민반장들은 방역대전이 벌어지고있는 온 나라 방방곡곡 그 어디에나 있다.

신포시 풍어동 66인민반 반장에 대한 주민들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뜨거운것인가.

온종일 마을의 모든 세대들을 돌보느라면 그는 밤늦게야 자기 집에 들어선다.그렇다고 하여 인민반장의 일과가 끝나는것이 아니다.

며칠전 새벽 3시를 가까이할무렵 그의 집에서 전화종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인민반의 어느한 세대주였는데 안해가 몹시 앓고있다는것이였다.

인민반장은 그길로 호담당의사와 련계를 가지고 약국으로 뛰여갔다.필요한 대책을 세웠을 때에는 동쪽하늘이 희붐히 밝아올무렵이였다.

그길로 그는 또다시 인민반의 한 주민의 집문을 두드렸다.

《아픈데는 없습니까?생활에서 불편한것은 무엇이고 필요한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민반장들의 하루일과는 이렇게 흘러간다.한 가정을 돌보기도 힘에 부친 지금 인민반의 대식솔을 맡아안고 사랑과 정을 다해 돌보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인민반장들이다.

우리 여기에 다 전하지 못한다.

인민반원들의 병치료에 어느한 약초가 좋다는것을 알고는 약초를 마련하고 정성껏 달여 안겨준 순천시 오사동의 한 인민반장에 대한 이야기며 인민반원들의 식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마음 안고 부식물을 세대들에 나누어준 신평군 읍의 한 인민반장에 대한 이야기, 자식의 결혼식에 쓰려고 저축했던 자금으로 식량을 마련하여 어려운 세대들에 안겨준 대홍단군 신흥리의 한 인민반장에 대한 이야기…

때로는 의료일군이 되여 종일토록 인민반원들을 찾아다니며 약품의 사용방법과 민간료법, 고려치료방법 등을 해설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다심한 어머니, 인민반의 주부가 되여 온 하루 남새며 기초식품들을 이고지고 다니며 세대들에 공급해주는 인민반장들의 그 수고를 우리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여기에 청진시 부윤구역 고성2동의 한 인민반장이 터놓은 진정의 목소리가 있다.

《왜 바쁘지 않겠습니까.매일, 매 시각 당과 국가의 인민적시책이 우리의 생활속에 따스히 스며들고있지 않습니까.그 사랑이 주민들에게 더 빨리 가닿도록 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 인민반장들인것입니다.》

그렇다.

당과 국가의 시책이 집집마다에 더 빨리, 더 정확히 가닿게 하기 위해 우리 인민반장들은 지금 누구나 드바쁘다.

인민들은 어려울수록 더욱 뚜렷이 부각되는 인민반장들의 역할에서 사회주의대가정의 모습을 보고 고마운 혜택을 가슴깊이 새겨안는다.

본사기자 신철

 

 

-만경대구역 금성2동 11인민반에서-

본사기자 찍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