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제힘으로 흥하는 길을 열어나가자

기행

《애물단지》강을 다스려 행복의 터전을 마련한다

성천군을 돌아보고

 

《우리 군의 지명유래를 아십니까?》

성천군에 대한 첫 취재는 뜻밖에도 이런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룡흥리에 새로 일떠선 농촌문화주택의 그림같은 정경에 걸음을 못 떼는 우리에게 마을의 로인은 류다른 추억에 잠겨 이야기를 펴나갔다.

북쪽과 서쪽은 비류강이 흘러 강을 건느지 않고서는 들어갈수 없는 하천으로 둘러싸인 고을이라는 뜻에서 성천으로 불리워지게 되였다는 그 유래에서도 알수 있는것처럼 성천군은 수십개의 하천들과 산들로 둘러막혀있어 큰물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고 한다.

장마철때면 범람하는 큰물때문에 나루터 아닌 여울이 생긴다고 하여 《배울》, 사품치는 물이 푸른 파도를 일으키며 흐른다고 해서 《청파리》라 불렀다는 옛 지명들은 성천군이 큰물과 얼마나 인연이 깊었던가를 다시한번 새겨보게 하였다.

《아마도 물고생이라는 말처럼 우리 성천군사람들의 생활속에 깊은 흔적을 남긴 단어는 없을겁니다.

한마디로 비류강은 우리에게 〈애물단지〉강이였지요.》

로인의 이야기를 남새작업반 반장이 이어나갔다.올해에 꼭 농사를 잘 지어 당의 은덕에 보답하겠다며 푸른 전야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젖어있었다.

예전엔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도 농사가 잘되지 않았다고 한다.큰물만 나면 도로밑에까지 물이 차오르군 하였는데 물이 한번 쓸고나간 포전엔 모래무지만 남군 하였다.재난을 막아보려고 돌마대, 흙마대들을 쌓아놓군 하였지만 그런 땜때기로는 곳곳에서 합류되여 무섭게 들이닥치는 큰물을 막아낼수 없었다.하지만 이제는 그 어떤 큰물에도 끄떡없다며 리일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군사복무를 할 때까지만 하여도 성천땅엔 아빠트가 몇동 없었습니다.지금은 물을 다스렸더니 아빠트를 암만 지어도 걱정이 없습니다.우리 군이 얼마나 천지개벽되였으면 제대되여 돌아오는 병사들이 자기 고향도 몰라보고 그냥 지나치군 했겠습니까.》

군녀맹원들이 한달만에 지었다는 룡흥리의 농촌문화주택들, 그 집집에서 들려오는 성천땅의 전변의 노래는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부흥의 길을 열어나가는 단위들에 대한 우리의 기행길을 더욱 재촉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치산치수사업은 인민의 행복과 나라의 부강번영을 위한 숭고한 애국사업이며 만년대계의 자연개조사업입니다.》

읍에 들어서니 유명한 담배고장이라는것이 첫눈에 확 알리게 담배잎모양의 살림집들이 아기자기하게 키를 솟구고있었다.올해에 건설한것만도 수십동에 수백세대나 된다고 한다.결국 지난해것까지 합치면 천수백세대가 훨씬 넘었는데 건설속도도 탄복할만 한것이였지만 진짜 놀라운것은 바로 그것을 성천군사람들이 자체의 힘으로 건설했다는것이였다.

세멘트 한g, 강재 한토막도 나라에 손을 내밀지 않고 몇해어간에 수백동에 수천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한 성천사람들이 믿은것은 오직 자기 힘뿐이였다.제손으로 행복의 터전을 마련하던 나날에 누구나 기능공이 되였다고 하면서 군인민위원회 일군이 하는 말이 참 인상적이였다.

《비류강을 길들였더니 보배강이 되였지요.비류강덕을 봅니다.예전엔 강바닥에 자꾸만 쌓여 골치거리던 모래와 골재가 지금은 우리 군의 보물로 되였지요.》

발이 굵고 깨끗한 비류강의 모래는 다른 군들에서도 인기가 높아 저저마다 요구한다고 한다.

비류강탓이란 말이 비류강덕이란 말로 바뀌기까지 성천군인민들이 바친 땀과 노력은 과연 그 얼마였겠는가.

골짜기가 많고 합수목이 많아 장마철이면 숱한 땅이 류실되고 농경지와 강하천의 구분이 없던 성천땅에 군당책임일군으로 임명된 10년전 그날 큰물에 온통 도로가 끊기워 산길을 찾아 돌고돌아서야 겨우 들어설수 있었다던 일군의 이야기는 결코 웃어넘길 말이 아니였다.

오죽했으면 약혼식날 찾아왔던 사돈집을 비가 내린 며칠후에는 길을 헛갈려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섰다는 이야기가 다 생겨났겠는가.

지금은 지나간 이야기지만 물고생으로 겪은 마음고생은 또 얼마나 컸으랴 하는 생각에 하나의 사실자료가 더욱더 가슴을 파고들었다.

연 300㎞의 하천들을 다스려 860여리에 달하는 제방을 쌓고 99만 6 000㎥의 하천바닥을 팠으며 수십만㎡의 석축을 하여 큰물로 류실되였던 100정보의 토지를 되찾고 1 100여정보의 랭습지를 개량, 근 2 000정보의 토지를 보호…

조국의 오늘과 후대들의 래일을 위하여 군의 마지막골짜기에까지 제방을 쌓아가는 성천군인민들의 뜨거운 향토애에 진정 머리가 숙어졌다.

올해에도 수십리에 달하는 제방을 쌓은 성천군인민들에게 있어서 사나운 비류강을 길들이던 나날의 추억은 참으로 눈물겹고 소중한것이였다.

사품치는 모양이 마치 부글부글 끓는것 같다고 하여 《불류강》으로 불리웠다는 비류강을 두고 성천군사람들은 흔히 날아다니는 강이라고도 말한다.

근 10년전 성천군에 큰물이 났을 때였다.

살림집들이 물에 잠기고 밭들이 떠내려갔다.비류강물이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광경은 십이봉도 단숨에 삼킬것 같았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군일군들은 대담하고 통이 큰 결심을 내렸다.

십이봉의 물목을 넓혀 결정적으로 통수능력을 높이자.

청년돌격대가 조직되고 간고한 물길확장공사가 시작되였다.어려움과 난관은 기다린듯 다가섰지만 함마질소리는 멎을줄 몰랐다.

마침내 첫 발파소리가 울렸다.

비류강의 막혔던 물목이 확 열린 그날 읍주민들은 너도나도 돌채취에 떨쳐나섰다.한겨울의 추위를 무릅쓰고 발구로, 등짐으로 날라온 돌로 그들은 제방을 쌓아나갔다.지구별로, 인민반별로 붉은기를 날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경쟁의 불도가니속에서 쌓아올린 제방은 본래의 몇배나 되는것이였다.또다시 장마철이 왔지만 큰물은 용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이듬해에 또다시 제방이 터질줄 어찌 알았겠는가.

례년에 없는 무더기비는 비류강하류에 위치하고있는 성천군으로 상상 못했던 큰물이 밀려들게 하였던것이다.여러 군을 흐르는 물이 다 합쳐져 비류강으로는 말그대로 수m 높이의 물결이 서서 날아들었다.

물이 한번씩 갈기를 날릴 때마다 피땀바쳐 쌓아놓은 제방이 뭉청뭉청 끊어져나갔다.도로가 없어지고 정을 다해 창조해놓은 모든것이 터져나갔다.

정말 사람의 힘으로는 횡포한 자연을 어쩔수 없단 말인가.

하지만 그쯤한 시련에 맥을 놓고 주저앉을 성천사람들이 아니였다.

그들은 눈물을 씻은 주먹을 부르쥐고 비류강의 물목을 더 넓히기 위하여 일떠섰다.제방뚝도 더 견고하게, 더 높이 쌓았다.산에, 마을에, 일터에 정성다해 한그루한그루 나무를 심었다.

《큰물피해라는 말은 잊혀졌습니다.그때부터 우리 군인민들은 강하천을 정리하고 랭습지를 개량하기 위해 해마다 제방을 쌓아가고있습니다.》

군일군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류강기슭을 따라 차를 달리느라니 곳곳에서 만났던 농장원들의 목소리가 산울림되여 메아리쳐왔다.

하루밤 자고나면 수많은 옥답이 강바닥으로 되던 아픈 추억은 영원히 사라졌다고, 무수확지에서 지금은 옹근소출을 낸다며 그들은 긍지높이 말했다.

비류강을 길들이니 놀리던 땅, 버리는 땅, 못쓰는 땅이 없어졌다고, 당의 국토관리정책이 정말 좋다고!

자기 힘을 알게 된 그들의 모습을 보니 절로 눈굽이 젖어들었다.

성천군인민들을 잘살게 하시려 풋강냉이 한이삭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하시며 삼복의 무더위속에서 하루종일 포전길을 걸으시던 우리 수령님께서, 궂은비 다 맞으시면서 산간지대 농민들의 생활을 추켜세울 방도를 하나하나 찾아주시던 우리 장군님께서 오늘의 성천땅을 보시였다면!…

강하천정리를 잘해서 장마철피해를 막고 랭습지를 없애라는것은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성천군에 주신 유훈이다.그 유훈을 지켜가던 나날에 알곡생산계획은 종이장우의 수자로만 남아있던 성천땅에서 과학농사의 불길이 타오르고 다수확농민, 다수확작업반의 대렬이 늘어나게 되였다는 자랑은 얼마나 좋은가.

성천군의 오늘과 래일을 담보하는 행복의 열쇠를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에 대한 감사의 정으로 가슴을 적시며 취재길을 이어가던 우리는 일매지게 뻗어나간 제방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군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감탄한다더니 과연 그럴만 하였다.

금평리에서 우리는 농장원들의 제방 쌓는 솜씨를 직접 보게 되였는데 성천사람들이 류달리 제방을 잘 쌓게 된 동기가 또한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돌을 막 쌓으면 각담이 되고 품들여 쌓으면 제방이 됩니다.우리가 석축공사를 잘하면 그만큼 나라의 세멘트를 절약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수백m나 되는 석축공사를 불과 며칠동안에 수월히 해제끼는 그들도 사실 처음에는 허물었다 다시 쌓았다 하면서 무척 애를 먹었다고 한다.

성천군인민들의 보석같은 땀이 깊이도 슴배여있는 제방을 따라 걷느라니 저도모르게 마음이 후더워졌다.헐치 않았겠다는 우리의 이야기에 한 농장원은 범상하게 말하였다.

《돌많은 고장에서 제손으로 돌이야 왜 쌓지 못하겠습니까.제 고향을 남보고 와서 꾸려달라고 할수는 없지요.》

군적으로도 교통이 제일 불리한 곳으로 알려진 금평리에서는 장마가 지나간 다음에 첫 차 지나간 자리, 그것이 도로였다고 한다.

불을 켜고도 운전사들이 길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던 금평리에 지금은 눈감고도 걸을수 있는 도로가 생겼다고 자랑하던 토배기로인의 말은 얼마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것인가.

군의 제일 끝에 위치하고있는 삭창리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주 눈에 띄우는것은 담배잎들이 푸르싱싱하게 자라는 포전들이였다.

담배생산계획수행에서도 담배의 질에서도 군의 앞자리에 서있다는 삭창리사람들의 성천담배에 대한 애착과 자랑은 여간이 아니였다.

성천담배는 썰어놓으면 그 빛갈이 아름답고 금실같다고 하여 《금사연》, 향기가 독특하고 숨길수 없어 오가던 행인들까지 모여들게 한다고 하여 《향초》, 그 재배원산지가 당시 《피무리》(오늘의 회전, 계석일대)라고 해서 《피무리초》라고도 불렀는데 나라없던 그 세월에는 집에서 가꾼 담배조차 잎담배로 피우게 되면 막대한 벌금까지 물었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인가 일군들에게 성천담배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그렇기때문에 어떤 나라에서는 우리 나라의 성천담배를 사다가 자기 나라 담배에 조금씩 섞어서 가공하여 대외시장에 내다 비싸게 판다고 하시면서 성천군에도 담배전문농장을 꾸리는것이 좋겠다는 사랑의 교시를 주시였다.

잊지 못할 그 교시를 가슴뜨겁게 외워보던 삭창리당위원장은 문득 《사실 몇년전까지만 하여도 우리 리의 담배농사형편은 한심했답니다.》라고 말머리를 돌렸다.

다른 작물과 달리 담배는 일단 한번 물에 잠기면 그해 수확은 전혀 기대할수 없다고 한다.하물며 큰물이 때없이 덮쳐들군 하던 성천땅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물이 쭉쭉 빠지고 랭습피해를 받지 않으니 담배농사 잘되여 좋고 삭창리의 살림이 날로 꽃펴나서 좋다며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역시 삭창땅에서도 들려오는것은 물을 잘 다스린 자랑이였다.

삭창리를 떠나는 우리의 눈앞에는 취재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의 군상이 되여 떠올랐다.

비류강모래로 미장을 하고 우리 광산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색돌로 함수석미장을 하고 우리 고장에 무진장한 고회석도 마감건재로 리용하고있다고, 누구나 부러워할 군문화회관을 건설하겠다던 건설자들의 미더운 모습이며 올해에 꼭 우리 군에 순회우승기를 안고오겠다던 남새온실농장 일군이며…

군에서 물에 잠기던 살림집들을 모두 헐어 새 살림집을 마련해주었다고, 이제 더는 큰물이 숙명적인것도 두려운것도 아니라며 읍지구의 녀인들은 긍지에 넘쳐 말했었다.

도로 한구간, 가로수 한그루, 보도블로크 한장에 이르기까지 그 어디에나 우리의 사랑과 정이 깃들어있다.산을 떠서 옮기라면 옮기고 강을 메우라면 메우고 물도 다스리는 우리가 못할것이 무엇이겠는가.…

참으로 만나본 사람, 찾아본 고장이름은 서로 달랐어도 성천군의 어디서나 느껴지는 마음은 꼭같았으니 그것은 바로 불같은 향토애였다.누구에게나 자기 고장에 대한 사랑이 있으련마는 성천사람들의 향토애는 류다른것 같았다.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는 성천군청년들에게 군책임일군은 이렇게 약속한다고 한다.

군사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엔 더 환해지고 더 멋있어진 고향땅에 들어서게 하겠다고.

그 모든 마음을 안고 우리는 십이봉에 올랐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래일 또 달라질 성천군의 전변상을 한눈에 안아보며 우리는 다시금 뜨겁게 새겨안았다.

옛날부터 치산치수사업을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인민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아무리 산골군이라 하여도 치산치수를 잘하고 농사를 알뜰히 지으면 잘살수 있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금옥같은 가르치심을.

강을 다스려 재난을 가셔내고 날로 흥하는 땅-성천에서 우리는 확신했다.불같은 향토애가 무릉도원을 꽃피운다고.

부지런한 농사군에게 못쓸 땅이 없듯이 진짜배기애국자, 참된 주인들에게는 나쁜 고장이란 없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조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