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의 창조자들답게

강원도수산사업소건설에 참가한 돌격대원들의 투쟁

 

통천군 읍지구에 일떠선 강원도수산사업소, 바로 이곳에도 자기 힘을 굳게 믿고 떨쳐나선 도안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의 투쟁위훈이 새겨져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조선혁명의 전 로정에서 언제나 투쟁의 기치가 되고 비약의 원동력으로 되여온 자력갱생을 번영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사회주의건설의 전 전선에서 혁명적앙양을 일으켜나가야 합니다.》

착공의 첫삽을 박은 도수산사업소건설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건설지휘부일군들이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이며 대형화물자동차를 비롯한 중기계들을 한대한대 마련하고 통천군의 높고낮은 산발들을 오르내리며 거석원천을 찾아내기도 하였다.그러나 날바다를 메워야 하는 지반공사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운반하여 메워야 할 혼석량만 해도 10여만㎥!

힘들게 날라온 수천㎥의 혼석을 하루밤사이에 세찬 파도에 잃어버리고 가슴을 칠 때도 있었다.발전소건설에서는 자신심이 있다던 리종원동무를 비롯한 건설지휘부일군들도 처음 해보는 항만공사를 두고 걱정이 많았다.

오죽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 수산기지를 건설하는데 10년은 걸려야 한다고 하였겠는가.

공사에서 제일 난문제는 운반해놓은 혼석을 사나운 파도로부터 보호하는것이였다.

바로 그 시각 건설에 동원된 일군들과 돌격대원들은 결연히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우리 강원도사람들에게는 물러설 자리란 없다.어떻게 하나 현대적인 수산기지를 자기 힘으로 기어이 건설하자.

서로의 창조적지혜가 합쳐지는 속에 건설지휘부일군인 강희두동무가 기발한 착상을 내놓았다.거석들을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바다날씨가 나빠지면 그것을 옮겨 장벽을 형성하자는것이였다.

그야말로 명안이였다.

이렇게 되여 공사장은 또다시 활기를 띠게 되였다.

화물자동차운전사들은 싸우는 고지에 탄약을 실어나른 전시수송전사들의 투쟁본때로 하루 최고 20탕의 혼석운반실적을 기록하였다.결국 어렵게만 생각했던 건물지반공사는 불과 80여일만에 끝나게 되였다.

그 기세로 일군들과 건설자들, 돌격대원들은 건축공사에 달라붙었다.손바닥에 장알이 박히고 힘들었지만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았다.

도도시건설려단 일군들과 건설자들이 합리적인 공법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맡은 공사과제를 다그칠 때 리상학, 리경섭동무를 비롯한 통천군의 일군들과 돌격대원들은 공사장적으로 제일 많은 몫을 해제끼며 기세를 올리였다.

고성군과 금강군의 돌격대원들도 완공의 날을 앞당기기 위해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투를 벌리였다.

수십m의 방파제공사를 벌릴 때였다.이 공사 역시 사나운 파도와 싸워야 했다.오죽이나 어려웠으면 일부 사람들은 이 공사만은 그만두자고 하였다.

그때 건설지휘부일군들과 통천군의 돌격대원들은 한몸이 그대로 성돌이 되여 떨쳐나섰다.

우리가 여기서 물러서면 어떻게 시대정신의 창조자라고 당당히 말할수 있겠는가.결사대 앞으로!

건설지휘부일군들이 자재를 절약하면서 건설기일을 앞당길수 있는 대담하고 합리적인 공법을 내놓으며 공사를 지휘할 때 통천군에서는 천수십개나 되는 육중한 함형부재생산을 맡아나섰다.한쪽에서는 함형부재생산이 힘차게 벌어지고 또 다른쪽에서는 함형부재들을 생산하는족족 방파제공사장으로 운반하기 위한 전투가 벌어졌다.그와 동시에 1차콩크리트타입공사가 립체전으로 진행되여 공사장은 더욱 끓어번지였다.

날바다를 맞받아 방파제가 한m, 한m 전진해나갈 때 일군들과 돌격대원들의 가슴가슴은 자기 힘에 대한 긍지로 한껏 부풀었다.광란하는 자연을 길들이며 결사전을 벌리는 이들의 불굴의 정신력에 의하여 방파제공사가 적극 추진되게 되였다.

공사 전기간 당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이 깃든 도수산사업소건설을 하루빨리 앞당겨 끝내기 위해 자기들의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친 일군들과 돌격대원들의 투쟁을 어찌 한두마디로 다 이야기할수 있으랴.

하지만 그들이 벌려온 투쟁의 나날은 강원도정신창조자들이야말로 그 어떤 난관앞에서도 불가능을 모르는 결사관철의 투사들이라는것을 다시한번 보여주고있다.

특파기자 홍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