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일제의 죄악의 상징-관부련락선

 

나라잃고 수난많던 그 세월 일제가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망국노의 쇠사슬에 묶어 《징병》, 《징용》, 성노예로 일본에 끌어다 죽음의 고역살이를 강요하기 위하여 운반수단으로 리용한 화객선인 관부련락선!

세월은 멀리 흘러갔지만 이것은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죄악의 상징으로 전체 조선민족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제놈들은 근 반세기동안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조선사람을 짐승보다도 못하게 여기면서 학대하였습니다.》

관부련락선이란 이름은 이 배들이 일본의 야마구찌현 시모노세끼와 우리 나라의 부산사이를 오고갔으므로 시모노세끼를 의미하는 글자의 《관》과 부산의 《부》가 합쳐져 생겨난것이다.

첫 관부련락선은 일제가 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직전인 1905년 9월 11일과 11월 1일부터 운항이 시작된 《이끼마루》와 《쯔시마마루》였다.

그후 일제는 패망할 때까지 여러척의 관부련락선을 무어 조선과 일본사이로 운항시키면서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일본으로 끌어다가 고역을 강요하였다.

일제가 처음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관부련락선들인 《이끼마루》와 《쯔시마마루》는 부산에서 일본의 야마구찌현 시모노세끼로 가는 배길에 놓여있는 섬들인 이끼시마와 쯔시마의 이름을 달아놓은것이다.이것은 일제의 조선침략과 략탈을 위한 출발점의 지명을 달아놓았다고 볼수 있다.

1930년대이후 일제는 본격적인 대륙침략의 길에 들어서면서 수송수요가 늘어나는데 따라 관부련락선을 통한 침략과 략탈을 더욱 강화하였다.

일제는 관부련락선을 통하여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일본으로 끌어다가 죽음의 고역장으로 내몰았다.

《을사5조약》날조를 계기로 조선에 대한 식민지화를 실현한 일제는 식민지통치의 첫 시기부터 력사상 류례없는 략탈정책을 실시하였다.특히 통감통치시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조작하고 조선농민들의 기본생산수단인 토지를 대량적으로 략탈하기 시작하였으며 1910년대에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하여 100만정보의 토지를 략탈하였다.

결국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삶의 터전을 무참히 빼앗긴 우리 인민들은 살길을 찾아 정처없이 류랑의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그리하여 많은 조선사람들이 관부련락선을 타고 일본으로도 건너가게 되였다.

일제는 1930년대말부터 대륙침략전쟁을 더욱 확대하면서 그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조선에서 보충하려고 획책하였다.이에 따라 수많은 조선청장년들을 관부련락선을 통하여 일본본토의 탄광, 광산, 군수공장, 군사시설건설장, 항만 등에 강제련행하였다.

초보적인 자료에 의하더라도 일제가 관부련락선을 통하여 조선사람들을 일본으로 끌어간 수는 1917년부터 1945년까지만 하여도 연 466만 6 000여명이나 되였다.그 수는 1939년이후부터 급격히 늘어났는데 1938년에 16만 1 000여명이였다면 1939년에는 31만 6 000여명으로서 근 2배나 되였으며 특히 1943년과 1944년에는 각각 40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일제는 관부련락선으로 조선사람들을 일본으로 끌어가면서 그들에게 온갖 참을수 없는 민족적멸시와 모욕, 고통을 강요하였다.

1910년대에는 배를 타려는 조선사람들에 대한 엄격한 감시통제가 뒤따랐다.

관부련락선을 타려는 조선사람은 반드시 거주지의 경찰서 및 경찰관주재소가 발급하는 증명서를 지참하여야 하였으며 이 증명서를 부산수상경찰서에 제시하고 승선심사를 받아야 하였다.이것은 일본으로 건너가는 승객들속에서 반일독립운동자들을 색출하기 위해서였다.

일제는 조선인강제련행이 본격화된 1930년대에는 조선사람들을 짐짝처럼 배에 실어날랐다.

배머리에 있는 제일 밑바닥의 화물칸에는 3단으로 된 누에시렁과 같은 침대가 설치되여있었는데 여기에 조선사람들을 빼곡이 밀어넣고 일반객실과는 완전히 격리시켜놓았다.이렇게 하면 한칸에 300명은 들어갈수 있었다.

당시 조선인강제련행자들의 목적지는 주로 규슈와 싸할린지방의 탄광과 군수공장, 군사시설건설장들이였다.그러나 일제는 끌려가는 조선사람들에게는 목적지를 절대비밀에 붙이였다.

관부련락선을 타고 저주로운 섬나라로 끌려간 수많은 조선사람들은 참기 어려운 민족적수난과 고통을 강요당하였다.

관부련락선을 통한 조선인강제련행은 유럽식민주의자들이 감행한 아프리카의 흑인노예무역을 방불케 하는 야만행위였으며 조선사람들을 물건이나 짐승보다 못하게 여기고있던 일제의 조선민족멸시사상의 로골적인 발로였다.

력사적사실은 일제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천추만대를 두고 씻을수 없는 극악무도한 반인륜적범죄를 저지른 천년숙적이라는것을 다시금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박사 전경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