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세대의 목소리-우리는 승리를 굳게 믿고 싸웠다

전선과 후방을 들었다놓은 전승열병식훈련소식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은 탁월한 사상리론가, 위대한 정치가, 강철의 령장이시였을뿐아니라 신념과 의지의 제일강자, 제일배짱가이시였습니다.》

주체42(1953)년 8월 15일 영웅조선의 수도 평양에서 전승열병식이 성대히 거행되였다는 소식이 전파를 타고 우주공간에로 퍼져나갔다.

정규적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된지 불과 2년밖에 안되는 우리 인민군대가 제국주의련합세력을 타승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영예롭게 수호한 사실앞에서 경탄을 금치 못하던 세계는 전쟁의 포화가 멎은지 불과 10여일만에 진행된 열병식소식에 또 한번 크게 놀랐다.

전승의 날을 눈앞에 두었던 그 시각에도 이 나라의 고지들에서는 총포성이 울부짖고 불과 불이 오갔다.

하다면 조선에서의 전승열병식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준비되였는가.

조국해방전쟁 제4계단기간이였던 주체40(1951)년 7월, 그무렵 전선은 38゜선을 경계로 기본적으로 고착되여있었다.적들은 숱한 최신전투기술기재들을 동원하여 전선을 돌파하려고 발악적으로 책동하였다.

아군용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적방침을 높이 받들고 적극적인 진지방어전을 벌려 이미 차지한 계선을 완강히 견지하면서 다양한 전법으로 적들을 끊임없이 타격소멸하고있었다.

전선과 후방의 하늘가에 더욱 짙어가는 포연, 그것은 전승의 날이 아직 멀리에 있음을 예고하는듯 하였다.바로 이러한 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군관에게 전승열병식훈련을 잘해둘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말타고 열병식훈련을 잘해야 하오.군악대도 동원하고 만세소리도 내면서 말이요.》

이렇게 되여 청운리에서 군악소리와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소리가 낮에 밤을 이어 울리였다.당시 이곳 마을사람들의 회상에 의하면 100여필의 말이 열병대형을 짓고 군악에 맞추어 달릴 때의 광경은 정말 볼만 하였다고 한다.이 사실은 목격자들의 입을 거쳐 여기저기로 파다하게 퍼져갔다.

전쟁의 운명이 판가리되던 시기 전승열병식훈련이 진행되고있다는 소식은 싸우는 고지의 인민군용사들의 가슴마다에 승리의 신심을 더욱 굳게 해주었다.

최전선의 고지들에서도 짬짬이 열병식훈련이 진행되였다.

영웅조선의 전승열병식훈련은 이렇듯 신념과 의지의 제일강자, 제일배짱가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발기에 의하여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벌써 시작되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차례 열병식준비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주체41(1952)년 6월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전승열병식은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의 불패의 위력을 온 세상에 과시하고 침략자들을 타승한 그 기세로 조국의 번영을 위한 복구건설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도록 전체 인민을 힘차게 불러일으키는 계기로 될것이라고, 우리 인민과 인민군군인들이 지금부터 전승열병식준비를 하고있다는것을 알면 승리에 대한 신념을 굳게 가지고 전쟁승리의 날을 앞당기기 위해 더욱 힘차게 싸워나갈것이라고 하시였다.

력사에는 수많은 전쟁들이 기록되여있다.그와 함께 후세에 전해지는 명장들, 위인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처럼 전화의 불구름속에서 승리한 래일을 내다보시고 전승열병식을 준비하도록 하신 위인을 세계는 알지 못한다.

전승열병식참가자인 모란봉구역 전우동에 살고있는 박현순전쟁로병은 자기의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군의군관학교졸업을 앞두고있던 1953년 6월초 지휘관이 우리에게 이제부터 열병식훈련이 진행된다고 하는것이였다.

처음엔 어리둥절하였다.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에 따라 2년전 각 부대들에서 소환되여 학교로 온 우리들은 졸업하면 즉시 전선으로 다시 달려나갈 열의에 충만되여있었던것이다.그러나 다음순간 격정의 물결이 대오에 굽이쳤다.누가 선창을 뗐는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목청껏 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다.이윽고 두개 종대가 편성되였다.그날 밤부터 성천군 군자리(당시)의 깊은 산골짜기에서는 우리들의 발구름소리가 울려퍼졌다.낮에는 적기의 폭격이 심하기때문에 밤에 행진훈련을 해야 했던것이다.때로 나무그루터기에 걸려 넘어지기는 했지만 마음은 마냥 기쁘기만 했다.…7월 28일 새벽, 때이르게 기상나팔소리가 울리였다.대오앞에 나선 지휘관은 다음날부터 평양에서 전승열병식종합훈련이 진행된다고 하면서 강행군명령을 내렸다.우리는 식당근무성원들이 밤새워 마련한 줴기밥을 먹으면서 행군을 하기 시작하였다.최고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평양으로 간다는것으로 하여 힘든줄 몰랐다.지금도 목적지(오늘의 천리마동상주변)에 도착한 우리들을 반겨맞아주던 시민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런 추억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근위 강건제2보병사단 제17련대에서 복무한 리인수전쟁로병에게도 소중히 간직되여있었다.

《전쟁의 마지막시기 내가 속한 부대는 원산에 있었습니다.어느날 중대에 한 지휘관이 내려와 키가 늘씬한 군인 20~30명을 엄선하여 대오를 편성했습니다.내가 지휘관에게 새로운 부대편성인가고 물었더니 그가 하는 말이 열병식대오라는것이였습니다.》

리인수전쟁로병의 회상에 의하면 기준에 합격된 군인들은 기뻐했고 불합격된 군인들은 아쉬워 눈물까지 글썽해졌다고 한다.

《우리 분대의 한 동무는 나보다 키가 조금 작아 열병식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였습니다.적들을 삼대베듯 쓸어눕히던 한다하는 싸움군인데 참 아쉽게 되였지요.그때 그가 뭐랬는지 압니까? 최고사령관동지를 뵈옵거든 자기의 인사도 꼭 드려달라고, 동무들이 훈련을 잘하도록 더 잘 싸우겠다고 했습니다.그후 그는 한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습니다.우리 열병대오가 걸어간 그 길에는 이런 위훈이 깃들어있습니다.》

그때로 말하면 적들에 대한 인민군대의 강력한 타격전이 진행되고있던 시기였다.한사람한사람의 군인들이 더없이 귀중하였다.이러한 때 한개 중대에서만도 수십명씩 뚝 떼여 열병식훈련을 진행하게 되였을 때 군인들의 심정은 어떠했던가.

전승열병식에서 비행기를 타고 광장주석단앞 상공을 지나간 한 전쟁로병은 이렇게 회억했다.

《우리 녀성비행사들이 본격적으로 열병식훈련을 시작한것이 1953년 7월초부터였수다.내가 기억력이 좋다구요? 아니, 그때 받은 충격이 너무도 커서이지요.우린 낮에는 고도 300m를 유지하면서 광장앞을 지나는 훈련을 하였고 밤에는 전투임무를 수행했다오.》

전승열병식훈련소식은 후방의 인민들에게도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승리에 대한 신심을 백배한 인민들은 전시생산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려나갔다.하여 1951년도 공업총생산계획은 109.6%로 넘쳐 수행되였으며 1952년도에 국영 및 협동단체 공업총생산액은 전해에 비하여 19%, 알곡총수확고는 13% 늘어났고 철도화물수송계획은 105.2%로 초과완수되였다.1953년도 인민경제 상반년계획도 넘쳐 수행되였다.

전승의 축포가 터져올랐던 력사의 그날로부터 어느덧 6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조용히 귀를 기울이느라면 원수복을 입으시고 전승의 열병식연단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목청껏 웨치던 만세의 환호성이 금시 들려오는듯싶다.

어찌 잊을수 있으랴.

준엄한 전화의 나날 총포탄이 작렬하는 고지의 전호가에서, 불타는 전야에서 그렇게도 고대하던 영광의 시각이 아니였던가.

그 감격, 그 격정을 주체42(1953)년 8월 16일부 《로동신문》은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아침부터 광장은 환호소리로 소란하다.정연히 대렬을 지은 보병들과 해병들이 끊임없이 입장하여 소정된 자리에 정렬한다.대렬앞마다에서는 진홍색군기들이 아침일광에 찬란히 빛난다.…정각 10시, 광장의 떠들썩하는 환호속에 우리 인민의 영광스러운 수령이며 우리 인민군대의 강철의 령장이신 김일성원수는 …주석단에 등단하였다.》

력사의 그날에 울린 환호성, 그것은 지지리 억압받고 천대받던 인민을 세계가 우러러보는 영웅인민으로 키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고마움과 흠모심의 뜨거운 분출이였고 수령님을 한목숨바쳐 옹위하려는 맹세의 함성이였다.

그때로부터 수많은 열병식이 거행되였고 그때마다 열병광장과 환영의 연도에서는 인민의 환호성이 하늘땅을 진감하군 하였다.

무적필승의 혁명적무장력으로 자라난 영웅적조선인민군은 백두의 천출명장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를 높이 모시여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승리의 자욱만을 아로새겨갈것이다.

본사기자 리경일

본사기자 신철

 

 

승리의 열병광장을 보무당당히 나아가는 영웅적조선인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