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센 신념과 높은 실력은 단위발전의 힘있는 견인력

청진제강소 초급당비서 김영규동무의 사업에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의 구상에 자기의 리상과 포부를 따라세우며 끊임없이 실력을 쌓고 시야를 넓혀 모든 사업을 당이 바라는 높이에서 완전무결하게 해제끼는 능숙한 조직자, 완강한 실천가가 되여야 합니다.》

함탄법에 의한 산화배소구단광생산방법과 100% 삼화철에 의한 강철생산방법을 우리 식으로 확립한 청진제강소는 지금 최대비상방역상황속에서도 튼튼한 생산토대에 의거하여 발전의 상승궤도를 따라 힘있게 전진하고있다.

이런 성과는 주체적신념과 높은 실력을 지니고 단위발전을 힘있게 견인해나가고있는 이곳 초급당비서 김영규동무의 주도적역할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추호도 동요를 모르는 억센 신념의 기둥

 

김영규동무가 초급당비서사업을 시작할 때 제강소의 실태는 매우 어려웠다.구단광을 회전배소로에서 생산하고있었는데 다른 나라의 설계로 세운 로이다나니 생산공정이 복잡하고 전기와 석탄소비량이 많았으며 설비에 고장이 생기면 자재와 부분품을 수입하여야 하였다.

하여 구단광을 어떤 새로운 방법으로 생산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론의되고있었다.석탄가스화방법을 택할것인가 아니면 가스대신에 석탄을 구단광에 포함시키고 연소과정에 공기를 넣어주는 방법을 택할것인가.

전자는 많은 자금을 들여 가스발생로를 비롯한 설비들을 다른 나라에서 사오는 쉬운 길이라면 후자는 복잡한 기술적문제를 해결하고 수직로도 자체로 건설해야 하는 어려운 길이였다.

김영규동무는 매듭을 짓지 못한채 계속되는 론쟁을 지켜보고만 있을수 없었다.확고한 정책적립장에 서서 과학기술발전을 주도하여야 할 임무가 자기에게 지워져있다는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그는 제강소에 깃든 당의 령도업적에 대한 학습부터 진행하였다.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사람은 주체철을 하여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와 청진제강소 당조직에서는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는데 중심을 두고 당사업을 하여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그의 심장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며칠후에 진행된 기술협의회에 참가한 김영규동무는 후자를 주장하였다.자금을 달라고 나라에 손을 내미는 길, 다른 나라의 기술에 종속되는 길을 절대로 용납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는 제강소의 전반사업을 이끌어나가는 속에서도 수직로에 의한 함탄법실현을 지지하는 기술자들과 함께 하나하나 기술준비를 하였다.

바람유도벽에 의한 열풍회수체계를 비롯한 기발한 착상들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그는 날이 밝도록 책상에 무드기 쌓아놓은 기술문헌과 참고서들에 묻혀있기도 하였고 로구조를 합리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수직로를 새로 세우는 단위들을 찾기도 하였다.찬바람 몰아치는 겨울날 수직로상태를 료해하기 위해 기중기팔에 매달려 로안에 들어가 바줄을 타고다닌적도 있었다.

판가름의 날이 왔다.현장기술자들만이 아니라 대학과 연구소의 관록있는 과학자들도 참가한 협의회에서는 련속장입, 련속배출할수 있게 설계한 초급당비서의 안이 질적지표는 그만두고라도 생산량에 있어서도 2배이상 우월하다는것이 확증되였다.

하지만 당정책의 과학성을 실천으로 증명하기 위한 탐구의 길은 시작에 불과하였다.로력과 자재, 자금이 긴장한 조건에서 경험도 없이 수직로를 일떠세운다는것은 쉽지 않았던것이다.

김영규동무는 당정책대로만 하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신심을 가지고 기술자들의 정신력을 불러일으켰다.마침내 제강소에서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구단광생산방법을 확립하고 주체철생산의 튼튼한 담보를 마련하였다.

그 과정은 곧 당정책의 진리성이 일군들과 로동자들의 가슴속에 억척의 신념으로 간직된 나날이였다.

 

과학적주견과 배짱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기술자, 기능공들과의 사업을 잘해나가는데서 당일군의 확고한 과학적주견과 배짱은 중요한 작용을 한다.그러면 그것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구단광생산이 긴장하게 벌어지던 여러해전 어느날 무연탄이 떨어지는 정황이 조성되였다.당시 제강소에는 북부지구의 갈탄이 일정하게 있었다.

김영규동무의 눈길은 그 갈탄무지에서 멎었다.

대담하게 구단광생산에 갈탄을 써보자.

이렇게 되여 갈탄을 넣어 만든 원료를 수직로에 장입하였는데 불이 죽는 현상이 나타났다.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구단광생산에 갈탄을 리용하는것은 시기상조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영규동무는 물러서지 않았다.

북부지구의 갈탄을 리용하여 주체철을 생산하라는것은 당의 요구였다.

김영규동무는 로의 운영상태를 깊이 관찰하면서 사색을 이어나갔다.그 과정에 콩사탕을 만들듯이 알로 된 원료의 겉면에 미분한 갈탄을 입힐 착상을 하였다.

이 방법의 효과성은 즉시에 나타났다.로의 불이 죽는 현상이 없어졌을뿐 아니라 작업조건에 맞게 생산을 마음대로 조절할수 있게 되였다.

김영규동무의 사무실과 집에는 야금공학분야의 기술도서들이 쌓여있다.수십년세월 그는 하루도 그 책들을 펼치지 않은 날이 없고 순간도 사색을 멈춘적이 없었다.주체철의 운명을 당앞에 전적으로 책임졌다는 비상한 자각은 그를 탐구의 높은 령마루로 끊임없이 떠밀어준 원동력이였다.

제강소에서 전기로에 삼화철을 련속장입하여 저탄소강을 생산하기 위한 연구사업에 착수하였을 때였다.적지 않은 일군들이 다른 단위에서 그 방법을 시도하였다가 실패만 거듭하고 나중에는 포기하였다고 하면서 도리머리를 저었다.

이때 김영규동무는 주체적인 철생산방법에 토대하여 강철공업을 발전시킬데 대한것은 우리 당정책이라고 하면서 일군들이 배심있게 일판을 벌려나가도록 떠밀어주었다.

그무렵 삼화철을 로에 장입하니 불꽃이 튀여나면서 로의 온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용해공들은 있을수 있는 현상으로 여기였지만 김영규동무는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그는 로에서 나오는 페열을 리용하여 삼화철을 가열시킨 다음 로에 장입할데 대한 안을 내놓았다.그것은 강질을 개선하면서도 용해속도를 높여 전력소비기준을 낮출수 있는 기발한 착상이였다.

기술자들은 무릎을 쳤다.

그는 며칠밤을 패며 전기로에서의 삼화철련속장입에 의한 저탄소강생산기술지도서를 작성하여 기술자들을 놀래운적도 있었다.

김영규동무의 높은 실력에는 주체철생산의 운명이 자기의 어깨에 지워져있다는 비상한 책임감과 어떤 일이 있어도 강철공업의 탄탄대로를 닦아야 한다는 열렬한 애국심이 깔려있다.

얼마전에 진행된 김영규동무의 석사학위론문에 대한 변론에서 그의 해박한 실력은 오랜 기간 구단광을 연구해온 기술자들은 물론 야금공업부문의 권위있는 과학자들의 한결같은 인정을 받았다.

김영규동무의 사업은 당일군들이 투철한 신념과 높은 실력을 지니고 대중의 정신력을 앙양시킬 때 단위발전을 힘있게 주도해나갈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승표

 

 

김영규동무(왼쪽에서 두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