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리의 풍금소리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밭갈이노래》는 장산리사람들의 생활과 깊은 인연을 맺고있는 노래이다.

산도 강도 불타던 주체41(1952)년 6월, 포연을 헤치시며 이곳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 민주선전실에 조용히 들어서시여 이곳 당원들의 당세포총회를 지도해주시였다.

당원들의 토론에 이어 회의휴식시간에 녀성들이 풍금소리에 맞추어부르는 《밭갈이노래》를 들어주시며 큰 힘을 얻었다고 하신 우리 수령님,

전화의 나날에 울려퍼진 그 풍금소리가 수십년세월 어떻게 이어졌던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영광스러운 사회주의조국의 품속에서 가장 존엄높고 보람찬 삶을 누리며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 신심과 락관에 넘쳐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힘차게 투쟁하고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조선로동당창건 50돐경축 대표로 평양에 올라온 사람들가운데는 장산리의 혁신자선동원도 있었다.

김일성경기장에서 진행된 집단체조를 관람하던 그는 배경대화폭에 좋은 때의 백날과 준엄한 때의 하루에 대한 심오한 사상을 담은 글발이 새겨질 때 저도모르게 《저건 우리 장산리의 풍금소리에 깃든 뜻이예요.》라고 속삭였다.

관람이 끝난 후 그에게서는 자기 고향자랑이 끝없이 터져나왔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아버지, 어머니들이 노래를 부른 잊지 못할 민주선전실마당에서 오늘은 자기들이 하루사업을 시작하고 총화짓는다고 말하던 선동원의 자랑넘친 이야기, 자기네 작업반장도 어제날 장산리 당원의 아들이고 리당일군들도 어버이수령님의 추억속에 새겨진 장산리 당원들의 아들들이라고, 그날의 장산리 당원들의 아들딸들은 인민군대에 나갔다가도, 대학에 갔다가도 약속한듯이 고향에 뿌리를 내렸다는 이야기…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좋은 날에나 준엄한 날에나 아 장군님 주신 땅이라고 신념의 노래, 충성의 노래를 부른 장산리사람들의 불굴의 모습을 떠올렸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아들딸세대도 지나고 손자손녀의 대로 바뀐 오늘에 와서도 그날의 풍금소리가 변함없이 울리고있는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것이다.

지난 3월 제2차 전국당초급선전일군대회에 참가하였던 제7작업반 3분조 선동원 정혜성동무는 력사의 그날 당세포총회에 참가하였던 리용화녀성의 손녀이다.

그는 말했다.

《저는 할머니에게서 풍금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옛말처럼 들으며 자랐습니다.할머니는 말하군 했답니다.그날의 풍금소리를 잊고 〈밭갈이노래〉를 잊으면 장산리사람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정혜성동무만이 아닌 장산리사람들모두의 심장에서는 항상 이런 맹세가 울린다.

(전쟁을 이긴 할아버지, 할머니세대처럼 일을 잘하여 쌀로써 경애하는 원수님을 받들리라.)

잊을수 없는 그밤에 풍금소리 유정하게 울리던 때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렀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장산리의 풍금소리를 듣는다.

위대한 수령님 주신 땅을 대를 이어 지키며 빛내여가려는 드팀없는 신념을 안고 《아 장군님 주신 땅…》이라 노래부르던 전세대들의 넋을 꿋꿋이 이어 다수확의 성과로 우리 당을 받들어가려는 장산리사람들의 뜨거운 숨결을 느낀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