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농업정책관철의 길에 한생을 바쳐가는 미더운 과학자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농업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은 과학기술의 알찬 열매로 풍년로적가리를 높이 쌓을 애국의 마음을 안고 농업생산에서 절박하게 나서는 문제들을 종자로 틀어쥐고 연구사업을 목적지향성있게, 끝장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내밀어야 합니다.》

현시대는 과학농사의 시대이며 농업생산은 자연기후조건이 아니라 농업과학기술에 의하여 담보된다.이런 숭고한 자각과 애국의 마음을 안고 당의 농업정책관철을 위하여, 나라의 농업생산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한생을 묵묵히 바쳐가고있는 농업연구원의 과학자들속에는 농업화학화연구소 소장 김치영선생과 농업정보연구소 실장 김광연동무도 있다.

 

30년세월 변함없는 한모습-《젊은 소장》

 

농업화학화연구소 소장 김치영선생은 농업과학부문에 널리 알려진 권위있는 원사 교수 박사이며 인민과학자이다.

반세기가 넘는 오랜 기간 농촌경리의 화학화실현을 위한 과학탐구의 길을 묵묵히 이어가는 그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높은 실력가, 완강한 실천가라고 감탄하군 한다.리과대학 화학부를 졸업하고 황해제철련합기업소에서 3대혁명소조원으로 사업하던 20대에는 공업부산물로부터 새로운 식물성장촉진제를 발명하고 공업화할수 있게 함으로써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고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원으로 성장한 그였다.농업연구원에서 연구사업을 시작한 30대에는 현존공업토대와 우리의 원료, 우리의 촉매에 의거하여 다른 나라의것보다 좋은 새로운 침투이행성농약의 공업적생산방법을 완성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여러차례나 기쁨을 드리고 농약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였다.

당의 신임에 의하여 김치영선생은 41살에 농업화학화연구소 소장이 되였다.그때로부터 얼마 안되던 주체81(1992)년 7월 그는 뜻밖에도 연구소의 한 실장과 함께 경제부문 책임일군들의 중요한 협의회를 지도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40대 초엽의 한창나이였던 김치영선생에게 소장이 젊은 동무라고 정깊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을 많이 하라고 그의 앞날을 뜨겁게 축복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하늘같은 믿음과 기대는 김치영선생이 수십년세월 보람찬 농업과학탐구의 길에서 언제나 지칠줄 모르고 슬기와 지혜와 열정을 발휘하게 한 원천으로 되였다.

연구소의 1번수가 되여 과학자들을 이끌어나가는 나날에 그는 고농도린세균비료, 다원소광물질비료(카리티탄비료) 등의 공업적인 생산기술을 확립하였다.최근년간에만도 첨단미량농약제품들의 개발과 현대적인 생산공정확립, 현부제형강냉이종자피복제와 벼모판종합영양제, 벼종자영양피복제의 개발도입 등 여러건의 국가적의의가 큰 과학기술성과를 이룩하였다.그리고 수십건의 가치있는 농업화학제품들을 연구개발하고 생산공정을 확립하여 생산정상화와 도입에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함으로써 국가에 막대한 리익을 주고 농업생산의 과학화, 공업화실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연구소는 두차례에 걸쳐 2.16과학기술상을 수여받았다.

김치영선생은 높은 실력과 학적권위로 공화국의 대외적권위를 높이는데 이바지하였으며 20여건의 국보적가치가 있는 단행본을 집필하고 10명의 박사를 비롯한 수십명의 학위학직소유자를 양성하였다.

어머니당에서는 자나깨나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안겨주신 믿음을 간직하고 청춘의 활력으로 변함없는 애국충정의 길, 과학탐구의 생눈길을 줄기차게 이어가는 김치영선생을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비롯한 중요대회들에 대표로 불러주었으며 지난해에는 일흔번째 생일을 맞는 그에게 은정어린 생일상을 보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정담아 불러주신 《젊은 소장》이라는 값높은 영예를 안고 김치영선생은 오늘도 로당익장하여 나라의 농업과학을 세계적수준에로 비약시키기 위한 과학연구사업에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고있다.

 

농업정보화에 이바지할 리상을 안고

 

농업정보연구소 실장 부교수 석사 김광연동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식가, 정열가로 불리우고있다.

함경남도 함주군의 평범한 농장원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평양제1중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종합대학 평양농업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김광연동무가 농업연구원에서 과학탐구의 첫걸음을 뗀것은 조국이 준엄한 시련을 겪던 고난의 시기였다.그처럼 엄혹한 시기에 농업과학자가 된 그의 가슴속에는 청춘의 푸른 꿈과 리상을 고스란히 다 바쳐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지키고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문제로 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어깨에 실린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신념의 맹세가 굳게 간직되였다.

이런 그였기에 나라의 농업발전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종합연구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농업연구원적으로 20대, 30대의 젊고 재능있는 청년과학자들을 선발하여 조직한 농업정보연구집단의 한 성원으로 되였을 때 그 누구보다 피타게 사색하고 탐구해나갔다.

지난 수십년동안에 축적된 농업과학기술성과의 총체를 다루어야 하고 기초과학기술분야의 성과들을 종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과학연구사업은 첫걸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청년과학자들과 함께 기상자료와 토양자료 등 필요한 기초자료기지를 하나하나 구축하고 짧은 기간에 우리 나라의 농업생태환경을 구분하며 빛과 온도조건, 물과 질소보장성을 고려한 논벼, 강냉이생육모의모형을 개발하는데 지혜와 재능과 열정을 깡그리 바치였다.청년과학자들의 이 성과는 우리 나라에서 농업정보연구를 위한 든든한 밑천으로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나라 농업의 현대화, 정보화를 선도해나가는 모체기지로, 농업정보기술에 토대하여 농업생산과 관리를 정보화, 과학화하는데 이바지하는 연구단위로 갓 조직된 농업정보연구기지에서 연구사업을 하게 된 때로부터 오늘까지 김광연동무는 근 20년을 농업의 정보화를 실현하기 위한 연구에 바쳐가고있다.

이 과정에 군, 농장농업통합생산체계를 개발하였으며 과학농사도입사업을 방법론적으로 안받침하기 위한 연구사업에서 성과를 거두었다.필지별영농세부계획작성프로그람, 농업과학기술자료검색프로그람, 농업과학기술보급체계 등을 개발하며 전국적인 농업자원자료기지를 구축하고 선진영농기술들의 도입적지를 평가하기 위한 종합연구과제수행에서도 그는 언제나 연구집단의 앞장에 서있었다.

이뿐이 아니다.전국적인 범위에서 포전별논밭무비료소출능력을 평가하고 토지등급을 규정하기 위한 연구, 시, 군별로 농업생태지구를 구분하기 위한 방법론연구 그리고 논밭생태세포를 구분하고 생태세포별다수확재배체계를 설계하기 위한 연구사업에서도 뚜렷한 실적을 내였다.

《농업에서 체계리론과 방법의 응용》을 비롯하여 10여권의 단행본 집필, 수십건의 론문 발표, 여러명의 석사 양성…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지난해 12월 28일 농업연구원창립 70돐에 즈음하여 농업부문 과학자, 기술자, 일군들에게 보내주신 서한을 높이 받들고 나라의 농업발전을 과학기술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보람찬 탐구의 길에 한생을 다 바치려는것이 김광연실장의 확고한 결심이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