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한 숲의 작은 오솔길

요덕군산림경영소 천흥리산림감독원 서성철동무

 

산은 얼핏 보기에도 높고 험했다.해발고 800m가 넘는 그 산정점에 숲사이양묘장이 자리잡고있었다.

《자, 그럼 올라가봅시다.서성철산림감독원이 지금쯤 저 꼭대기에서 나무모밭김매기를 하고있을거우다.》

요덕군 천흥리의 산리용반에서 일한다는 아바이는 까마득한 산마루를 올려다보며 큰숨을 내쉬고난 우리를 숲속의 오솔길로 이끌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애국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이고 투신입니다.》

산꼭대기를 향해 뻗은 오솔길은 처음부터 가파로왔다.무성한 숲사이에 두 사람이 겨우 어길 정도로 난 외진 오솔길…

우리에게는 마을로부터 수십리나 떨어져있고 앞에도 뒤에도 산뿐인 이런 적막한 곳에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다는것자체가 놀랍게 여겨졌다.문득 숲사이양묘장을 부디 이런 곳에 꾸려야 할 리유가 무엇일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 의문을 풀어주려는듯 아바이는 앞장서 산길을 톺으며 수십년전의 나날로 추억의 노를 저어갔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요덕군 천흥리에 제대군인인 새 산림보호원(당시)이 배치되여왔다.그는 가슴이 아팠다.온 나라를 휩쓴 시련의 파도는 그처럼 숲이 무성했던 요덕군의 산발을 거의나 벌거숭이로 만들어버렸던것이다.군사복무시절 꿈에서도 그려보군 하던 정다운 고향산천, 젊은 제대병사의 심장속에서 피가 끓어번졌다.

이몸이 그대로 뿌리가 되고 밑거름이 되여서라도 고향산천을 푸른 숲 우거진 황금산으로 만들리라!

서성철동무는 산림감독원의 첫 자욱을 이렇게 찍었다.산림복구에 필요한 나무모를 마련하기 위해 그는 군은 물론 다른 도의 여러곳을 찾아 수백리 먼길을 끊임없이 걷고 또 걸었다.그렇게 마련한 나무모가 수만그루에 달했다.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담당한 지역의 산발을 다 푸르게 할수 없었다.결정적으로 양묘장을 꾸려야 했다.

그는 천흥리의 곳곳을 훑으며 빈땅을 찾기 시작했다.그러나 어디에서도 적합한 땅을 찾아낼수 없었다.어느날 꺼칠해진 모습으로 또다시 길떠날 차비를 하는 서성철동무에게 천흥리에 태를 묻고사는 한 로인이 찾아왔다.

《여기서 천흥천을 따라 얼마쯤 올라가면 높고 험하지만 나무모키우는데는 알맞춤한 산이 있네.》

이렇게 되여 산마루에 수천㎡의 숲사이양묘장을 꾸리는 일이 시작되였다.잡관목과 풀뿌리를 뽑고 돌을 춰내며 한치한치의 땅을 일구느라 서성철동무는 하루가 언제 지나고 한주일, 한달이 어떻게 흐르는지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이른아침 산에 올랐다가 새벽별을 이고 산을 내리는 나날 자그마한 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몇달후 나무모밭이 꾸려졌다.서성철동무는 또다시 거름지게와 종자마대를 지고 산길을 톺아올랐다.그런 다음에는 살붙이처럼 귀중한 애어린 싹을 돌보느라 하루에도 몇차례씩 산발을 오르내리고…

《어찌 보면 나무모가꾸기는 곡식가꾸기보다 더 힘들다고 할수 있지요.곡식과 달리 나무모는 열두번이나 김을 매야 하니까요.인적없는 산발에 난 이 오솔길은 그렇게 생긴겁니다.》

아바이는 예순고개를 넘긴 나이에도 가볍게 산길을 톺으며 이야기를 펴나갔다.우리는 생각했다.

열두번의 김매기, 이렇게 홀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산길을 하루이틀도 아닌 20여년동안 톺고헤친 그 수고를 어찌 한두마디로 다 말할수 있으랴.드디여 우리앞에 드넓은 양묘장이 펼쳐졌다.일매진 포전에서 하나같이 튼튼하게 자라고있는 이깔나무며 잣나무모들…

멀리서 나무모밭김을 매고있는 서성철산림감독원의 모습이 보였다.우리와 인사를 나누고난 그는 여기에서만도 지금껏 수백만그루의 나무모를 키워냈다고, 그 나무모들이 이제는 아름드리거목으로 자라나 무성한 숲을 이루었다고 이야기했다.쉰고개를 훨씬 넘긴 그의 구리빛얼굴에 삶의 보람과 희열이 한껏 어려있었다.

우리는 가슴이 뭉클했다.보는이 없고 새소리, 바람소리뿐인 외진 산정에서 나라의 산림을 위해 자신을 묵묵히 바쳐가고있는 참된 인간, 문득 눈아래로 바라보이는 수림의 바다가 새삼스러운 의미로 안겨왔다.

자기가 나서자란 곳, 후대들의 삶이 련면히 이어질 귀중한 땅을 위해 정과 열을 바치고 한생을 바친다는것은 바로 이런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바로 그래서 나라에서는 서성철동무와 같은 평범한 산림감독원을 도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값높이 내세워주었으리라.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우리는 산길을 내리기 시작했다.

숲속의 오솔길, 비록 오를 때처럼 힘겹지는 않았어도 우리는 그 길을 쉽게 내릴수 없었다.사람들의 눈에 선뜻 뜨이지 않는 이런 외진 길에도 참된 애국자들의 값높은 삶의 자욱이 소중히 스며있기에.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리남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