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회상하여

김명화

 

나는 오늘 날마다 새 기적을 창조하며 약동하는 천리마시대에 사는 행복을 느낄 때마다 지난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수많은 전우들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깊은 감회에 잠기게 된다.

그중에서도 나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에 대해서 언제나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지니고있다.

내가 김정숙동지를 알게 된것은 연길현 왕우구유격근거지에서 유격대생활을 할 때부터였다.

나는 그후 김정숙동지와 같이 생활하는 과정에 그이의 지난날의 처지와 고결한 품성을 잘 알수 있었다.

극빈한 농가에서 태여나 일찌기 부모를 잃고 그이께서는 어린시절부터 불우한 처지에서 배를 곯고 추위에 떨면서 성장하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어린 녀성의 몸으로 이 모든 고통을 억세게 참아나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러한 과정에 당시의 불공평한 사회를 저주하게 되였고 계급적원쑤가 누구인가를 똑똑히 알게 되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이러한 각성은 아동단에 들어가 혁명조직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부터 더욱 견결하여지시였다.

그러기에 그이께서는 혁명조직에서 주는 통신공작을 위하여 수십리 밤길을 무서운줄도 모르고 혼자서 다니시였으며 어린 몸으로 위만군병영에 들어가 삐라도 붙이군 하시였다.

적들의 만행이 더욱 심해가고 《토벌대》에 의하여 집까지 불타버리게 되자 그이께서는 나어린 동생을 데리고 왕우구유격근거지를 찾아들어가시였다.

유격대와 근거지인민들은 일찌기 부모를 잃은 그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하며 성의껏 보살펴주었다.

1933년 12월 어느날, 《토벌대》놈들이 불의에 근거지에 밀려들었다.

악귀같은 놈들은 집집에 달려들어 불을 질렀고 산으로 피해 올라가는 무고한 어린이들과 로인들에게까지 사정없이 총탄을 퍼부었다.

이때에 김정숙동지께서는 불행하게도 하나밖에 없던 사랑하는 동생마저 잃으시였다.

원쑤들의 《토벌》로부터 근거지인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적들을 자기에게로 유인하다가 총에 맞아 쓰러진 동생을 그러안고 그이께서는 이 원쑤를 갚지 않고서는 죽어도 투쟁의 길에서 물러서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다지고 또 다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왕우구 북동에서 공청원으로서 아동단사업을 지도하시면서 먹을것, 입을것이 부족하고 놈들의 《토벌대》가 하루에도 몇차례씩 쳐들어오는 그러한 곤난한 환경속에서도 자기의 있는 성의를 다하여 아동단원들을 극진히 보살폈고 그들을 미래의 훌륭한 투사로 키워나가시였다.

한편 그이께서는 유격대를 원호하는 사업은 물론 근거지인민들속에서 그들을 고무하고 굳게 단합하며 동원하는 혁명임무를 어느 한 때도 소홀히 하시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항상 겸손하고 례절이 밝고 품행이 단정하시였다.

그러기에 아동단원들은 물론 로인들에 이르기까지 근거지인민들은 한결같이 그이를 《우리 지부 지도자》, 《우리 정숙이》라고 부르면서 사랑하고 아끼였다.

이러한 김정숙동지의 녀성다운 품성은 그후 유격대생활에서 더욱 빛나게 구현되였으며 녀성대원들의 훌륭한 귀감으로 되였던것이다.

1935년에 김정숙동지는 처창즈에서 유격대에 입대하시였으며 그곳에서 나와 함께 작식대원으로 공작하게 되시였다.

김정숙동지와 같이 지내면서 나는 그이의 뜨거운 혁명적동지애에 감탄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때 처창즈에서의 생활이란 이루 말할수 없이 간고하였다.더구나 대원들의 식사를 보장할 책임을 지닌 작식대원들의 곤난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몇끼씩 굶어 지칠대로 지친 몸으로 매일같이 산에 올라가 송기를 벗겨다 식사를 보장해야 하였다.

그것도 평평한 등판의 송기는 이미 다 벗기여 없으므로 발도 붙이기 어려운 벼랑진 등성이를 찾아다녀야 했다.그러다보니 힘이 진하여 낫질을 하다말고 소나무를 그러안은채 잠들어버리는 때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던 어느날, 뜻밖에도 우리에게는 반사발가량의 밀가루가 생겼다.

김정숙동지와 나는 그것으로 전우들에게 색다른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려고 작정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석면처럼 부드럽게 두드린 송기에다가 밀가루를 섞어 쫄깃쫄깃해질 때까지 삶아서 줴기떡을 만들었다.그리고 배낭속에서 털어낸 콩을 닦아서 가루를 내여 떡에 묻혔다.

이렇게 《특식》을 만들어놓고 우리는 저녁식사때를 기다렸다.

식사때가 되여 뜻밖에 떡그릇을 받아쥔 대원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이런 훌륭한 떡이 어데서 생겼는가고 하면서 좋아하였다.

찹쌀떡에 꿀을 묻힌들 아마 이 떡보다는 못할것이라고 하면서 모두들 맛있게 먹는것이였다.

부엌문가에 기대여 서서 식사하는 대원들을 바라보고계시는 김정숙동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리여있었다.

그런데 식사가 거의나 끝나갈무렵이였다.무엇을 생각하시였는지 김정숙동지께서 급히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줴기떡 몇개를 더 가지고나와 대원들에게 나누어주시는것이였다.

대원들은 우리를 먹으라고 사양하였다.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우리는 많이 먹었어요.이것은 여분으로 남겨둔것이예요.》 하면서 살뜰히 권하시는것이였다.

뒤이어 김정숙동지와 나는 남아있는 떡을 죄다 그렇게 대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대원들은 우리가 식사를 한줄로만 알고 다 들었다.

그날밤, 잠자리에 누워서 나는 김정숙동지에게 배고프지 않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동무들이 기뻐하는것을 보니 배고픈 생각이 없어졌어요.뭐 먹어서만 배가 부른가요?

동무들이 그처럼 좋아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먹지 않고라도 견딜것 같아요.… 명화어머니, 오늘밤 나는 무한히 행복해요!》

나는 동지들을 위하는 일에서 진정 자기의 행복과 기쁨을 찾으시는 그 숭고한 정신에 한없이 감동되면서 김정숙동지를 힘껏 껴안아주었다.

이처럼 뜨거운 동지애를 지니고계시였기에 그이께서는 동지를 위하여서라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으며 그 어떤 위험속에라도 서슴없이 뛰여드시였다.

그렇다고 하여 결코 동지들을 무원칙하게 사랑하지는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모범을 통하여 다른 동무들을 교양하시였다.

바로 김정숙동지의 그러한 품성으로 하여 전우들은 그이를 더욱더 존경하고 사랑하고 아꼈다.

한번은 우리가 속한 부대가 내도산을 향하여 수림속으로 행군해가던 도중에 불의에 적들과 조우한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위급한 정황속에서 요행 빠져나왔다.

그런데 우리가 적을 쓸어눕히며 새 계선을 차지하기 위해 숲속으로 달릴 때 산림대에서 넘어온 신입대원 한 동무가 위급한 정황속에서 진대나무를 넘다가 나무옹이에 총끈이 걸려 총이 벗겨지는줄도 모르고 달려오고있었다.

그것을 보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더 생각하실 사이없이 적탄이 비발치는 곳으로 도로 달려가시였다.대원들은 위험하다고 소리쳤으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비발치는 탄우속을 그냥 달리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총을 벗겨들고 되돌아왔을 때에야 신입대원은 황급히 자기 어깨를 만져보고 《내 총!》 하고 고함을 지르며 김정숙동지께로 마주 다가왔다.

《고맙습니다.정말 고맙습니다.》

그 대원은 김정숙동지의 희생적인 행동에 감동되여 눈물이 글썽하였다.

전투가 아군의 승리로 끝난 후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신입대원과 함께 걸으시며 따뜻하면서도 엄격한 어조로 《그 총이 어떤 총이예요.우리 동지들의 피와 목숨으로 바꾼 총이라는것을 동무는 벌써 잊었어요? 그 총이 적들의 손에 들어가면 우리를 다시금 겨누게 된다는것을 알아야 해요.》라고 타일러주시였다.

그 대원은 묵묵히 머리를 숙이였다.

그런데 그 신입대원은 량심상 가책을 받아 낯을 붉히기는 하면서도 자기가 저지른 과오에 대하여 솔직히 반성할 대신에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줄곧 그 신입대원과 같이 행군하시면서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겁나할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털어놓고 동지들의 비판을 받으며 또 그 비판을 허심하게 접수하여야만 다시는 그러한 과오를 범하지 않게 된다는것을 꾸준히 깨우쳐주시였다.

나중에 이 신입대원은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잘못을 뉘우쳤고 자진하여 동지들앞에서 자신을 비판하며 훌륭한 대원이 될것을 거듭 맹세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간고한 투쟁 전기간 이처럼 혁명적동지애를 발휘하였을뿐만아니라 혁명임무수행에 무한히 충직하시였으며 혁명의 리익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937년 3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명령을 받고 정치공작원으로서 장백현에 파견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적들의 삼엄한 경계속에서도 부녀회를 조직하여 광범한 군중을 조국광복회주위에 묶어세우는 혁명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시였다.

《안심하십시오.나는 죽을것입니다.그러나 조직은 살것입니다.나의 재산의 전부인 2원을 보냅니다.조직의 자금으로 써주십시오.…》

이것은 김정숙동지께서 1937년 여름 장백현 도천리에서 공작하시던중 그만 놈들에게 체포되여 모진 고문을 받고 사경에 처하게 되시였을 때 조직에 보내온 편지의 내용이다.

유격대에 보내려던 종이뭉치가 발견되자 놈들은 김정숙동지를 요방자에 있는 《정안군》지휘부로 호송하여 감금하고는 유격대의 비밀을 대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하면서 모진 고문을 가했다.

김정숙동지의 혁명적지조여하에 혁명조직의 운명이 달려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그이께서는 조직이 굳게 믿은바대로 놈들의 갖은 고문을 이겨내고 조직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내시였다.(그후 그이는 우리 조직의 구출공작에 의하여 구원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기에게 맡겨진 혁명임무가 비록 어렵고 힘든 일일지라도 언제나 이악하게 달라붙어 훌륭히 수행하시였으며 어떤 일이든지 끝장을 내지 않고서는 그자리에서 물러서는 때가 없으시였다.

그이께서 유격근거지에서 작식대공작을 하고계실 때였다.

하루는 그이께서 펄펄 끓는 죽가마에 버섯을 뜯어넣고계시는데 적《토벌대》가 기습하여왔다.

이 위급한 순간에도 그 죽이 없으면 대원들이 굶게 된다는것을 잘 알고계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죽가마를 고스란히 가지고갈것을 결심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급히 나무를 꺾어다가 똬리를 대강 만들어 받치고는 달대로 단 가마를 머리우에 이고 탄알이 비발치는 눈길을 헤치면서 전우들이 있는 고지에까지 올라가시였다.

그곳에서 그이께서는 자기 머리가 절반이상이나 데여 부풀어오른것도 돌보지 않고 곧 대원들에게 죽을 떠서 권하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이러한 자기 임무에 대한 충실성과 높은 책임성에 감복된 전우들은 그이께서 권하시는 풀죽에 담긴 뜨거운 지성에 눈물을 금치 못하면서 원쑤격멸의 투지를 더욱 굳게 다지였던것이다.

혁명의 길에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남겨놓으신 감격적인 이야기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1938년 겨울 고난의 100여일행군때에도 가마를 지고다니시면서 적들과의 가렬처절한 전투사이사이에 전우들에게 물을 끓여주고 식사를 보장하시였다는 이야기며 1939년 가을 수백벌이나 되는 대원들의 동복을 올기강부근 수림속에서 재봉대원들과 함께 밤잠도 제대로 자지 않으며 끝내 기한전에 보장하시였다는 이야기 등은 김정숙동지가 혁명임무수행에서 높은 책임성과 강의성을 발휘하시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특히 김정숙동지께서는 혁명의 사령부를 심장으로 받들고 목숨으로 지켰으며 사령관동지의 명령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집행하시였다.

10여성상의 긴긴 나날, 그이께서는 어느 한시각도 혁명에 대하여, 수령에 대하여 잊은적이 없었다.

그이께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계시는 한 조선혁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것을 굳게 확신하고있었으며 어떠한 곤난에 부닥치더라도 추호의 동요도 없이 완강한 투지로 그것을 뚫고나가면서 언제나 혁명적원칙성을 견지하실수 있었던것이다.

1936년 봄, 무송현 만강부근의 어느 한 수림속에서 나는 김정숙동지와 함께 그처럼 흠모하여마지 않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옵게 되였다.

누구의 마음인들 다르랴만 그때 김정숙동지께서 류달리 기뻐하시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날부터 김정숙동지와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에 배속되게 되였다.

그이의 전사된 영예로 하여 우리의 가슴은 한량없이 부풀어올랐고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에 무한히 충실하리라 굳게 맹세다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느때, 어느곳에서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의도대로 살며 싸웠고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이러한 립장으로부터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으시였다.

1939년 1월 고난의 100여일행군이 계속되던 어느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로약자들과 함께 그들의 간호를 위하여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녀성대원들을 장백현 청봉밀영으로 들여보내시였다.

청봉밀영은 조선인민혁명군의 후방밀영이였다.

그런데 김정숙동지께서 그곳에 도착하여보니 밀영형편은 말이 아니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이미전에 밀영책임자에게 그곳에서 농사를 지어 부대의 식량예비를 마련하며 부대가 동기군정학습을 진행할수 있게 병실도 예견성있게 지어놓을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으나 그 과업을 받은 혁명의 동요분자는 그곳에 들어박혀 안일해이한 생활을 일삼으며 감히 사령관동지의 로선과 방침을 헐뜯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즉시에 이 사실을 간파하시고 놈들과 원칙적인 투쟁을 벌리시였다.그렇게 되자 이자들은 있지도 않는 사실을 날조하여가지고 박해를 가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러한 때에도 어디까지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의도대로 사고하고 행동하였으며 그 립장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그자들과 견결히 투쟁하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원칙적인 투쟁에 의하여 그후에 이자들의 정체는 여지없이 폭로되고 드디여 준엄한 심판을 받고야말았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혁명의 사령부를 사상적으로 보위하였을뿐만아니라 목숨바쳐 사수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지휘부작식대원으로서 어떤 곤난한 환경속에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시였다.

이에 대하여 나는 다만 한가지 사실만을 이야기하고저 한다.

1940년 6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사령부직속 경위중대를 친솔하시고 소할바령을 향해 행군하시던 때에 있은 일이였다.

그때 김정숙동지께서 작식대원으로서 함께 가시였다.

대오가 안도현 대사하치기근방에 이르렀을 때였다.뒤에는 높지 않은 산이 있었고 앞에는 허리밑까지 오는 대사하강이 가로놓여있었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한 후 대원들이 막 강을 건느려고 할 때였다.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강바닥에 탄알들이 우박처럼 떨어졌다.

이 대렬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신다는 기미를 알아차리고 뒤따르던 놈들이 뒤미처 그곳까지 도착하여 고지우에서 기관총을 쏘아대기 시작한것이였다.

정황은 매우 위급하게 되였다.그냥 도하한다면 적들의 화력을 집중적으로 받아 큰 손실을 입을수 있었다.

만약 그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대담하고도 민활한 지휘가 없었더라면 이 위험한 고비에서 벗어날수 없었을것이다.

적들의 총소리가 울리는 순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싸창을 빼드시고 고지를 향하여 돌격명령을 내리시였다.뒤이어 요란하게 울리는 돌격나팔소리와 함께 대원들은 일제히 《만세》소리 높이 비호처럼 고지를 향하여 육박하였다.

순식간에 정황은 급변하였으며 아군의 공격에 질겁한 적들은 수세에 빠져들어갔다.

그러나 악랄한 놈들은 고지에서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전투가 한창 가렬하게 진행되고있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중턱 바위우에 올라서시여 전투를 지휘하고계시였다.

이때 김정숙동지께서는 곁에서 그이를 호위하고계시였다.그이의 신변을 념려하여 주위를 경각성있게 살피고있던 김정숙동지께서는 군데군데 작은 나무들이 서있는 갈대밭속으로 대여섯놈의 적들이 총을 겨눈채 줄을 지어 배밀이로 기여오고있는것을 발견하시였다.

참으로 위기일발의 순간이였다.그 순간 그이께서는 급히 사령관동지를 몸으로 막아나서시면서 맨앞에 엎디여 총을 겨누고있는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 그놈을 거꾸러뜨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어느 사이에 벌써 김정숙동지의 어깨너머로 두번째놈을 거꾸러뜨리시였다.

이어 세번째놈을 김정숙동지께서 거꾸러뜨리시였다.이렇게 두개의 싸창이 연방 불을 뿜어 그자리에서 마지막놈까지 소멸해버리시였다.

이것은 한가지 실례에 불과하다.

장구하고도 간고한 투쟁의 나날에는 이러한 위험한 일들이 한두번만 있지 않았다.

그때마다 위대한 수령님의 충직한 전사들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처럼 위험한 고비마다에서 한몸이 그대로 방패가 되여 위대한 수령님을 목숨으로 보위하였던것이다.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강철같이 단련된 김정숙동지는 해방후 조국에 돌아와서도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혁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정열과 재능을 다 바쳐 투쟁하시였다.

참으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생애는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 계급적원쑤들에 대한 비타협적투쟁정신, 혁명적동지애, 당과 혁명에 대한 무한한 충직성을 보여준 숭고한 모범으로서 오늘도 우리들을 무한히 고무하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