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상전선의 화선나팔수-방송선전차 방송원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대중을 증산투쟁, 창조투쟁에로 고무추동하는 선전선동공세를 강력하게 전개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80일전투는 각지 방송선전차 방송원들이 힘있는 화선선전, 화선선동으로 대중을 당 제8차대회를 향한 보람찬 투쟁에로 적극 고무추동할것을 요구하고있다.

지난 시기 당사상전선의 화선나팔수로서의 영예로운 본분을 다해온 모범적인 방송선전차 방송원들을 아래에 소개한다.

 

사전준비에 품을 많이 들여야 한다

룡천군당위원회 방송선전차 방송원 문영옥동무

 

문영옥동무에게는 하나의 교훈적인 이야기가 있다.

언제인가 그가 동신리의 포전에서 방송선전을 진행하던 때의 일이다.

구질구질 내리는 비는 멎을줄 몰랐고 짙은 안개로 앞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하지만 제1작업반포전으로 달려나간 문영옥동무는 지체없이 방송선전차의 마이크를 틀어쥐였다.그의 방송선전에 고무된 작업반원들은 물론 린접작업반의 농장원들도 일손을 다그쳐 불리한 속에서도 그날 작업과제를 성과적으로 해제끼게 되였다.하여 그곳 초급일군들은 영농실적을 높이는데 기여한 방송원을 평가해달라는 편지를 리당위원회에 보내였다.

리당일군으로부터 사연을 전해들은 문영옥동무는 기뻤다.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였다.농장을 떠나는 문영옥동무에게 리당일군은 편지의 내용에 다음번에 오면 방송을 더 격동적으로 그리고 새맛이 나게 해달라는 부탁도 담겨져있다고 하였기때문이다.

더 격동적으로, 새맛이 나게!

생각이 깊어졌다.

사실 그는 늘 해오는 방송이라고 하여 또 오랜 경험이 있다고 하여 어떤 정황속에서도 방송을 능히 할수 있다고 자부해왔었다.하기에 그날도 사전준비없이 포전에 나갔던것이다.그런데 편지를 받고보니 자신의 사업이 돌이켜졌다.사전준비를 좀더 잘하였더라면 새맛이 나게 방송선전을 하였을것이 아닌가.

그날 저녁부터 그는 더 열정적으로 학습하며 사전준비를 빈틈없이 해나갔다.그의 책상에는 늘 그날의 리당일군이 준 편지가 놓여있었다.방송선전을 나갈 때에도 그는 늘 그 편지를 소중히 품고다니며 분발하고 또 분발하였다.

그가 어느 한 광산에 배치되여오는 제대군인들을 위한 축하방송을 진행한적이 있었는데 당의 은정속에 발전하여온 광산의 연혁과 함께 광산의 개발자들과 로동계급의 투쟁자료 등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얼마나 생동하게 방송선전을 하였는지 그것을 목격한 도의 일군들이 그가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인가고 물은적이 있었다.이 하나의 사실을 놓고도 그가 군안의 모든 단위의 구체적인 자료를 알고 방송선전에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있는가를 잘 알수 있다.

당초급선전일군으로 내세워준 당의 믿음에 실천으로 보답하려는 일념을 안고 그는 매일 밤을 패면서도 힘든줄 몰랐다.방송선전을 위한 준비사업으로 때식을 번진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이렇게 불같이 사는 그가 언제 집에 들어오고 나가는지 남편도 그리고 어린 딸들인 금별이와 금영이도 모를 정도였다.그래서인지 딸들이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는것이 소원이라고 한적도 있었다.그러나 문영옥동무의 마음을 잘 알고있기에 남편은 그를 적극 도와나섰다.

군당위원회에서도 그의 사업보장에 힘을 넣었다.출퇴근길이 먼 그를 념려하여 군당책임일군은 해당 단위와 련계하여 읍지구에 건설된 새 집이 그에게 차례지게 하였다.

자기를 위해주는 마음이 커갈수록 문영옥동무는 더욱 분발하였다.자신의 실력을 부단히 높여나가며 오랜 기간 당초급선전일군으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하여왔다.그 나날 문영옥동무는 조선로동당 제8차 사상일군대회를 비롯한 여러 대회에 참가하는 영광도 지니게 되였다.

방송원이 대중의 심금을 틀어잡고 그들을 당정책관철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자면 사전준비에 많은 품을 들여야 한다.이것이 문영옥동무가 방송선전활동을 진행하는 과정에 찾은 교훈이다.

 

마이크와 함께 30여년을

함주군당위원회 방송선전차 방송원 남복덕동무

 

30여년, 인간의 한생에서 절반이라고도 할수 있는 세월이다.그렇듯 오랜 기간 남복덕동무는 함주군당위원회 방송선전차 방송원으로 일해왔다.

작고 연약했던 손에 방송마이크를 처음으로 쥐던 날 그는 평범한 로동자의 딸인 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어머니당의 믿음이 너무도 고마와 자작시 한편을 썼다.

백옥같은 충성심 생명으로 간직하고

성스러운 당의 위업 옹위하리라

사상의 마이크, 신념의 마이크를

총대마냥 억세게 틀어잡고

이것은 그의 가슴속깊이에 간직된 신념의 맹세였다.

하기에 그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절세위인들의 위대성을 대중속에 깊이 심어주며 새로운 로력적위훈에로 추동하는 방송선동을 박력있게 벌리였다.

위대성선전을 첫째가는 임무로 간주하고 함주군에 깃들어있는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실감있게 담은 《어버이수령님은 오늘도 함주벌농민들과 함께 계신다》, 《장군님과 동봉농민들》을 비롯한 원고들을 집필하여 방송선동을 벌리였으며 당출판물들에 실린 위대성기사들로 선전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6살 난 아들 충일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여러해동안 금진강흥봉청년발전소건설장에 나가 돌격대원들과 고락을 같이하며 방송선동을 벌린적도 있었다.

어느날 발전소건설장의 돌격대원들이 남복덕동무에게 어떻게 되여 그렇게 힘있는 선동을 할수 있게 되였는가고 물었을 때였다.

그는 이야기대신 나는 당을 받들어 마이크를 잡았다는 자작시를 읊었다.

돌격대원들은 소박한 시를 통하여 그의 마음속진정을 알았고 높은 실적으로 당을 받드는 길에 가정의 행복도, 자기들의 빛나는 삶도 있다는것을 심장마다에 새기게 되였다.하기에 돌격대원들은 산악같이 떨쳐나 위훈창조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릴수 있었다.

남복덕동무는 광복거리, 청춘거리, 통일거리건설장들과 광명성제염소건설장, 군안의 많은 공장들과 협동농장들에 달려나가 대중을 혁신에로 추동하는 경제선동을 적극 진행하였다.이 나날 그는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고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성장하였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늘 단발머리처녀시절에 다졌던 맹세를 되새기며 분발하군 하였다.

그 언약을 변함없이 지킨다는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당 제7차대회가 진행된 후에 있은 충성의 200일전투기간 방송선전활동을 진행하던 도중 쓰러진적도 있었다.그때 힘을 주고 용기를 준것은 당조직이였다.군당위원회일군들의 믿음과 기대속에 그는 병마와의 긴장한 전투를 벌렸다.다시 마이크를 잡고 전진하는 대오의 앞장에 서던 날 그의 기쁨이 얼마나 컸던가.

오늘도 그는 충성의 80일전투의 선봉에 서있다.

이제는 머리에 흰서리가 내렸어도 그의 모습은 열정에 넘친 처녀시절의 모습그대로이다.

마이크와 함께 변함없는 한모습으로, 이 얼마나 긍지높은 삶이며 값높은 인생이랴.

본사기자 장철범