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기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제힘으로 흥하는 길을 열어나가자

오물을 보물로 전환시켜

강선비닐박막공장을 돌아보고

 

저 멀리 북변의 크지 않은 수산협동조합에서부터 시작된 우리의 방문길은 은천군과 숙천군, 봉산군과 염주군 등 자랑많은 일터와 고장들을 거쳐 어느덧 남포시 천리마구역에 이르렀다.오랜 세월 천리마의 고향으로 그 이름 유명한 이 강선땅에 재자원화사업을 발전전략으로 틀어쥐고 큰걸음을 내짚은 단위가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흥분시켰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에게 부족한것도 많고 없는것도 적지 않지만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나가면 뚫지 못할 난관이 없으며 점령 못할 요새가 없습니다.》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강선비닐박막공장이 자리잡고있었다.요란한 설비의 동음은 귀에 들리지 않았지만 공장구내에 들어서자부터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초급당위원장 방원봉동무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난 우리가 제품전시장에 들어서니 여러가지 색갈과 용도를 가진 비닐박막과 비옷, 각이한 규격의 수지관제품, 비닐호스를 비롯한 이 공장 제품들이 차곡차곡 진렬되여있었다.

하나같이 산뜻하고 훌륭한 이 제품들이 모두 지난날 쓸모없이 처리되던 파비닐을 재생하여 만든것이 옳긴 옳은가 하는 의문부터 들었다.

선뜻 믿어지지 않아 하나하나의 제품들을 자세히 보고 또 보는 우리에게 그는 십분 그럴것이라는듯 한 인상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전부 우리 공장에서 생산된 파비닐재생제품입니다.특히 우리가 만든 농업생산용비닐박막은 지금 전국의 수많은 단위에서 가져가는데 호평이 대단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수입박막은 빛과 열을 흡수도 잘하고 반사도 잘 시킨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재생비닐박막은 빛과 열을 잘 흡수하는 반면에 반사는 얼마 하지 않기때문에 자연히 보온효과가 커져 알곡작물의 생육기일을 더욱 앞당긴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는것이였다.

그러고보니 지난해 이곳 천리마구역의 농장들이 다수확농장의 영예를 떨치게 된데는 이 공장에서 가져다쓴 비닐박막의 덕도 단단히 깃들어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놀라움은 생산현장에서 더욱 커졌다.

기운차게 돌아가는 파비닐절단 및 세척기, 스크류식이송세척기, 콘베아식이송세척기의 작업모습도 그러하지만 배기식압출성형기에서 쉴새없이 나오는 재생원료들이 건조공정을 거쳐 알모양으로 완성되는 광경은 참으로 볼만 하였다.

공장일군들과 종업원들이 지혜와 힘을 합쳐 자체로 개발제작한 그 하나하나의 설비들에 깃든 이야기 또한 아주 흥미로왔다.콘베아식이송세척기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지배인과 종업원들이 몇해전 어느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혁명활동내용을 담은 영화문헌을 텔레비죤화면으로 시청하던중 어느 한 수산사업소에서 리용하는 기계설비를 보고 공장의 실정에 맞게 창안도입한것이라고 한다.

쌀알크기만큼 성형된 재생원료들을 말리우는 건조기도 기발한 착상을 거쳐 제작된것이였다.재생원료들에서 습기를 제거하자면 건조공정을 거쳐야 하는것은 자명한 일인데 상식대로라면 그 공정은 일정한 공간에서 많은 열에네르기를 보장해야만 해결될수 있는것이였다.

어떻게 하면 제한된 생산면적에 효과적인 건조공정을 확립하겠는가를 놓고 사색을 거듭하던 어느날 지배인은 그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한 량곡가공설비에서 눈길을 멈추었다.기계설비의 빠른 회전속에서 정미되여나온 쌀알들이 후끈후끈 달아있는것을 손으로 만져본 그는 무릎을 탁 쳤다.

(이 원리대로 쌀알만 한 크기의 재생원료를 자체쓸림에 의한 열로 건조할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여 초기에 타산했던 수많은 연료와 생산면적을 아예 필요로 하지 않는 효률높은 건조기가 성공적으로 제작되게 되였다.

이들이 제작한 무연탄가스에 의한 발동발전기 역시 다른 단위들에서 많이 쓰는 불련속식가스발생장치를 련속식으로 독특하게 개조하여 완성한것인데 일년사시절 하루도 중단없이 생산에 필요한 전력을 보장하고있었다.

매 설비들에 깃들어있는 사연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던 공장일군인 마성일동무는 발명총국의 일군들이 공장에 왔다가 이 모든 생산설비들을 자체로 창안제작하였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 새로 확립한 생산공정들은 거의 모두가 발명증서나 창의고안증서를 받을만 하다고 이야기하더라는것이였다.

《사실 무슨 발명증서를 받으려고 만든것은 아니였습니다.그저 생산을 하자니까 모두가 달라붙어 만들었을뿐입니다.》

즐거운 웃음속에 우리가 이 공장 일군들과 평범한 로동자들이 받은 수많은 발명증서와 전국과학기술축전 증서, 창의고안증서들을 보고있을 때 다른 단위에 일보러 나갔던 지배인 우재명동무가 공장에 들어섰다.

10여년간이나 숨멎었던 공장을 일으켜세우고 생산활성화를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여다닌 지나온 나날이 그의 주름깊은 얼굴에 다 씌여져있는것만 같았다.

《우리 공장의 력사야말로 자력갱생만이 번영의 활로라는것을 절감하게 하는 또 하나의 실록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첫마디를 뗀 그의 이야기는 멀리 공장조업의 첫 기슭으로 거슬러올랐다.

강선비닐박막공장은 주체84(1995)년 11월 14일 서해안지구 농촌들에 농업생산용비닐박막을 생산보장할데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에 의하여 창립되였다.조업당시 공장설비들은 거의 모두가 수입설비들이였고 생산 역시 수입원료에 의거한것이였다.

첫 3년간은 생산실적이 괜찮았다.그러나 그후부터는 수입원료가 보장되지 않아 결국에는 공장이 주저앉고말았던것이다.

우재명동무가 지배인으로 임명된것은 그로부터 10여년간이나 공장이 숨막히는 침체기를 겪고있을 때였다.

어둡고 누기찬 생산건물, 파손된채로 녹쓸어가는 설비들, 뿔뿔이 흩어져간 기능공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기 어렵던 그때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속에 마련된 공장을 하루빨리 추켜세워야 한다는 맹세밖에는, 당조직의 믿음과 얼마 안되는 로동자들밖에는 지배인이 용기를 찾을수 있는 그 무엇도 없었다.

(수입원료만 가지고 공장을 살릴수 없다는것은 명백하다.어떻게 하나 이 땅에서 보물을 찾아내야 한다!)

하루하루 안타까움에 모대기던 지배인의 시선은 자연히 생활의 구석마다에서 때없이 보게 되는 파비닐에로 향하게 되였다.

마침내 그는 공장의 실정에서 비닐제품생산은 파비닐재생에 의거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였다.

파비닐자원은 어디에나 있었다.가정들에도 있고 공장과 사무기관들에도 있고 도시이건 농촌이건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쉼없이 나오는것이 파비닐이 아닌가.

남들은 수지오물처리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지만 그것을 재생하여 보란듯이 비닐제품을 만든다면 그야말로 대단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지배인의 가슴을 세차게 설레이게 하였다.

그래서 룡강군에 파비닐을 재생하여 병마개를 만드는 단위가 있다는것을 알고 한달음에 달려가기도 하였고 그전에 파비닐재생에 리용하던 낡은 설비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송림시에로 또 걸음을 놓기도 하였다.

녹쓴채 반나마 땅속에 묻힌 설비를 찾아냈을 때 그마저도 얼마나 기쁘고 다행스럽던지…

간난신고끝에 설비를 원상대로 복구해놓고보니 비닐박막이 아니라 수지관이나 수지용기를 생산하는데 쓰는 원료가공설비였다.하지만 8개월간의 거듭되는 실패속에서 이들은 마침내 비닐박막생산의 요구에 부합되는 원료가공설비로 개조해내고야말았다.

아직 그 어디서 본적도 없고 배운적도 없는 생산공정들을 확립해야 하는것으로 하여 걸음걸음이 개척의 생눈길이였다.

그러다나니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쓰는 생산술어들중에는 사전에도 없는 낱말들도 적지 않았다.파비닐원료를 놓고보아도 담배포장에 쓰인 파비닐은 담배포, 천제품포장에 쓰인 파비닐은 천포라고 스스로 지어 부른것이 이제는 공장사람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말로 되였다.

지배인의 설명속에서 공장의 어제와 오늘을 감명깊이 더듬던 우리에게는 문득 어느해인가 지배인이 외국에 갔다오자바람으로 생산건물벽면에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다!》라는 글발을 큼직하게 써붙이도록 하였다던 마성일동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가 바로 5년전이였습니다.공장이 조업할 때 외국에서 사온 수입설비가 마멸되여 부속품을 구입하러 갔댔지요.한푼두푼 모은 자금을 가슴에 보물처럼 꼭 품고 말입니다.그런데…》

기대를 품고 외국출장길에 올랐던 지배인은 그만 억이 막히는 일에 부닥치게 되였다.별로 눈에 차지도 않는 작은 부속품마저 엄청난 값을 요구하였던것이다.

가슴속에서 자존심이 부글부글 용암처럼 끓었다.

내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원료를 찾아 만들수 있는 부속품을 이렇게 비싼 값으로 사온다면 우리 당에서, 함께 고생하며 공장을 추켜세운 종업원들이 나를 뭐라고 하겠는가.

분연히 교섭마당을 뛰쳐나와 그달음으로 조국에 돌아온 지배인이 생산건물벽면에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다!》라는 구호를 써붙이게 했을 때 온 공장 종업원들이 활활 타는 불뭉치처럼 하나로 뜨겁게 뭉쳤다.

소리높은 웨침은 없었어도 기어이 우리 손으로 설비를 살려내자는것이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가슴에 쩌렁쩌렁 울려퍼진 신념의 맹세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얼마 안되는 기간에 우리 나라에서 생산된 흔한 소재를 가공하여 보란듯이 수입설비를 길들이고야말았다.

공장이 생산정상화의 동음을 되찾고 자체의 힘으로 종업원들의 식량문제까지 처음 해결하게 되였을 때 지배인은 남몰래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리였다.

그 눈물에 얼마나 크나큰 보람과 희열이 담겨있는것인지 남에게 매여사는 속물들이야 어찌 맛볼수 있겠는가.

공장이 활성화의 궤도를 타고 더 빨리 내달릴수록 종업원들에 대한 생활조건보장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들이 일어났다.

이 나날 공장의 당, 행정이 합심하여 모든 종업원들을 당의 사상을 뼈에 새긴 자력갱생강자들로, 공장일을 제 집안일처럼 여기는 애국자들로 더욱 몰라보게 성장시킨것이야말로 자랑중의 자랑이였다.

나어린 홍태철동무를 비롯한 평범한 로동자들이 기술혁신사업에 너도나도 참가하여 제힘으로 걸린 고리를 풀어나가는가 하면 목공인 오세종아바이와 같이 제 집일보다 공장일을 앞에 놓고 헌신하며 남몰래 좋은 일을 찾아하는 기풍이 어느 작업반에서나 례사로운것으로 되였다.

창가로 언뜻언뜻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종업원들에 대한 자랑으로 여념이 없던 지배인이 웅글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보고 오물을 보물로 만든 인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장대학을 나온것밖에 없는 저를 두고 말입니다.그때마다 저는 이야기하군 합니다.

생산활성화의 명안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과 우리 당정책에 다 있고 당의 뜻을 순결한 애국충정으로 받드는 참된 인간들이야말로 우리 조국땅 그 어디에나 있는 가장 진귀한 재부라고 말입니다.》

취재를 끝내고 귀로에 올라서도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우재명지배인의 목소리가 그냥 메아리처럼 울리였다.

참으로 옳은 말이였다.어제날에도 그러했지만 오늘도 역시 자력갱생문제는 단순한 생산문제이기 전에 당의 사상과 로선을 어떤 신념과 량심으로 접수하고 관철하는가 하는 인간문제, 진짜애국자와 가짜애국자를 가르는 엄격한 시험문제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공장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처럼 애국충정의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과 우리 당정책을 결사의 실천으로 받들어나갈 때 쓸모없던 오물도 보물로 되는 이야기, 자기 고장과 단위의 유리한 특성을 남김없이 살려 하나에서 열, 백을 얻는 부흥의 서사시들이 온 나라 이르는 곳마다에서 긍지높이 씌여지게 될것이다.

글 본사기자 리건

특파기자 주창선

사진 주예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