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의 힘으로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과감히 헤치며 계속 전진

청천강-평남관개물길공사장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말자

황해남도려단 물길굴건설장에서

 

굴함없는 공격전으로 난관을 맞받아 뚫고나가는것, 이것은 물길굴건설의 앞장에 서있는 황해남도려단 일군들과 돌격대원들의 체질화된 일본새이며 투쟁기풍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의 만리마대진군에서 영웅적조선인민의 불굴의 정신력을 남김없이 폭발시켜야 합니다.》

려단에서는 이미 수백m의 물길굴건설을 완성한 기세로 4, 6, 7갱의 물길굴건설도 빠른 기간에 결속할 목표를 세웠다.이렇게 하자면 1갱과 2갱사이 명굴건설을 다그쳐 끝내고 로력을 갱들에 집중시켜야 했다.

이 건설을 맡은 2갱의 신천군, 해주시대대의 분위기는 팽팽해졌다.

(적은 로력으로 방대한 건설을 제때에 해낼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던 때 대대일군들은 말없이 손을 맞잡았다.오직 결사관철, 이 신념으로 높뛰는 서로의 심장의 박동이 굳게 잡은 손을 통해 느껴졌다.

돌격대원모두가 분발해나선 가운데 작업방법이 혁신되고 강도가 높아졌다.

종전에 며칠간 굴착을 한 다음 휘틀을 조립하고 콩크리트치기를 하던 공정들을 하루에 다같이 내밀기로 하였던것이다.그러자면 시간이 모자랐다.대원들은 주저없이 휴식시간을 줄이였다.불과 몇시간동안 눈을 붙이고나서 굴착선행과 동시에 콩크리트치기를 하고 다음날 작업을 위해 휘틀조립까지 하자니 땀으로 미역을 감아야 했다.

건설장에서 몇걸음만 뒤로 가면 달아오른 몸을 식힐수 있는 서늘한 곳이 있었다.하지만 누구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 몇걸음이 계속 이어지면 명굴건설이 지연되고 결국에는 당에 물길굴건설완공의 보고를 드리는 시각이 늦어지기때문이였다.

《한걸음도 물러서지 말자!》

일군들과 대원들은 이렇게 웨치면서 내달려 상부콩크리트치기를 보름정도 앞당겨 끝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명굴건설장이 이렇게 끓어번질 때 9-1갱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이 갱은 암질이 무르다보니 붕락요소가 있었다.때문에 여기서 일하는 옹진군, 연안군대대의 일군들은 작업시작전에 대원들보다 먼저 갱에 들어가 온몸을 땀으로 적시면서 위험개소를 찾아 제거하군 하였다.

옹진군대대 참모장이였던 당철진동무는 어느날 위급한 정황이 발생하자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여 동지들을 구원하였다.

대원들은 오열을 삼키면서 붕락현상으로 생겨난 버럭처리를 위해 결사전에 나섰다.려단장, 정치부장을 비롯한 려단일군들도 이들과 어깨겯고 나갔다.

대원들은 참모장의 몫까지 하기 위해 버럭을 운반하는 광차길을 새로 더 형성하고 운반회수를 늘이였다.결과 여느때같으면 수십일동안 해야 할 버럭처리를 한주일만에 해제끼고 굴확장공사를 계속 내밀수 있게 되였다.

물길을 열어나가는 길에 성실한 피와 땀을 바쳐가는 청천강용사들속에는 10갱의 도탐사관리국대대 일군들과 대원들도 있다.

이 갱은 경사가 급하고 길어 버럭이나 공사용물자를 운반하기가 힘들었다.발파를 하면 굴천정에서 돌이 많이 떨어져 버럭이 늘어나는것도 문제였다.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대대장과 정치지도원은 금골광산의 고경찬영웅소대장을 생각하면서 어렵고 힘든 위치에 서군 하였다.이것이 대원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가슴에 끓는 피를 조국에 바쳐갈 열의에 충만된 대원들은 광차대수를 늘이였다.갱밖에 버럭을 쏟은 다음에는 세멘트, 혼석 등을 실어들이면서 광차리용률을 최대로 높이였다.암질에 따르는 합리적인 착암 및 발파방법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불리한 조건에서도 매월 맡겨진 계획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였다.

어찌 이들뿐이랴.재령군, 신원군대대를 비롯한 모든 대대일군들과 대원들이 우리 힘 꺾을자 이 세상에 없다는 배심으로 굴함없는 공격전을 벌리였다.그리하여 려단은 2.4분기 사회주의경쟁에서 우승의 영예를 지니였으며 그 기세로 계속전진해나가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