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조국땅에 차넘친 끝없는 감격과 새 생활창조의 기쁨

재령벌농민의 진정

 

자기 땅에 보습을 박고싶은것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며 우리 농민들이 간직했던 소원이였다.해방후 토지개혁부터 먼저 실시하도록 하여 세기적숙망을 풀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고마운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농민들은 너도나도 떨쳐나섰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제원농민의 애국적소행과 영웅적투쟁은 우리 농민들과 인민들이 따라배워야 할 귀중한 모범입니다.》

해방된 이듬해 조국땅에 풍년이 들어 전국적인 알곡수확고가 1945년보다 340여만석이나 더 많은 1 450여만석을 바라보게 된 가을 어느날 재령군의 김제원농민은 집마당에 가득 쌓아놓은 쌀가마니들을 눈물속에 바라보고있었다.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아니시였다면 오늘과 같이 기쁜 날이 있을수 있겠는가.)

두눈을 슴벅이며 그는 피눈물나는 해방전의 나날을 돌이켜보았다.

나라를 잃고 땅이 없어 설음과 울분속에 흘러가던 그의 불우한 인생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안아오신 조국의 해방과 함께 영영 끝장이 났다.

력사적인 토지개혁법령은 김제원농민에게도 수천평의 땅이 차례지게 하였다.제 이름 석자가 적힌 표말을 어루쓸며 한밤을 지새웠던 그였다.

나라가 있고서야 땅의 주인인 농민도 있고 농사짓는 보람도 긍지도 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기가 거두어들인 쌀을 나라에 바칠것을 결심하였다.하여 그는 알알이 고르고고른 쌀 30가마니를 달구지채가 휘도록 싣고 평양으로 떠나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라일에 바쁘신 속에서도 그를 친히 만나주시고 새 조선농민의 본분을 깊이 자각한 애국적인 행동으로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그의 애국심은 재령군농민들을 격동시켰다.그들은 농업현물세완납경축대회를 열고 김제원농민의 모범을 본받아 애국미헌납운동과 량곡수매사업을 힘차게 전개할것을 결정하고 대회의 이름으로 어버이수령님께 자기들의 결의를 담은 편지를 삼가 올리였다.그리고 전국의 농민들에게 애국미헌납운동에 떨쳐나설것을 열렬히 호소하였다.그들은 이날 하루동안에 많은 애국미를 헌납하였으며 며칠어간에만도 수천가마니의 애국미를 나라에 바치였다.

김제원농민이 지펴올린 애국의 불씨는 애국미헌납운동의 불길이 되여 온 나라에 타번졌다.

전국각지에서는 애국미헌납운동에 참가하기 위한 군중집회들과 열성자대회들이 광범히 진행되였다.그리하여 1946년 한해겨울만 하더라도 무려 1만 6천여명의 농민들이 이 운동에 참가하여 많은 애국미를 나라에 바쳤다.

땅의 주인인 농민들이 바친 애국미, 거기에는 평생소원을 풀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하늘같은 은덕에 성실한 피와 땀, 순결한 량심과 의리로 보답하려는 이 나라 인민의 소박한 진정이 깃들어있었다.

본사기자

 

 

애국미헌납운동의 발기자 김제원농민(왼쪽에서 첫번째)

 

농사지은 곡식을 애국미로 바치는 농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